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위로 수집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ley Oct 26. 2023

나는 나를 믿는다

위로 수집: 라떼 시절


일하고 있는 작은도서관의 장서를 점검하고 있다. 대출 프로그램에 등록된 데이터를 스프레드 시트에 옮겨 정리한 후 실제 서가와 비교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십진분류표에 따라 000부터 700까지 나 혼자서 확인하고 정리를 마쳤다. 정말 토할 것 같았다. 무시무시한 800, 문학서가 앞에서 나는 뒷걸음질 쳤다. 더는 못하겠다. 결국 자원봉사자 선생님이 올 때까지 기다리자고 마음먹었다.

몇 주 전 찾아왔던 두 선생님은 뛰어난 집중력으로 한 달간 지지부진했던 나의 숙원 사업 종료를 성큼 앞당겼다. 서포터즈라는 이름으로 한 달에 몇 회 이상 꼭 자원봉사활동을 해야 하는 불쌍한 대학생들은 꽤 먼 거리에서도 자원봉사를 신청해 찾아온다. 어떤 봉사자 선생님은 학교가 있는 원주에서 우리 작은도서관이 있는 의정부까지 와서 봉사를 하고는 자신의 본가로 내려갔다. 나의 숙원 사업을 도왔던 두 선생님 중 한 분은 강 건너 서울에서 왔는데, 내가 이전에 살았던 동네와 가까웠다. 만날 사람이 많아서 나 또한 한 번쯤 가고 싶지만 너무 멀어서 엄두를 못 내고 있는 터였다. 그가 말하길, 지난주에는 경기 남부에 봉사를 하러 다녀왔다며, 지도에서 찾아보니 우리 도서관이 지하철로 올만하다고 생각해서 왔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멀리서 여기까지 왔어요? 너무 고맙고 대단해요." 그렇게 말하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개강을 해서 수업을 듣고 공부를 하면서도 한두 시간은 가뿐히 이동하며 봉사활동을 하러 다니고 틈틈이 알바도 하고 연애도 하고 졸업 이후의 삶까지 고민하며 준비하는 모습을 보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가만, 나도 그랬잖아?'



서울 북부 사람이었던 나는 매주 성남의 지역아동센터까지 찾아가서 봉사활동을 했다. 경기 남부에 있는 한 복지관에서 주최하는 바자회에 스텝으로 참여했다가 너무 질 좋은 물건들에 눈이 휘둥그레졌던 기억도 있다. 어린이날 즈음에는 온 세상 어린이들을 다 만날 것처럼 여러 행사에 참여했다. 귀여운 중학생들과는 학교 강당에서 텐트를 치고 잠을 자기도 했고, 금녀의 구역인 남고에 가서 또 귀여운 남고생들과 태양열 에너지로 돌아가는 에어컨을 만들기도 했다. 진로 멘토링도 꽤 오랜 시간 했다. 지금도 꾸준히 SNS를 통해 서로의 소식을 보고 있는, 당시 중학생이었던 아이는 자신의 가정 배경으로 인해 사회복지사를 꿈꾸며 수화를 배우러 다니는 친구였다. 교회에 다닌다는 공통점, 사회복지라는 공통점으로 인해 가깝게 지내며 좋은 시간들을 보냈다. 또 학습 멘토링으로 만났던 새터민 남매도 너무 귀여웠다. 아이들은 어떻게든 놀려고 애를 썼고, 나는 어떻게든 공부를 시켜보려 애를 썼다. 공부가 하기 싫어서 한자 학습지를 온갖 화려한 색으로 칠을 하는 아이들을 보며 깔깔 웃기도 했다. 같이 창경궁에도 놀러 가고 동네 슈퍼에서 아이스크림도 사 먹고, 그렇게 소소하게 긴 시간을 보냈다.

대학생 봉사자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라떼 대학생 시절을 머릿속으로만 생각하고 지나가려고 했으나, 그들과 원활하게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동일 주제에 대한 나의 경험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예를 들어 그들의 아르바이트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을 듣고 있으면 자연스레 나에게 "아르바이트 많이 해보셨어요?"라는 질문이 돌아온다.(생각해 보면 대화 기술이 참 좋은 친절한 선생님이다) 그러면 나는 내가 했던 알바를 이야기할 수밖에 없게 되고, 나의 스무 살 첫 알바 시급이 수습기간 동안 3900원이었던 사실까지 이야기하게 되는 것이다. 교회 사역자 그룹에서는 주로 막내뻘이었으니, 나는 그동안 인생 선배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기회가 많았다. 나 스스로도 '아직 20대인데 너무 어리지.', '이제 서른 초반인데 아직 한참 어리지'라는 생각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러다 오랜만에 대학생 선생님들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들의 시급과 나의 라떼 시절 시급이 이렇게나 차이가 난다는 놀라운 사실을 처음 인지했다.

