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귀환
엄마가 정신병원에서 퇴원하자, 할머니는 곧바로 자신의 집으로 떠나고 나는 다시 엄마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기숙사 생활을 했기 때문에 엄마를 마주칠 일은 거의 없었다. 다만 평소 청결하지 않은 집안 위생 상태가 기숙사 아이들과 함께 살면서 들켰기 때문에 조금 창피했을 뿐이다. 고등학교 생활은 지루함의 연속이었다. 중학교 단짝과 헤어지는 슬픔, 낯선 아이들 사이에서 느끼는 소외감, 늘어난 공부 시간은 고등학교 생활 적응을 어렵게 만들었다. 나는 날마다 야간 자습 시간에 교실 뒤 선 책상 앞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그래도 고등학교 1학년 때는 학교생활의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매우 수줍음을 타는 성격이었지만 반 친구들이 스스럼없이 먼저 다가와 주었고, 같이 야간 자습 시간에 드라마를 훔쳐보기도 하고 마니토 놀이를 하기도 했다. 내가 말없이 책만 읽고 있으면 담임 선생님이 무슨 책을 읽느냐고 물어보기도 하셨다. 나는 점차 고등학교 생활에 정을 붙였다. 하지만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엄마와 마주쳤던 그 날밤 이후로 나는 제대로 고등학교 생활을 이어 나갈 수 없었다.
“엄마, 농약 먹고 죽을 거야”
“그럼 같이 죽자면서”
“##아, 왜 이렇게 마음이 약해졌니?”
“이, 거짓말쟁이!!”
2주간 기숙사 생활을 하고 집으로 돌아간 주말이었다. 엄마는 아픈 몸과 정신으로 발악하고 있었다. 한밤중에 딸 앞에서 농약을 먹고 죽을 거라고 선포했다. 나는 엄마의 자살 선언에 한술 더 떴다. 내가 엄마와 같이 죽어 줄 테니 농약을 가지고 오라고 엄마를 겁박했다. 엄마는 본인이 죽겠다고 하면 딸이 말릴 거라고 예상했나 보다. 하지만 웬걸? 엄마에 대한 나의 증오와 원망은 아픈 환자에 대한 염려를 넘어섰다. 엄마는 어차피 죽지 못하는 나약한 인간이라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엄마라는 존재가 자신의 아픔으로 남을 아프게 하는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걸 만천하에 알리고 싶었다. 결국 엄마는 한술 더 뜨는 자식 앞에서 꼬리를 내렸다. 갑자기 내가 너무 약해진 것 같다는 등 변명하면서 자신의 자살 선언을 무효화했다.
그날 밤의 일은 평생을 걸쳐 나를 괴롭혔다. 나는 엄마가 살아갈 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인가? 엄마는 왜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나를 괴롭힌 거지? 엄마의 병이 나를 좀 먹었다. 나는 참을 수 없는 고통에 학교 담벼락 앞에서 아빠에게 전화해 보았다. 하지만 아빠는 딸의 고통을 철저히 무시했다. 아빠는 언제나 그런 존재였다. 돈 버는 게 가족보다 중요한 사람, 우는 건 나약한 거라 무시하던 사람, 세상은 약육강식이라고 입이 닳도록 주입하던 사람, 엄마의 병적인 괴롭힘과 아빠의 철저한 무시 속에서 나의 영혼은 메말라 죽어 갔다.
나는 매일 학교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상상을 했다. 갑자기 중증 우울증에 걸린 학생을 학교와 학생들이 받아 줄 리 만무했다. 나의 학교생활은 점점 외로워졌고 나의 이상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대놓고 무시하는 학생도 나타났다.
“쟤, 좀 머리가 이상한 거 같아”
뒤에서 아이들이 수군수군하는 말소리들. 나는 가슴속에 쌓인 화를 어떻게 배출해야 하는지 몰랐고 그대로 묻어 두는 방법을 택했다. 잠으로 현실도피를 해 보기도 했고 상상으로 자살을 실현하기도 했다. 지금 학교 옥상에서 떨어진다면 분명 나한테 그런 말을 한 엄마와 나의 슬픔을 철저히 무시했던 아빠는 괴롭고 힘들겠지? 그렇게라도 나의 고통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 나의 행동과 말투는 점점 어눌해졌고 급기야 고3 때는 기숙사에서 퇴거 조치를 당했다. 나는 공동체 생활에서 점점 멀어졌다. 학교를 등교하는 날이 드문드문해졌고, 수능을 마지막으로 학교를 나가는 일이 없었다. 나의 자살에 대한 날갯짓은 머릿속에서 계속 리플레이되었다. 그리고 상상은 곧 현실이 되었다. 죽음이 나를 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