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한지 한 달이 되었다. 서울 북부가 고향인데, 서울에 입성하기는 쉽지 않으니 서울과 가까운 경기 북부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얻었다. 서울에서도 강의 북쪽에서 쭉 자라온 나는 내가 자라온 곳, 나의 고향을 몹시 좋아한다. 나의 딸에게도 그런 고향을 만들어주고 싶어서, 아기가 자라는 내내 거주하는 도시를 옮길 생각은 없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가족 구성원으로, 새로운 삶을 꿈꾸며 시작한 경기 북부 라이프가 지금까지는 매우 만족스럽다. 가장 만족스러운 것은 역시나 원가족을 자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만에 하나 아기에게 비상 상황이 생겼을 때 원가족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마음이 놓인다. 또 세 명이나 되는 동생들과 함께 맛있는 것을 먹고 놀고 아기를 함께 볼 수 있어 좋다. 물론 엄마가 대중교통을 이용해 방문할 수 있는 거리라는 점이 가장 좋다.
주일 예배를 마친 후 어딘가 외출해볼까 싶어 아기의 아빠와 의논하다가,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예배를 마치고 모든 일정이 끝나면 한 시쯤이라고 했다. 아빠, 엄마, 막냇동생이 우리 집에 와서 함께 짜장면을 시켜 먹은 후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백일이 지났고 뒤집기를 멋지게 성공한 아기는 요즘 폭풍 성장 중이다. 그만큼 폭풍 같은 성장통을 겪고 있다. 조리원 선생님들이 이런 아기는 다섯도 키우겠다며 순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아기는, 어디선가 <울음으로 살아남는 법> 강의를 듣고 온 사람처럼 이제는 거세게 울어댄다. 그러니 짜장면이 도착하고 나의 부모님과 막냇동생이 도착할 때까지도 아기는 내 품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칭얼거림과 울음을 반복하고 있었다.
엄마는 도착하자마자 밝은 톤의 목소리로 아기의 이름을 부르면서 아기에게 직행했다. 요즘 아기의 입이 짧아진 탓에 잘 먹지 않으려 해서 수유 시간이 오래 걸린다. 얼마 먹지 않고 이내 입을 꾹 닫은 아기를 조금이라도 더 먹이기 위해서 회유도 했다가 협박도 했다가 달래기도 했다가 웃기기도 했다가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고 항복한 나는, 아기를 엄마 품에 넘겼다. 짜장면은 이미 도착해서 불어가는데도 엄마는 아기를 붙잡고 어르고 달래며 수유를 했다. 나는 엄마의 짜장면이 불지 않도록 잘 비볐다. 그리고는 아주 편안하게 내 몫의 짜장면 한 그릇을 비웠다. 밥을 먹은 뒤 엄마는 아기의 뒤집기를 직관했고 아기를 놀아주었다. 아기띠를 찾아 아기를 안아 매고 재웠다. 할머니의 품속에서 잠든 아기는 평소보다 더 오랜 시간 편안한 얼굴로 낮잠을 잤다.
최근 엄마의 낙은 동생들과 함께 아기의 사진과 영상을 보는 것이다. 늘 동생들에게 아기의 사진이 새로 업데이트된 것은 없는지 묻고 저장해 둔 영상을 재생한다. 나의 원가족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아기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아기는 잘 자고 있을까?’ ‘아기가 뒤집는 모습은 얼마나 귀여울까?’하며 아기 이야기만 하고 있다. 그래서 늘 나에게 아기의 사진을 보내달라고 재촉한다. 아기를 한창 어르고 달래다 그 카톡을 보면 ‘사진 찍을 정신이 어디 있어! 오늘 육아 마라맛이야!’라고 투박하게 대답한다. 그러다 아기를 이렇게 좋아해 주는데, 싶어서 서둘러 사진을 찍어 보내곤 한다.
