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안 청소하기
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어느덧 1년 반을 넘겼다. 아빠의 갑작스러운 실직과 길어진 취업 준비 기간이 나에게 정신병을 불러왔다. 부모님의 실직에 현실적으로 재빠르게 대응하는 방법을 몰랐던 나는 인생의 어두운 터널로 들어갔다. 매일 밤 꿈에서는 고등학생 때 나를 괴롭혔던 동창들이 등장했다. 그리고 가난에 허덕이는 집안 사정에서 도망치기 위해 과수면을 하기 시작했다. 정신병은 곧바로 일상생활에 치명타를 주었다. 매일 배달 음식을 1, 2번은 시켜 먹었다. 먹다 남은 음식물 쓰레기로 뒤덮인 플라스틱 용기가 방 안에 쌓여갔다.
8평짜리 원룸에서 18평 임대 아파트로 이사를 와서도 내 생활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나를 위해서 남동생이 아파트에 들어왔지만 끝내는 누나를 미워하면서 집을 나가는 결말로 바뀌었다. 엄마도, 아빠도, 남동생도, 정신과 의사 선생님도, 상담 선생님도 내 정신병을 고쳐주지는 못했다. 의학 드라마에서 보던 낭만은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다. 딱딱하고 건조한 정신과 의사 선생님의 진단과 약 처방, 기대하고 갔던 정신과에서는 오히려 상처만 받고 돌아온 적도 있다. 정신과 의사 선생님은 앞 환자의 난동에 받았던 스트레스를 뒤에 환자인 나에게 푸는 실수를 범했다. 하지만 그는 환자인 나에게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지금도 우울의 범람에 깊게 빠지려고 하면 집 안 청소를 한다. 몸을 움직이고 땀이 나야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 재활용 쓰레기를 분리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밖에 내다 버리고, 바닥에 쌓인 머리카락과 먼지를 쓸고 닦는 과정이 스트레스를 해소해 준다. 청소하다 보면 오랫동안 쓰지 않은 물건을 발견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기쁜 마음으로 밖에 내놓는다. 속옷을 삶고 빤다. 수건을 삶고 난 뒤 세탁기에 넣고 돌린다. 기본적인 위생 청결과 관련된 부분을 끝내고 나면 스스로가 사람이 된 거 같다.
우리는 사회생활을 할 때, 더럽거나 미친 사람을 보면 본능적으로 피하거나 거리를 둔다. 왜냐하면 나에게 끼칠 피해가 두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피해 사례가 왕왕 있다. 나 또한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고 무시했다. 특히 내가 처음으로 일했던 다이소 점장은 나를 대놓고 싫어했다. 사무실에서 다른 사람들 들으라는 듯이 내 험담을 하고, 내가 지금 일하는 카페에 안 좋은 소문을 퍼트려서 하마터면 카페 사장님한테까지 안 좋은 이미지를 심어줄 뻔했다. 다이소에 출근하는 매일매일이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뒤돌아서면 뒷담 화하고, 가스라이팅과 갑질에, 사람에 따라 가면을 달리 쓰는 인간 이하 짐승에게서 일하려고 하니 가슴이 새카맣게 타들어 갔다.
하지만 그렇게 뼈 아픈 상처도 교훈을 남겼다. 나의 약점과 비밀을 함부로 남에게 발설하지 말 것. 세상에는 약한 사람을 밟는 나쁜 사람도 있고, 그들은 남의 약점을 파고 들어가 상처를 주기 십상이다. 사회에는 약하고 어린 사람을 안아주고 감싸주려고 노력하는 좋은 사람들도 있지만 자기 사회적 지위를 이용해 개인적인 스트레스를 풀려고 하는 어른이 되지 못한 못된 사람들도 존재한다. 아픈 상태로 사회에 나가면서 나는 다정한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비록 처음에는 나쁜 사람에게 상처받았지만, 뒤에 가서는 구부러진 나를 바로 세워 줄 좋은 어른을 만났다.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겨주기 위해서는 일단 용모가 깨끗해야 한다. 잘생기고 예뻐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적어도 외출 시 입은 옷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나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속옷과 수건을 매일 삶고 빨아야 한다. 세탁이 위생 청결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삶고 빨고 널리고 접는 간단한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빨래에 대한 상식이 생긴다. 비 내리는 날씨에 옷을 말리면 퀴퀴한 냄새가 나기 쉽다는 것, 그래서 태양 빛이 내리쬐는 날에 옷을 바싹 말려야 한다는 것, 택배로 받은 옷은 바로 입지 말고 한 번 세탁한 뒤 입을 것, 울 세제를 사용하는 옷감과 일반세탁세제를 사용하는 옷감의 구별, 과탄산소다를 이용한 속옷 삶기 등 옷에서 냄새가 나지 않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은근히 무궁무진하다.
그리고 외출하기 전에 샤워를 한 번, 일을 끝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는 샤워를 한 번 더 한다. 샤워하면서 우리는 화장을 지우고, 먼지 쌓인 발을 씻고, 몸에서 나는 땀 냄새를 없앤다. 샤워하고 나서 향긋한 냄새가 나는 로션을 발라주면 내 몸이 귀중하다는 느낌이 든다. 이렇게 청소는 나를 사랑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부엌, 화장실, 거실, 식탁, 작은 방, 큰 방 등 집 안 청소를 한바탕 처리하고 나서 샤워를 끝내면 적어도 기분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고 글을 쓸만한 자그마한 에너지라고 생긴다. 그러면 우울의 밑바닥에서는 어느 정도 벗어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