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당신이 나의 아기 소식을 기다리나요?
업무 시간에 전화가 왔다. 발신인은 대전 어머니(시어머니)의 지인이자 보험설계사였다. 결혼 후 실비보험이 없는 나를 위해 대전 어머니께서 보험을 들어주셨다. 때문에 절차상 설계사가 전화를 한 것이다. 간단한 인사 후 나눠야 할 이야기를 모두 마쳤을 무렵, 그분은 웃으며 나에게 “좋은 소식은 없어요? 기다릴게요.”라고 말했다. 임신 소식이 없냐고, 아기를 가졌다는 소식이 들리기를 기다리겠다는 뜻이었다.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나와 단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당신이 나의 아기 소식을 기다리나요?’ ‘왜 당신은 나의 임신을 멋대로 좋은 소식이라고 표현하나요?’
나의 직업은 목회자다. 아직 목사가 되기 위한 과정에 들어서지는 않았지만 교회 안에서 일을 하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보수적인 기독교 가치관 안에서 자라왔다. 그러나 이와 같은 배경에 비해서, 사실 나는 임신에 대한 압박을 많이 받지 않은 편이다. 한 성격 하는 딸을 잘 아는 서울 부모님(친정)은 장난스레 배를 만지거나 조용히 엽산을 선물하며 임신에 대한 자신들의 의사를 나에게만 표현하셨고, 대전 부모님은 에둘러 자신의 아들에게만 의사를 표현하셨을 따름이었다. 물론 나의 동거인이자 절친인 남편은 이와 같은 말들을 나에게 일절 전하지 않았다. 단지 눈치가 빠른 내가 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알고 있었을 뿐이다. 이와 같이 양쪽 부모님의 현명하신 처사로 인해 우리 가정에 임신으로 인한 갈등은 없었다. 다만 가정 밖의 많은 사람들이 나의 심기를 건드렸을 뿐이다. 아이를 빨리 낳아야 나중에 편하다느니, 그렇게 안 낳다가 나중에 갖고 싶을 때는 생기지 않는다느니, 좋은 소식이 없냐느니, 이런 온갖 말들은 주로 나와 관계가 깊지 않은 어른들에게서 심심치 않게 듣는 말이었다.
내가 임신에 관해 가장 많이, 가장 마음 편히 이야기를 나눈 이들은 결혼한 또래 여자들이었다. 나는 주변 또래에 비해 결혼을 일찍 한 편이다. 결혼 5년 차를 향해 가면서도 임신 소식이 없으니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임신’에 관한 계획이나 소식을 묻는 것을 조심스러워했다. 또 결혼은 했지만 아이를 낳는 것에 관해 고민하는 친구들은 자연스레 나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나의 경험, 그의 경험을 서로 이야기하다 보면 ‘아이를 갖는 것을 고민한다’는 묘하고 이상한 죄책감을 잠시라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왜 아기 소식이 없냐고 묻는 이들에게는 “제가 아직 애인데 어떻게 애를 낳아서 키워요~”라고 대답했다. 평소 성격대로 넉살 좋게, 장난스럽게 되받아친 말이었지만 어느 정도는 진심이었다.
나의 절친과 3년 연애 후 결혼했지만 우리는 어렸고 결혼 생활에 적응해 나갈 시간이 필요했다. 갑작스럽게 주어진 가정과 각자의 학업, 일, 일상이 원만하게 돌아가며 자리를 잡는 일은 단 시간에 가능하지 않았다. 학생이라는 핑계로 모은 돈이 하나도 없어 부모님의 전적인 도움으로 결혼을 했고, 식을 올리고 나서도 1-2년이 지나서야 교회 안에 풀타임 사역자로 들어갈 수 있었다. 나에게는 아직 학자금이 남아있었고, 다달이 나가는 월세나 전세 대출금은 결혼 생활과 동시에 우리를 떠난 적이 없었다. 둘 다 교회에서 에너지를 불사르고 집에 돌아오면 자연스레 배달 음식을 시키기에 바빴고, 자연스레 자꾸만 더 큰 정장을 사야 했다. 정리나 청소라는 말은 사치였다. 일주일에 단 하루 쉬는 월요일에는 어딜 나갈 틈도 없이 침대에 누워 다시 일주일을 살아갈 에너지를 충전하기 바빴다.
이렇듯 가정의 체계도, 경제도, 각자의 커리어도 안정된 것이 하나도 없는 이 와중에, 나는 왜 내가 벌써 임신이라는 단어를 들으며 고민거리를 하나 더 추가해야만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임신’이나 ‘출산’이라는 말은 아직 나에게 해당되는 단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더불어 나와 비슷한 나이에 그것을 해내고 그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친구들이 대단해 보였다. 나는 듣기만 해도 짐처럼 느껴지는 그 일을 행복하게 해내는 그들에게는, 또 그만한 달란트가 있는 것이 아니겠냐며 혼자 속으로 ‘나’와 ‘임신’ 사이에 선을 긋고 있었다.
작년, 나보다 더 어린 나이에 결혼을 했고,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던 한 동생이 책 한 권을 선물해 줬다.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최지은 지음, 한겨레 출판)라는 책이었다. 이 책은 방송작가 출신인 저자가 “아이가 없이 살기로 한 딩크 여성 18명”을 인터뷰해 정리한 책이다. 아이가 없이 살기로 한 여성들이 왜, 어떤 과정으로 그 삶을 결정하게 되었는가를 읽어나가는 시간이 나에게는 굉장히 값지고 유익한 시간이었다. 이 책이 나에게 준 가장 큰 성과는 ‘결정’을 도출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생각해보게 한 것이다.
딩크로 살기로 결정한 모든 이에게는 각자의 서사가 있었다. 내가 책을 읽으며 느꼈던 그 부분을 책의 저자이자 인터뷰어는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어머니가 되기를 바라지 않는, 조금은 바라지만 그보다 다른 것을 더 바라는 여성들을 만나면서, 나는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선택이 어떤 과정이기도 결과이기도 의문이기도 삶에 관한 태도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한 결정적인 순간이나, 처음부터 단순 명쾌했던 결정은 없었다. 누군가는 여전히 변동 가능성을 안고 있었고, 누구보다 뚜렷하게 아이를 원하지 않는 여성이라 해도 고민의 과정은 생략되지 않았다. 각기 다른 이유가 삶의 복잡한 맥락과 얽혀 있기 때문이다. p.22
각자의 삶의 복잡한 맥락을 통해 각자의 이유가 도출되고, 그것이 각자의 삶의 태도이자 삶의 한 부분의 결정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러니 나 또한 이 책을 읽으며 특정 세대나 특정한 가치관이나 특정한 삶의 결정들을 일반화하거나 보편화하기보다는 자연스레 나의 삶의 맥락을 살펴보게 되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18인의 여성은 자신의 삶을 사는 여성이다. 이들의 생각과 삶의 태도, 가치는 내 것이 될 수 없었다. 그러니 이 책의 인터뷰이들의 생각과 결정, 작가의 어떤 문장에 매달리기보다는 ‘나의 삶’에 매달려야 했다. 그렇게 이 책을 완독한 2021년 2월 이후, 지금까지 뒤로 미뤄두었으나 반드시 해야만 하는, ‘나의 삶의 맥락’을 읽는 ‘나 혼자만의 작업’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해 12월, 한 해를 마무리하며 내년 계획이 무엇이냐고 묻는 팀장 목사님의 질문에 넉살 좋게 “출산이요~”라고 대답했다. 그날은 나의 삶의 맥락을 읽는 작업의 결과를 절친을 제외한 누군가에게 처음 이야기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