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 수집: 뒷모습
지난 주일, 영아부실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영아부실에는 바퀴가 달려 걸음마를 도울 수 있는 장난감이 있었다. 예배를 드리는 내내 아기는 무릎으로 장난감을 밀어 전진하며 놀았다. 앞으로 조금씩 가다가 뒤를 돌아 엄마아빠를 쳐다보았다. 아이고 잘했어! 환히 마주 웃고는 다시 앞으로 전진. 다시 뒤를 돌아 엄마아빠를 쳐다본다. 너무 잘하네! 다시 전진. 그렇게 몇 번을 왕복하며 예배 시간 내내 놀았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아기의 뒷모습을 실컷 보았다. 엎드려 있던 아기가 이제는 무릎을 끌며 신나게 장난감을 밀고 다니네. 머리카락이 그새 많이 나서 거뭇해졌네. 그러고 보니 무릎 꿇는 자세가 되잖아! 몸은 언제부터 저렇게 반듯하게 세울 수 있게 되었을까? 생각해 보니 정말 많이 자랐다. 아기의 뒷모습을 보며 그렇게 많은 생각을 했다.
예배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온 후 간단히 식사를 해결했다. 날씨가 너무 좋은데. 이렇게 집에만 있기에는 너무 아깝지 않아? 폭염이어도 한 번 나가볼까? 그렇게 대화를 나누다 결국 집을 나섰다. 남편이 포천 아트밸리를 이야기했다. 좋다며 곧장 그곳으로 향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모노레일이 수리 중이었다. 약 15분 정도 올라가야 하는데 괜찮겠냐는 직원의 물음에 '네, 괜찮아요!'하고 호기롭게 대답했다. 그러나 괜찮지 않았다. 각자의 몸뚱이만 챙겨 올라간다면 괜찮았겠지만, 아기가 탄 유아차를 밀고 가파른 길을 오르려니 정말 힘들었다.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얼굴에서 땀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밀었다가, 남편이 밀었다가 그렇게 교대로 유아차도 밀고 땀도 닦고 하늘도 보고 나무도 보면서 정신없이 올라갔다. 아기는 유아차 손잡이에 다리를 떡하니 올리고선 팔자 좋게 누워서 올라갔다. 자신의 바로 뒤에서 엄마아빠의 땀이 흩뿌려지는 줄도 모르고. 내려오시던 한 아저씨께서 아기의 모습을 보시더니 "하이고! 제일 편히 올라가네!" 하며 웃으셨다.
힘들게 올라가서 본 천주호는 멋있었다. 호수를 잠시 감상하고서 바로 아기에게 분유를 먹였다. 더웠는지 배가 고팠는지 꿀떡꿀떡 잘 받아먹었다. 땀이 도저히 식지 않아 우리도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서 나누어 먹었다. 땀에 젖은 채로 기념사진도 찍었다. 호수에 한참을 앉아서 땀을 식히고 사진을 찍고 물을 구경하고 바위를 구경하다가 아트밸리를 마저 돌기 위해 다시 나섰다. 아기는 찡찡거리기 시작했다. 유아차의 쓸모가 다했구나. 아빠가 아기를 안았다. 나는 유아차를 밀었다. 성큼성큼 아빠와 아기가 함께 가는 모습을 유아차를 밀며 뒤에서 지켜보았다.
그렇게 두 사람의 뒷모습을 또 한참 보았다. 이제 제법 상체를 곧게 세우는 아기는 떨어지지 않으려고 아빠의 머리카락을 꼭 쥔다. 어린 생명도 생존본능이 강하다. 그렇게 꼭 쥐어 안전을 확보한 후 여유롭게 두리번거린다. 예쁜 조명들을 올려다보기도 한다. 늘 아래에서 위를 쳐다보는 아기에게는 새로운 시야가 얼마나 재미있을까. 열심히 자라느라 힘에 부치면서도 늘 새롭게 만나는 세상이 아기에게는 얼마나 재미있을까.
