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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식단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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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 Mar 05. 2021

[210303] 미식의 즐거움

오늘 아침은 모닝등산으로 대신했다. 전날 너무 즐거웠던 탓에 아침에 일어나기가 영 부대낀다. 이대로 좀 더 누워있다간 '오늘 망했네' 할 거 같아 천근만근한 몸을 일으켰고 가벼운 옷으로 갈아입었다. 집 근처를 좀 뛰어볼까 하는 생각으로 나갔다가 뒷산을 오르는 길목에서 고민 없이 발길이 향했다. 105m에 불과한 낮은 산인데 정상까지 오르진 못했고, 힘이 부칠 때쯤 발견한 벤치에 철퍼덕 앉았다. 덕분에 황홀한 일출을 볼 수 있었고, 아침 뉴스를 대신해 새소리를 들었다. 가끔은 아침에 산을 오르는 즐거움을 느껴봐야겠다.

모닝등산 후 출근한 덕분인지 빠르게 컨디션을 회복했다. 그래도 점심엔 국물요리가 필요했는데 내게 메뉴 선택권이 있어 고른 메뉴는 샤부샤부. 고기는 최대한 일행에게 미루고 푹 인힌 야채를 골라 먹으며 국물을 들이켰다.

'아, 시원하다.'

어릴 적 좀체 이해할 수 없었던 말, 뜨거운 걸 먹으면서 '시원하다'라고 하는 말을 수도 없이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오늘 체력 회복에 최선을 다한 건 근사한 저녁자리가 있기 때문이다. 한참 전에 잡아 둔 지인과의 만남인데 오늘은 프랑스 요리가 기다리고 있다.


이날 먹은 걸 나열해보자면 새우 세비체(해산물을 얇게 잘라 레몬 등에 재운 후 차갑게 먹는 음식), 비프 타르타르(소고기 등을 칼로 잘게 다진 요리), 캐비어(철갑상어 알을 소금에 절인 식품) 감자 팬케이크, 뇨끼(버터와 치즈에 버무린 이탈리아의 파스타 요리), 맥앤치즈 등. 어디서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이름들이지만 이름만으로는 짐작이 안 되는 요리들이다. 음식을 내어주시는 분의 친절한 설명을 유심히 들어도 온통 모르는 식재료들이어서 절반은 알아듣고 절반은 알아듣는 척만 했다.


잘 못 알아들었지만 맛있었다. 있어 보이게 표현해보자면 궁극적인 미식의 향연이었다. 너무 맛있고 좋아서 엄마 생각이 났다. 울 엄마는 프랑스도 못 가봤고, 프랑스 요리도 못 먹어봤을 텐데.


좋은 음식의 긍정적인 효과는 '아, 내 혀는 아직 미천하구나. 세상엔 아직도 먹어 보지 못한 음식이 많구나. 역시 오래 살고 볼일이다'하며 삶의 의지를 다질 수 있고, 마음먹고 먹어야 하는 다소 비싼 요리인만큼 '아, 역시 돈을 열심히 잘 벌어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퇴사에 대한 의지를 꺾을 수 있다는 점이다. 내일 기분 좋게 출근할 수 있겠다.

사진 왼쪽은 새우 세비체, 오른쪽은 비프 타르타르
캐비어 감자 팬케이크
사진 왼쪽은 뇨끼, 오른쪽은 맥앤치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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