아기가 푹 자고 일어나자 엄마는 또 아기에게 직행했다. 아기는 침대에 누워 자신을 놀아주는 할머니의 얼굴을 보며 까르르까르르 웃기 바빴다. 엄마는 내가 늘 얌전히 누워있는 사진만 찍어 보낸다며, 아기의 웃는 사진이 거의 없다며, 아기를 열심히 웃게 하고는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아무래도 아기는 자신을 예뻐하는 사람을 알아보는 듯하다. 아기를 보며 가장 텐션이 올라가고, 아기 앞에서 재롱을 부리는 할머니와 큰 이모에게 유독 방긋방긋 웃어주니 말이다.
아기를 안고 웃음이 떠나지 않는 엄마에게 “할머니가 된 기분이 어때?”하고 물었다. 엄마는 “좋아.”라고 대답했다. “내가 너희들을 키울 때는 잘 키워야 된다는 부담감도 있고 책임감도 강했잖아. 그런데 얘는 그냥 보고 예뻐하고 좋아하기만 하면 되잖아. 마냥 예뻐.” 그렇게 말한 엄마는 정말 내내 아기를 예뻐하고 웃으며 놀아주다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잘 키워야 된다는 부담감과 책임감으로 무장한 나는 아기의 아빠와 함께 아기를 씻기고 마지막 수유를 하고 재웠다.
생각해 보면 우리 엄마는 열혈 엄마가 아닌 것 같으면서도 열혈 엄마였다. 언제나 직업을 가지고 있는 워킹맘이었지만 늘 나와 동생에게 다양한 경험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연년생인 나와 둘째만 있었을 때는 대학로에서 연극을 보거나, 에버랜드에 가거나, 창경궁에 가서 꽃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내는 일상이 꽤 많았다. 성적표를 일일이 확인하며 혼을 내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나의 학습 능력과 성격을 파악한 후 그에 맞는 과정을 찾아주기 위해 애썼다. 경제적으로 잘 풀리지 않아 형편이 많이 어려웠던 때에도 엄마는 나를 학원에 보냈다. 학원비가 밀리고 밀리고 또 밀리자 원장님께 사정을 이야기하고는 돈이 생길 때마다 찾아와 조금씩 결제를 하던 때도 있었다. 나는 그것을 다 알고 있었고, 창피했고, 가끔을 울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데, 그 와중에 엄마는 어떻게 그런 이야기들을 직접 할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엄마가 가벼이 던진 부담감과 책임감이란 말속에는 이와 비슷한 기억들이 가득 들어 있다. 웃으며 말한 두 단어가 지난 삼십 년 간 엄마를 어떻게 살게 했는지, 나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봤다. 그래서 부담감과 책임감 없이 오롯이 예뻐하는 마음으로 아기를 보며 행복해하는 엄마의 모습에 아기를 낳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엄마에게도 예쁜 아기가 넷이나 있었지만 그 아기들을 향해서는 예뻐하는 마음과 함께, 지켜야 한다는 마음과 잘 길러야 한다는 마음이 공존했다. 그러니 예쁜 아기가 한 명씩 생길 때마다 엄마의 삶은 더 무거워졌다. 네 명 분의 무게를 이고 지고 삼십 년이라는 시간을 지내온 끝에, 그 예쁜 아기들이 차례로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았다. 이제 마지막 아기도 내년이면 성인이 된다.
부지런한 엄마는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알아서 잘 찾아가는 편이다. 복지관에서 하는 부모 교육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이 벌써 여러 해가 되었다. 같은 멤버가 매년 몇 차례씩 모여서 삶을 나누고 모임을 갖는다. 최근에는 모임을 진행하는 선생님이 “삶의 어느 때로 돌아가고 싶으세요?”하고 물었다. 다른 이들은 각자 자신이 돌아가고 싶은 때를 조곤조곤 말했는데, 엄마는 돌아가고 싶은 때가 없다고 대답했다. 나는 내 삶에서 현재가 가장 즐겁고 행복하다고, 지금 더없이 만족하며 살고 있다고 대답했다. 예쁜 아기들은 다 커서 자신의 삶을 찾아가고 있고, 올해 고3인 막내를 마지막으로 99년도에 시작한 학부모로서의 삶을 종결할 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보일러가 끊긴 지하방에서 갓난아기를 안고 어떻게든 살아냈던 시절을 벗어나, 따뜻한 방 안에서 먹고 싶은 것을 먹고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서 살고 있다. 그동안 직장 생활을 하고, 주부와 양육자의 역할을 감당하고, 교회에서 봉사를 하며 쉼 없이 달려왔으나 이제는 여름마다 다 키운 자녀들과 놀러도 다니고 남편과 단 둘이 여행을 갈 마음의 여유도 있다. 엄마는 그런 현재가 삶을 통틀어서 가장 행복한 것이다.