남편은 그새 머리가 많이 자랐다. 생각해 보니 며칠 전부터 미용실에 가야 한다고 했는데 이렇게나 시간의 여유가 없었다. 처음에는 아기를 보고 어쩔 줄 몰라하던 남편이 이제는 안정적으로 아기를 안아 어깨에 멘다.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아기의 흥을 돋우기도 한다. 저이는 또 언제 저렇게 자랐을까. 아기뿐만 아니라, 나뿐만 아니라, 저이도 무럭무럭 자랐다.
사람의 뒷모습은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앞모습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상체가 얼마나 곧게 서 있는지, 얼마나 구부정한지. 얼마나 피곤한지, 쌩쌩한지. 머리를 자를 정도의 여유가 없는지, 목덜미까지 꼼꼼하게 선크림을 바를 여유 있는지. 신발이 많이 닳아있다면 부지런히 돌아다녔다는 뜻이고, 하체가 많이 부어있다면 쉼과 자신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나의 경우) 걸음걸이를 통해서도 기분이 좋은지, 힘이 없는지, 생각이 많은지 알 수 있다.
'아버지의 뒷모습'은 모든 성인을 거쳐가는 클리셰다. 성인이 된 후 뒷모습을 통해 갑자기 많이 늙고 쇠약해진 아버지를 깨닫는다. 어렸을 때는 크고 거대하고 든든했던 아버지가 어느새 작아진 어깨를 하고 느려진 발걸음으로 터벅터벅 걷는다. 그런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고 아버지는 모르게 조용히 아버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누군가의 뒷모습은 들키지 않고서 그 사람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자신에 대한 정보는 무한으로 제공하지만 정작 그 정보를 세심히 관찰하며 떠올리는 생각과 그로 인해 나타나는 표정은 보지 못한다. 자신의 삶만 잔뜩 노출시키고서 홀연히 걷는다. 그 삶을 찬찬히 관찰하는 사람은 마주 보고서는 깨닫지 못할 것들을 깨닫고, 생각하지 못할 것들을 생각하고, 짓지 못할 표정을 짓는다.
아무에게나 뒷모습을 통해 알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제공하고 싶지는 않다. 편안하게 긴 시간 뒷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은 역시나 두터운 신뢰 관계를 가진 사람이다. 뒷모습의 많은 정보로 나를 판단하지 않을 사람. 그 정보를 뛰어넘어 나를 더 잘 아는 사람. 나의 뒷모습에 여기저기 묻은 삶의 자취를 이해하고 품어주는 사람. 뒷모습을 보며 가장 많은 생각을 하고 가장 많은 표정을 지을 사람.
문득 궁금하다. 내가 이렇게나 주의 깊게 뒷모습을 관찰하고, 생각을 하고, 다양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는 당신들은 나의 뒷모습을 보고서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어쩐지 어깨를 곧게 펴게 된다. 운동을 더 열심히 하리라 다짐해 본다. 먹는 것도 더 건강히 먹고 더 부지런히 살자 다짐해 본다. 숨길 수 없이 나의 뒷모습을 통해 드러날 감정들 중에 좋은 것이 더 많도록 내 삶을 열심히 꾸려본다. 삶의 자취에 후회가 보이지 않도록 더 열심히, 더 열심히 그렇게 다짐한다.
나의 뒷모습을 보며 당신들이 힘들어하지 않도록, 한숨이 나오지 않도록, 슬프지 않도록. 당신들의 뒷모습에서 내가 느낀 행복과 위로를 당신들도 똑같이 느낄 수 있도록. 당신들도 나의 뒷모습을 보며 많이 자랐다 대견하게 여길 수 있도록. 가끔은 아프고 가끔은 힘들고 가끔은 버겁더라도 여전히 유일하게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뒷모습을 보이며 살아가는 우리가 될 수 있도록.
오늘도 당신들의 뒷모습을 찍은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며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