brunch

매거진 나와 아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ley Feb 09. 2023

아기의 손톱을 깎다가 든 생각

나를 돌보는 일이 곧 아기를 돌보는 일이다


얼마 전 <유퀴즈 온 더 블록>에 배우 조정석이 나왔다. 딸의 손톱을 깎다가 실수로 살을 집었는데 딸의 울음소리를 듣고 가슴이 미어져 낮술을 마셨다는 얘기에 깔깔 웃었다. 생후 60일이 갓 지난 우리 집 아기의 손톱을 깎는 것이 요즘 나에게 주어진 과제 중 하나이기에 웃으며 공감했다. 출산 전, 손톱을 갈아버리는 네일 트리머를 준비해 뒀다. 그런데 막상 조리원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오니, 태어나 한 번도 손톱을 깎지 않은 것인지 네일 아트를 해도 될 정도로 아기의 손톱이 매우 길었다. 조리원에서는 원래 손톱을 안 깎아주나? 깎아줬는데도 이렇게 긴 건가? 별 생각을 다하며 손톱 갈기를 시도했다. 이게 웬걸. 열 손가락을 다 갈아버리려면 일주일은 걸릴 것이었다. 난감했다. 어쩔 수 없이 아기용 손톱깎이를 재주문했다. 작고 귀여운 손톱깎이로 더 귀여운 아기의 손톱을 깎기 위한 첫 시도는 나름 성공적이었다. 고작 한 손이었지만.


헌생아(신생아를 졸업하며 아빠가 아기에게 붙여준 별명이다)가 된 이후 손싸개를 벗겨놔야 손에 감각이 발달한다는 글을 여러 커뮤니티에서 읽고 나는 고민에 빠졌다. 손싸개를 대체 언제 벗겨줄 것인가. 손싸개를 벗긴다는 것은 그만큼 자주 열심히 손톱을 관리해줘 한다는 뜻이다. 가뜩이나 요즘 손이 얼굴로 많이 가는데, 긴 손톱으로 얼굴을 긁어놓으면 그 또한 조정석이 낮술을 마실 정도로 마음이 미어지는 사유가 아니겠는가. 지금도 정신이 없는데 손톱을 또 어떻게 자주 깎아주나 싶어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최근 열심히 손톱을 깎고 다듬으며 낮 시간에 싸개를 풀어주고 있다.


늘 손을 꽉 쥐고 있는 아기의 손에서는 시큼한 냄새가 난다. 싸개나 양말에 쌓여 있는 발도 마찬가지다. 목욕을 시킬 때도 긴장을 해서인지 손을 꽉 쥐고 펼치지 않는 탓에 손바닥을 씻는 시간이 제일 길다. 그래서 대충 내 손가락을 넣어 휘리릭 씻곤 했다. 그런데 얼마 전 아기를 보기 위해 놀러 온 막내 이모가 아기의 손과 발에서 냄새가 난다며 연신 맡아대는 통에, 농땡이 피우다 들킨 것처럼 별 수 없이 열심히 닦이고 있다. ENFP 엄마를 만난 아기는 “고객님 손 좀 펴 보실게요~”하면 손을 펴고, “고객님 손가락 좀 가만히 계실게요~”하면 (반 강제로) 손가락을 내어주고 “어머 고객님 이건 무슨 향수예요? 냄새 대박이다.”하면서 킁킁 손 냄새를 맡으면 해탈한 표정을 짓기도 하면서 강제로 상황극에 동참하고 있다. 아직까지 살을 집어 고객님을 성나게 한 적은 없으니 이만하면 성공적인 상황극이다.



그렇게 고객님의 손톱 관리에 매진하다가, 바지런히 집안일을 하다가 무심코 내 손톱을 쳐다봤다. 세상에. 고객님 손톱을 관리하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내 손톱이 길게 자라 있었다. 이렇게 긴 손톱에 때가 가득한 채로 아기를 만지고 밥을 먹이고 씻기고 놀아주고 있었단 말인가? 너무 놀라 바로 손톱을 깎았다. 공동양육자인 아기의 아빠에게 이 사실을 공유하니, 그가 웃으며 자신도 얼마 전에 나와 똑같이 자신의 손톱을 발견했고 서둘러 깎았다고 밝혔다. 정말 그의 손톱은 깨끗한 상태였다.


꽤 긴 시간 동안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래서 나는 짧고 단정한 손톱이 항상 익숙하다. 네일아트도 전혀 하지 않고 조금만 손톱이 길어도 스스로 불편함을 느껴 자주 깎는 편이다. 그런데 아기 손님의 손톱을 관리하느라 정신이 없어 정작 내 손톱을 깎지 못한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비단 손톱뿐만이 아니었다. 얼굴에 붉은 좁쌀이 올라오는 아기 손님을 위해 매일 아침 가재 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로션과 크림을 듬뿍 바르며 스킨케어를 해드리면서도 내 얼굴은 세수조차 하지 않았고, 분유 때가 하얗게 낀 혀를 닦아드리면서도 내 이를 닦는 일은 수시로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닫고 아기를 가장 가까이에서 돌보는 나의 위생상태가 엉망이었음에 당황스럽고 놀랐다. 하긴 내가 요즘 바쁘긴 했지, 하며 스스로 합리화하다가 요즘 같은 시대에 이런 위생 관념이라니, 라며 스스로에게 혀를 끌끌 찼다.



초보 엄마는 손톱을 깎다가 아기를 열심히 돌보기만 하는 것이 다가 아님을 새삼스레 깨닫는다. 결국 ‘나’를 돌보는 일도 일종의 육아다. 아기의 손톱만큼 내 손톱이 깨끗해야 아기한테 좋은 것이고, 아기의 피부만큼 내 피부도 깨끗하고 부드러워야 아기한테 좋은 것이고, 아기의 입 속만큼 내 입 안이 청결해야 그 또한 아기한테 좋은 것이다. 아기의 밥을 시간마다 꼬박꼬박 챙기는 것만큼 내가 든든하고 건강하게 먹어야 아기한테 좋은 것이고, 아기의 변을 위해 배를 마사지하는 것만큼 나의 변 건강을 위해 유산균을 챙겨 먹고 체조를 해야 아기한테 좋은 것이다. 아기의 잠자리 환경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것만큼 내 잠자리도 편해야 그 또한 아기한테 좋은 것이다. 아기 옷 빨래를 열심히 하는 만큼 내 옷 빨래도 열심히 해야 하고, 아기의 손과 발을 열심히 주무르며 혈액순환을 돕는 것만큼 나의 혈액순환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육아를 하며 깨닫는다. 나를 돌보는 일이 곧 아기를 돌보는 일이다.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 현재로서 가장 가까이 지내고 있는 타인이 바로 나다. 나를 통해 천천히 세상을 경험하고 배워갈 아기인데, 그렇게 큰 역할을 해야 하는 나 자신을 세심히 돌보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아기를 세심히 돌보지 않는 것과 같다. 위생이든 건강이든 일상이든 마음이든 감정이든 나를 돌보는 일이 곧 아기를 위한 일이다. 정신없이 흘러가는 하루 안에서 모든 신경이 아기에게 집중되어 있다가 문득 깨달은 이 사실에, 오늘은 휴무를 걸고 고객님 대신 나의 몸과 마음을 더 돌보는 하루를 보내야지 다짐해 본다. 물론 지킬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매거진의 이전글 모유수유에 관한 개인의 낭만적인 해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