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의사 선생님
“선생님, 제가 예전에 자살 시도를 한 적이 있는데…….”
“##씨, 지금 친구나 애인 있어요?”
과거 자살 시도와 지금 집안의 경제 상태, 그리고 남에게는 부끄러워 차마 말할 수 없었던 가정사를 의사한테 읊어댔다. 의사는 나에게 지금 친구나 애인이 있는지를 물어봤다. 처음에는 환자를 상대로 기싸움을 하는지 알았다. 괜히 내가 작아지는 기분이었다. 당시에는 친구도 애인도 아무도 없었다. 의사의 질문을 듣고 우울증을 벗어나려면 내가 연애를 해야 하는가? 의문이 들었다. 마음이 아픈데 애인을 만드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의사에게 요즘에 장소와 시간을 가리지 않고 눈물이 나서 곤란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종종 화를 못 참아서 물건을 집어던질 때도 많다고 했다. 의사는 그동안 참아왔던 게 한 번에 터진 거라고 위로해 주었다. 그리고 과거를 덮고 미래를 보아야 한다고 조언해 주었다. 그러나 눈물은 쉽게 그치지 않았다. 엄마에게 휴대전화기를 집어던졌다. 엄마 머리에 휴대전화기가 맞았다. 엄마는 딸한테 맞은 자신의 모습이 초라한지 펑펑 울었다. 나는 엄마에게 과거 일에 대해서 사과하라고 소리쳤다. 엄마는 아빠에게 사과를 요구하라고 책임을 떠넘겼다.
나는 점점 미쳐갔다. 시도 때도 없이 가슴 밑바닥부터 눈물이 울컥 솟구쳐 올랐다. 그러면 울음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어느 날은 내 울음소리에 아동학대가 의심된다며 아파트에 민원이 들어왔다. 아빠는 집안 사정을 경비실에 설명하기 위해 가진 애를 썼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꼬박꼬박 챙겨 먹었지만 죽고 싶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하루에도 수없이 자살에 대한 욕구가 치솟았다. 일부러 몸 쓰는 일을 하며 돈을 벌었다. 하지만 머릿속에 있는 잡생각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엄마가 저를 위해서 기도드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엄마는 미쳐가는 딸을 보며 하나님에게 기도드렸다. 자기가 잘못했으니 딸을 살려달라고. 이것은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다. 뒤에서 부모님이 이렇게 나를 위해 애쓰는지 몰랐다. 나는 부모님의 정성에 감동했다. 그러나 병이 나은 것은 아니었다. 병원에 방문해 울음을 터뜨리는 환자를 보며 의사는 강하게 나가야겠다고 결심했나 보다. 병원에 방문한 지 6개월이었다. 가슴이 쓰라릴 정도로 강력하게 충고하는 의사의 처방에 나는 튕겨 밖으로 나갔다.
“##씨, 저 아팠어요”
환자가 병원을 마지막으로 방문할 걸 의사가 눈치챘던 것일까. 마지막 방문에 의사는 그동안 자신이 아팠노라고 고백했다. 하지만 나는 이 병원에 다시 오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을 선 차였다. 몸의 증상만 말하면 된다고 하던 고압적인 태도, 그렇게 부정적인 감정은 심리상담을 통해 풀어내라는 충고, 환자에게 자신이 아파서 그랬다는 고백까지. 환자가 계속해서 의사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이상한 관계. 담당 의사한테서 그동안 나에게 철없이 말로 상처를 주었던 인간들의 군상이 지나갔다. 다른 병원으로 옮길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