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일기 쓰기
차마 남들에게 대놓고 말할 수 없는 감정들이 있다. 부모와 지나간 친구에 대한 원망, 회사에서는 할 수 없는 상사에 대한 험담. 이 모든 감정들을 나는 일기장에 써 내려간다. 원래 일기를 쓰는 습관이 있는데, 다 쓴 일기장을 갖다 버린 건 30년 인생을 통틀어서 딱 두 번이 있었다. 첫 번째는 마포대교로 투신하러 가기 전날이었다. 그동안 내가 모아둔 책들과 일기장, 귀중품들을 한밤에 전봇대 귀퉁이에 버리고 다시는 현실로 돌아오지 않겠다고 결심한 날이었다. 두 번째는 아버지가 실직하고 나서이다. 글쓰기, 문학, 꿈, 희망 이런 가치들이 쓸모없다고 생각했다. 오로지 돈이 최고의 가치라고 여겼다.
아버지도 돈을 버는 기계로 보고, 어머니는 돈을 벌 수 없는 하등 쓸모없는 존재로 취급하고, 집에서 용돈을 받아 쓰는 남동생을 바퀴벌레라고 여겼다. 아버지에게 화가 났어도 아버지는 그래도 옆에 있으면 쓸모 있는 인간이라고 이번만 참고 넘기자며 합리화했다. 어머니가 정신이 아파서 남들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일 때마다 길거리 한가운데서 소리 죽이며 울었다. 차라리 길 한복판에 어머니를 버리고 나 혼자 집으로 돌아가는 상상을 하곤 했다. 정신이 아프고, 정상적인 생활도 못하고, 금전 관리 능력도 없고, 돈 버는 능력도 없는 어머니를 인생의 짐짝으로 보았다. 세상을 배배 꼬아서 바라보고, 약아빠진 사람이 잘 산다고 믿었다.
하지만 돈이 전부라는 신념은 내 정신을 갉아먹었다. 마음 안에 검은 구멍이 하나 생기고, 구멍의 깊이는 나날로 깊어져 갔다. 그 속에는 외로움, 처절함, 비참함, 독기, 악으로 가득 찼다. 가슴을 손으로 누를 때마다 몸이 아프다고 소리를 질렀다. 결국에는 이런 부정적인 감정을 일기장에 전부 쏟아내자고 결심했다. 엄마가 나에게 자살 사고를 넘기고, 대학교 동기 2명이 우울증을 나에게 떠넘겼듯이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우울증을 스스로 극복하는 방법으로 감정 일기 쓰기를 택했다. 일기 쓰기는 처음에는 효과가 미미할지 몰라도 일기를 쓰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효과가 극대화된다.
남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마음, 나한테 상처 준 사람이 천벌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소원, 언제가 돈이랑 외모를 갖춰서 남을 밟겠다는 욕심이 일기장을 전부 채웠다. 나의 밑바닥 본성을 글로 써 내려갔다. 그 순간만큼은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나를 괴롭히던 대학교 동기는 일기장 속에서 처참한 죽음을 맞이했고, 짝사랑하는 남자에게는 사랑의 편지를 건넸다. 비참하고 슬픈 현실을 일기 속에서 재구성하고, 다시는 이런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고 결심했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소망을 현실로 만들려면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나열했다. 글을 쓰면서 머릿속의 잡다한 생각들을 정리했다. 내 마음은 서서히 변해갔다.
절대 한순간에 한 번의 노력으로 바뀌지 않았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찰하고 반성하고 고쳐 나갔다. 내가 바라는 것들은 즉각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 이룰 수 있는 능력이 갖추어졌다. 그리고 과거에 가지고 있었던 생각과 감정을 글이라는 형태로 읽어보았다. 얼마나 그릇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내 마음은 한순간에 변하지 않았다. 서서히, 천천히, 조금씩 변해갔다. 크기가 날로 커졌던 검은 구멍이 검은 점 몇십 개로 바뀌어 갔다. 지금도 우울증이라는 병에서 태어난 악이 전부 사라졌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그 강도와 빈도가 줄어 들어가고 있다는 것. 거기에서 희망과 기쁨을 엿보았다.
나는 약 2년 10개월이라는 기간 동안 감정 일기를 써 내려갔다. 시작은 매일매일 적었지만, 나중에는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으로 횟수가 줄어들었다. 그만큼 글로 풀어내야 하는 감정의 양이 줄어든 것이다. 엄마의 정신병에 대한 고통, 한동안 같이 살았던 남동생에 대한 한탄, 아빠의 외도에 대한 망상, 정신과 의사 선생님에 대한 비꼼, 다시 어떻게 살아갈까에 대한 고민으로 일기장을 빼곡히 채워 갔다. 그렇게 인생의 어두컴컴한 터널을 지나갔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있듯이, 엄마는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고 꼬박꼬박 챙겨 먹으면서 증세가 완화되었고, 어느 날은 나에게 직접적으로 자신이 과거에 한 행동에 대해 사과했다. 그 누가 시킨 것이 아닌 엄마가 자발적으로 말이다. 사이가 틀어졌던 남동생과는 가끔 안부 전화와 선물을 주고받을 만큼 관계가 개선되었고, 아빠의 외도는 엄마의 정신병으로 인한 망상이라는 게 밝혀졌다. 정신과 의사 선생님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긍정과 부정을 오가기는 하지만 말이다.
고통의 크기가 작아지면, 서서히 주변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 남들도 나와 같은 힘듦을 겪고 있구나. 그동안 나만 힘들다는 자기 연민에 빠져서 살고 있었구나. 그리고 내가 아프다는 이유로 가족과 친구들에게 큰 상처를 주었구나. 하지만 내가 한 행동은 돌이킬 수 없구나. 이렇게 내 고통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남의 상처가 보이기 시작하면 우울증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조짐이다. 우울증으로 너무 아파하지도 말고, 아프다고 남에게 상처 주지도 말자. 꾸준한 운동과 일기 쓰기, 반복적인 사회생활 패턴으로도 많은 부분을 극복할 수 있다. 부디 우울증으로 고통받는 모든 분이 서로 상처 주는 게 아닌 안아줄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하고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