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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 Nov 22. 2021

친구가 부자 돼서 배 아픈 얘기

"니 괜찮나?"

이게 무슨 개똥 같은 질문인가. 언니도 잘 아는 나의 어릴 적 친구 J가 회사에서 받은 스톡옵션 등으로 (내 기준에서)부자가 됐다는 소식을 담담하게 전했는데 언니는 내게 괜찮냐고 물은 것이다.


언니에게 전한 얘기를 요약하자면 친구 J가 다니는 회사가 최근 상장했는데 상장 후 주가가 급등해 퇴사자가 속출한다는 그런 얘기다. 좀 더 설명을 보태자면 친구는 그 회사가 막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던 초기에 입사했고 입사 당시 액면가로 받은 자사주가 20배쯤 올라 6억쯤 벌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상장에 앞서 직원들에게 능력만큼 공모가에 주식을 살 수 있게 했는데 다들 영혼을 끌어모아 평균 6억 원 치 정도의 주식을 샀고(친구 역시 평균치를 샀고) 그 주식이 공모가의 2.5배쯤 됐으니 게 얼마야 싶다는 얘기다.


그 얘기를 전하던 친구는 주변 동료들이 온통 억억 거리니 별게 아닌 듯 얘기했지만 내 입장에선 너무 별거인데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아니 실제로 그 얘기를 듣는 중엔 사실 아무렇지가 않았다. 너무 딴 세상 이야기 같았으니까.


전화를 끊고서 곱씹을수록 착잡했다. 그러니까 친구 얘기를 종합해 상상해보면 내 주식계좌를 깠는데 그 돈이 수억 또는 십 수억쯤 된다는 거다. 9자리 또는 10자리의 숫자가 동글동글 떠있단 말이지. 흠, 대체 그건 어떤 기분일까. 당 회사를 때려치워도 괜찮겠군, 나도 파이어족이 될 수 있으려나, 아파트를 한 채 사볼까, 너나없이 다 타는 벤츠나 BMW 말고 포르셰 정도 사야지 정도의 마음이 정처 없이 떠다니겠다.


친구가 부자가 됐는데 내가 안 괜찮을 게 뭔가. 부자 친구한테 밥 얻어먹을 일도 많아질테고 행여나 살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돈이라도 꿀 친구가 생기는 건데 뭘. 기존에도 친구는 대체로 밥을 사는 편이었고 나는 늘 당당하게 얻어먹었다. 물론 나는  밥보다 금액이 약간 덜 나오는 곳에서 2차를 사거나 디저트를 샀다. 가끔은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경우도 없지 않았지만 굳이 따지자면 내쪽이 좀 더 얻어먹는 편이었다.


친구와 나는 사회생활 초기부터 연봉의 차이가 컸다. 정확하게 각자의 연봉을 깐 적은 없지만 친구가 다니는 직장의 초봉은 전 국민이 다 아는 수준이라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각자가 속한 업계의 차이라고 쿨하게 해석했지만 그 격차는 갈수록 더 벌어졌고 이젠 생활력, 그러니까 생활 수준이 말도 못 하게 달라졌다. , 물론 연봉이 나보다 2배쯤 많다고 해서 2배 비싼 밥을 먹고 2배 비싼 옷을 입는 식으로 2배만큼 더 좋은 걸 언제나 늘 취하진 않겠지만 대체로 나보다 2배쯤 여유로워 보였다.


아, 그래서 나 괜찮냐고?

당연히 괜찮은데 그냥 좀 잠이 좀 안 온다. 배가 아파서인 것 같다. 친구의 불행을 바라지 않지만 친구가 너무 멀리 앞서 가버리니 나는 갈 곳을 잃은 기분이다. 돈 벌었다고 젠체하지도 않고 내게는 여전히 밥 잘 사 주는 친구지만 요즘의 나는 대체로 안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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