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살 일대기 10 完

다시 일상

by 솔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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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간의 짧은 심리상담이 끝나고, 나는 병원을 옮겼다. 나이가 지긋하게 드시고 유쾌한 성격을 가지신 의사분이 운영하시는 곳이었다. 전 병원보다 자유로운 분위기에 마음이 녹았다. 의사는 진료실에서 이야기를 듣고 난 이후에 짧게 충고하는 편이었다. 처음에는 남에게 충고를 듣는 자체가 곤욕이었지만 차차 적응해 나갔다. 2주 간격으로 처방받던 약은 곧 3주 간격으로 바뀌었다. 우울증 증상은 느린 속도로 차차 나아져 갔다.


군중 속에서 느끼던 외로움이 예전보다 덜 해지고, 외로움을 폭식으로 해결하지 않고, 남에게 애정을 구걸하지 않고, 정신이 아프고 우울한 사람을 곁에 두지 않고, 일주일에 5일을 일하러 밖에 나가고, 집 안 청소를 깨끗이 하고, 자살에 대한 강한 열망이 죽음에 대한 짧은 생각으로 바뀌고, 금전 관리를 예전보다 잘 처리하고, 약을 꼬박꼬박 챙겨 먹게 되었다.


여전히 고쳐야 할 점이 많지만 예전보다 더 나아진 일상을 영위하고 있다. 우울증을 겪으면서 적었던 일기를 쑥 훑어봤다. 거기에는 나에게 상처 줬던 사람에 대한 원망, 과거에 대한 집착, 특히 엄마에 대한 애증이 가득했다. 반대로 우울증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강한 의지, 좀 더 나은 나로 살아가고 싶다는 열망, 사랑에 대한 희망도 있었다. 나는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행동들을 종이에 적어서 오랜 시간을 걸쳐 현실로 만들어가는 중이다.


희망과 절망이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이제 물건을 집어던지며 화를 내고 가슴을 내리칠 만큼 눈물이 나지 않는다. 다만, 연예인의 자살 기사를 접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답답해질 때가 있다. 유언장 속 내용이 남의 이야기 같지 않다. 내가 자살 시도를 하기 전에 노트북에 써 내려간 유서가 떠오른다. 지금은 내용조차 기억나지 않지만 그 글을 적었을 당시 느꼈던 절망감과 비참함, 삶에 대한 패배감이 상기된다. 두 번 다시 그런 감정을 느끼고 싶지 않다. 충분히 인생의 희로애락을 즐기면서 살고 싶다.


우울한 감정이 슬며시 수면 위로 올라오는 시기가 있다. 나도 모르게 죽고 싶다,를 중얼거리는 날이 있다. 그러면 침착하게 약을 챙겨 먹고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 순간까지 기다린다. 미트볼 스파게티를 먹다가, 일에 집중하며 땀을 흘리다가, 내 감정을 글로 써 내려가다가 우연히 기분이 좋아진다. 아직 죽음에 대한 원초적인 열망을 지울 수는 없지만 그 감정이 지나가기까지 기다리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러면 정말 마법같이 괜찮아진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바닥에 주저앉은 채 눈물을 흘리던 나, 밖을 거닐면서도 공허함에 술을 찾던 나, 아파트 벤치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괴로움에 눈물을 주르륵 흘리던 나, 속옷 한 장 제대로 빨지 못해서 출근이 곤란했던 나, 고통 속에 헤매던 과거 속의 나를 떠올리면서 지금과 비교한다. 나는 정말 천천히 괜찮아지고 있다고, 그리고 앞으로 더 괜찮아질 거라고 위로한다. 우울증으로 보낸 시간이 아쉽고, 내가 남들보다 인생 속도가 늦은 거 아닐까,라는 의구심이 드는 순간도 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살아가는 것, 계속해서 일상생활을 유지해 나가는 것 밖에 없다.


부디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다가오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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