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살 일대기 9

김 선생님

by 솔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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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원 방문과 함께 심리상담을 받았다. 지역 관할 센터에서 연결해 준 심리상담 선생님에게 대학교 심리상담 센터에서 만난 여선생님과 똑같은 괴리감을 느꼈다. 깔끔한 옷차림, 번듯한 외모, 그리고 현실과 동떨어진 꿈에 대한 환상, 은연중에 가난이 이해 가지 않는다는 뉘앙스의 말투. 선생님은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자살 준비를 했다는 나의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선생님의 연약함은 오히려 독이 되었다. 이 사람에게는 현실적으로, 심리적으로 공감을 받을 수 없겠구나. 이상적인 심리상담 과정을 설명하는 너무나 이상적인 남자.


다시 한번 지역 관할 센터를 방문했다. 두 번째 심리상담 선생님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지금 심리 상태를 손짓과 발짓을 섞어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김 선생님의 첫인상은 괴짜였다. 하지만 회차가 늘어갈수록 나는 부모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었던 진실을 그에게 말할 수 있었다. 내가 너무 저조한 상태이면 선생님은 유쾌한 이야기로 기분을 풀어내 주려고 노력하셨다. 심리상담이 끝나고 선생님이 해준 말씀을 곱씹으면서 눈물 흘리는 날이 많았다.


“##씨, 힘들었겠네요.”


어느 날은 엄마와 아빠 싸움에 낀 내 모습이 불쌍했나 보다. 문득 지나가는 말투로 선생님이 힘들었겠다, 중얼거렸다. 상담 당시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눈물이 터졌다.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부모님 밑에서 혼란스러움을 느꼈을 스스로가 떠올랐다. 나는 김 선생님에게 편안하게 많은 모습을 보여 주었다. 날 괴롭히는 직장 상사, 아픈 엄마의 정신 상태, 유년 시절에 겪었던 가난함. 나는 심리상담에 세 번째로 도전해서 자신에게 맞는 선생님을 찾았다. 잘 만나고 잘 헤어졌으면 좋겠다는 사람 사이의 인연에 대한 바람이 생겨났다.


“이걸로 끝!”


나는 선생님에게 잘 만나고 잘 헤어졌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왠지 선생님과는 그게 가능할 것 같다는 내용의 편지를 썼다. 그리고 심리 상담의 끝을 향해 열심히 달려갔다. 사람의 인격적인 추레함을 보는데 지친 상태였다. 이번 상담에는 아름다움만 간직하고 싶었다. 선생님은 사람들의 시기와 질투, 험담에 질려버린 나를 잘 알고 계셨다. 어떤 인간이든 이면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상대방에 대해서 잘 알아간다는 것은 고통을 수반했다. 적당한 환상과 이미지가 필요했다. 깨지는 희망과 관계의 불균형. 그걸 굳이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김 선생님과는 좋은 관계가 무너지기 전에 끝을 내고 싶었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상담을 빨리 마무리 지어야겠다는 강박증이 생겼다. 오히려 상담 후반부로 갈수록 나는 깊은 이야기를 피했다. 자질구레한 일상생활 이야기만 풀어놓고 자리를 떴다. 괜찮아지고 싶었다. 가벼워지고 싶었다. 무의식적으로 예전보다 한참 좋아졌어, 이제 끝을 낼 때야,라고 암시를 걸었다. 선생님이 우리 집안 사정을 알고 도와주려고 노력했다는 사실 자체에 만족했다. 상담 시간은 점점 짧아져만 같다. 그리고 내 바람대로 깔끔하게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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