스무 살이 된 이후 아르바이트를 시작해 대학원에 다닐 때까지 내내 했다. 주로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그 이외에 구두쇼핑몰, 베이비시터, 행정보조까지 다양한 곳을 거치며 돈을 벌었다. 집안 사정이 여유롭지 못한 데다가 사 남매 중 내가 제일 먼저 '법적 성인'이 되었고, 동생들은 여전히 부모님의 도움과 보살핌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미성년자였다. 그러니 나는 학교를 다니기 위한 최소한의 경비, 즉 교통비와 식비, 전공서적 구매비까지 전부 내가 벌어서 지출해야 했다. 그러니 사실 학교를 다니는 내내 반강제로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수업이 끝나고 친구들이 삼삼오오 모여 어디론가 놀러 갈 때,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서둘러 아르바이트를 하러 떠나던 때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타고나기를 활동적인 성향으로 타고난 나는, 대학 생활을 야무지게 누렸다고 자신할 수 있다. 공부는 적절히 창피하지만 않을 정도로만 했고(온갖 활동을 하면서 공부까지 잘하는 엄친딸은 아니다) 동아리 활동과 학생회 활동을 활발하게 했다. 동아리 활동을 통해 방학 때마다 남해의 섬으로 봉사활동 겸 선교를 갔다. 1학년 때부터 쭉 해왔던 학생회 생활은 3학년 때까지 지속했다. 공부와 동아리, 학생회, 아르바이트, 교회 생활, 봉사활동까지 시간을 쪼개어했던 라떼 시절을 생각하니 스스로가 신기했다. 나는 분명 그때도 지금도 몸뚱이가 하나인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지?



오랜만에 찬찬히 떠올려보았던 라떼 시절의 나는 생각보다 알차고 열심히 살았다. 그 시기에 대한 후회가 남아 있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고, 할 수 있는 만큼 다 했다. 새삼스레 내가 다시 보인다. 나 성실한 사람이었구나. 나 열심히 사는 사람이었구나. 나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이었구나. 나 잘 헤쳐나가는 사람이었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나 꽤 듬직하고 믿을만하구나.

아기를 낳고, 좋은 기회로 일을 시작하면서 나는 시간이 갈수록 절망감을 느꼈다. 아침부터 밤까지 쉴 새 없이 움직이는데도 자꾸만 아기의 이유식은 떨어져 가고, 빨랫감은 쌓이고, 설거지 거리들은 쌓여만 간다. 냉장고에는 상해버린 야채와 반찬들이 가득하다. 냉장고가 꽉 차있는데도 먹을 것이 없다. 그래서 더 바삐 움직여야 한다. 그렇게 집안일을 서둘러해치우다 보면 자꾸만 아기가 짜증을 내고 엉겨 붙고 투정을 부린다. 생각해 보면 지난 며칠간 마주 보고 까르르 웃으며 놀아준 기억이 없다. 서둘러 아기를 안고서 놀잇감을 찾는다. 그러는 사이 또 할 일은 쌓인다. 나는 분명 아침부터 밤까지 쉴 새 없이 움직였는데, 우리 집이 제대로 돌아가지가 않는다.

지난 몇 달간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잘하고 있는 걸까? 그냥 돌까지는 아기를 내가 데리고 있을걸 그랬나? 나는 몸이 하난데 어떻게 이 많은걸 다 해야 하지? 내 욕심이 과한 걸까? 아기가 클수록 더할 텐데, 내가 일을 하려면 이런 집안꼴을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모든 것은 엄마의 결심이라고 한다. 단유를 하는 것도 엄마의 결심,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도 엄마의 결심, 워킹맘이 되는 것도 엄마의 결심. 그러니 엄마는 살아가는 내내 결심을 반복하고 또 반복한다. 엄마가 결심을 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믿어야 한다. 겉으로 내색할 수 없어도 속으로는 부단히 스스로에게 말해야 한다. 나는 믿을만한 사람이다. 나는 성실한 사람이다. 나는 부지런한 사람이다. 나는 열심히 사는 사람이다. 나는 노력하는 사람이다. 나는 잘해나갈 수 있다. 나는 나의 방식대로 아기도 잘 키울 수 있고, 나의 삶도 잘 꾸릴 수 있다. 나는 그런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반복되는 결심을 위해 스스로를 믿는 일에, 나의 라떼 시절이 하나의 근거가 되어주었다. 내가 속으로 조용히 되뇌는 말들은 실체가 없는 말이 아니었다. 과거의 나는 그만큼 열정적이고 대견한 사람이었다. 그러니 나는 그러한 근거를 가지고 나 자신을 더욱 믿을 수 있는 것이다. 아마 10년 후의 나 또한 지금의 나를 근거로 삼아 자신을 믿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변하지 않으니까. 까맣게 잊고 있던 나의 라떼 시절을 떠올리게 해 준, 결심에 결심을 더하는 내가 옳다고 스스로를 위로하게 해 준, 또한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고 있는 대학생 봉사자 선생님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은 밤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들의 뒷모습을 보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