언젠가 막냇동생이 엄마가 유튜브를 엄청 많이 본다면서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를 쓰고 있다는 제보를 했다. 늘 아끼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는 엄마였기에, “집에 와이파이가 되는데도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를 쓴다고?”하고 놀라 되물었다. 그러자 엄마가 한 마디 했다. “난 자유롭고 싶어!”
과거로 돌아갈 마음이 없다고, 지금이 제일 행복하다고 말하는 엄마. 무엇이든 아껴야 한다는 압박 없이 데이터를 마음껏 쓰고 좋아하는 영상을 마음껏 보며 자유를 누리고 싶은 엄마. 그리고 눈앞에 있는 예쁜 아기를 부담감과 책임감 없이 오롯이 예뻐하며 행복해 할 수 있는 엄마. 그런 엄마를 보면서 지금 엄마의 삶이 가벼워져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때의 무거움을 견뎌낸 엄마가 지금의 가벼움을 더욱 만끽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요즘의 나는 늘 전전긍긍한다. 아기가 보내는 신호를 알아차리지 못해서 어딘가 불편하거나 아픈 아기를 방치할까 봐 전전긍긍한다. 아기는 옹알이가 제법 늘어서 무언가 불편하면 나를 쳐다보면서 한껏 짜증을 내는데, 나는 그게 당최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어 전전긍긍한다. 피부에 붉은 기나 상처가 생기면 혹시 병원에 가야 하는 건 아닌지 전전긍긍한다. 수유량이 너무 적어서 혹시 문제가 될까 봐 전전긍긍하고, 먹은 것을 게워내거나 잘 소화시키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한다. 통잠을 자던 아기가 밤에 여러 번 울면서 깰 때면 혹시 몸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전전긍긍한다. 나의 무지함 때문에 혹시 아이의 발달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폭풍 검색을 한다. 적어도 나의 손에 자신의 몸을, 자신의 삶을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시기만큼은 엄마로서 해야 할 도리를 다 해야 할 텐데 그러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한다. 걱정을 한다고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다고, 걱정을 해서 무얼 하냐고 혀를 끌끌 차며 걱정거리들을 하나하나 되짚어보니 그것이 없어지기는커녕 고스란히 지금의 삶의 무게로 느껴진다.
나를 닮은 예쁜 아기를 보다가, 부담감과 책임감 없이 그 아기를 예뻐하며 행복해하는 엄마를 본다. 그리고 그런 엄마를 보다가, 작은 것 하나에 전전긍긍하고 있는 나를 본다. 별다를 것 없이, 아기를 낳은 사람이라면 모두가 공통적으로 겪는 시간을 지나고 있는 주제에 삶의 무게니 어쩌니 하는 나의 모습을 보다가, 그와는 비교할 수 없는 무게를 지고 삼십 년을 살아온 엄마를 다시 본다. 엄마의 집과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오고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아기를 보다가 자연스레 그를 어르고 달래고 놀아주며 행복을 만끽하는 엄마를 본다. 내가 다 알 수 없지만 또 누구보다 많이 알고 있는 엄마의 삶을 살짝 되짚어보며 이제 막 내 삶에 얹어진, 나의 몫의 부담감과 책임감을 놓치지 않고 다시 고쳐 맨다. 자신의 몫을 내려놓고 환해진 엄마의 얼굴을 보면서 언젠가 나에게도 올 동일한 얼굴을 어렴풋이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