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꼬박꼬박 챙겨 먹기 1/2
정신과를 다니면서 우울증 약을 처방받은 지 어느덧 2년 5개월이 되었다. 우울증 약을 챙겨 먹기 시작한 이후로 유튜브에서 우울증 극복 영상을 챙겨 보는 게 습관이 되었다. 마음이 힘들 때마다 나처럼 우울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공감을 얻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나도 병을 극복할 수 있겠구나,라는 희망이 생겼다. 처음에 병원에 갔을 때는 나도 모르게 의사 선생님 앞에서 병이 나아진 척 연기를 했다. 유튜브 영상에는 약 복용 3주 만에 병이 눈에 띄게 호전된 사람도 있고, 다시 건강해진 사람이 넘쳐났다. 그리고 나도 그들처럼 우울증을 어느 정도 극복한 줄 알았다.
병원에 다닌 지 한 달이 넘었으니 부정적인 생각이나 인지 사고에 변화가 온 거 같아, 이런 착각을 하고 병원을 방문했다. 의사 선생님도 약을 줄여 보자고 넌지시 말씀을 꺼내셨다. 하지만 곧 환자의 무너지는 멘털을 보고 약을 계속 유지하자고 말씀을 바꾸셨다. 당시에 나는 카페 아르바이트에 적응하지 못해서 돈 버는 길을 헤매고 있었다. 같이 일하는 이모가 사장님한테 내가 일 못한다는 한소리를 했다. 그걸 들은 나는 가게 화장실 안에서 이렇게까지 하면서 돈을 벌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약해진 환자의 모습을 보고 의사 선생님은 그건 ○○씨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오랜만에 병원 진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서 눈물이 터졌다.
과거 친구 트라우마부터 전에 다니던 정신과 의사 선생님의 모진 목소리까지 떠오르면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나는 아직 나아진 게 아니었다. 괜찮아졌다고 스스로 속이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 앞에서 울면서 내가 아직 타인에게 마음의 문을 다 열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남 앞에서는 건강한 척, 밝은 척, 강한 사람인 척하고 싶었다. 물에 젖은 종이 마냥 나약한 내 마음을 마주 볼 자신이 없었다. 나는 언제까지 우울증 약을 복용해야 하는 걸까? 걱정과 함께 다시 우울증이라는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걷기 시작했다.
우울증 약 복용은 사람에 따라서 단기전이 될 수 있고 장기전이 될 수도 있다. 짧은 달리기로 끝나서 트랙을 떠난다면 너무나 좋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마라톤처럼 긴 싸움이 될 수도 있다. 그래도 약 복용을 손에 놓지 않고 매일 제시간에 먹어주는 게 중요하다. 정신적으로 너무 지칠 때는 정신과 약이 마지막 동아줄이 된다. 아무런 이유 없이 울음이 터진 날은 아침 약을 먹는 걸 깜빡한 날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오후가 너무 길게 느껴지면 자기 전에 먹는 약을 2, 3시간 일찍 먹기도 했다. 그러면 플라세보 효과로 걱정이나 불안감이 많이 사라졌다.
약은 꾸준히 빠짐없이 먹는 게 원칙이다. 어느 날은 돈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제때 약을 타러 병원에 방문하지 못했다. 그러자 의사 선생님께서 왜 며칠 늦었냐며 크게 꾸짖으셨다.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약을 먹는 걸 늦추거나 빼먹은 적이 없다. 치료 초반에는 약을 먹는 걸 깜빡하는 날도 있었다. 그러나 우울증 증상이 어느 정도 나아지고 자기 관리가 가능해지자 약을 제시간에 매일 먹는 게 습관이 되었다. 사람마다 정신과 약이 주는 효과가 천차만별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약 효과가 굉장히 더디게 나타났다.
일단 세상과 타인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나 적대감을 없애주었다. 그전까지는 아버지의 실직으로 인한 열등감, 세상에 대한 분노, 인간관계에서 오는 좌절감으로 가슴이 꽉 차 있었다. 나 혼자만 불행하고 힘들다고 자기 연민에 빠져 있었다. 당시 옆집에서 아동 폭력이 의심된다고 민원이 들어올 만큼 큰 소리 내어서 울고, 다이소에 입사해서 상사한테 진상이라고 들을 만큼 불평불만을 가지고 일했다. 하지만 계속 버티면서 일하고, 운동하고, 약 챙겨 먹고, 반복하니 우울증의 절정을 지나 완화 기를 만났다. 정신과 약은 한순간에 우울증을 낫게 해주는 마법의 약이 아니라 스스로 우울증을 벗어나게 도와주는 진통제라는 걸 알았다.
지금은 아침 약을 먹고 1시간 걷기 운동을 하고 난 뒤, 사람을 만나면 어디 기분 좋은 일 있었냐는 소리를 들을 만큼 증상이 완화되었다. 하지만 이 순간에 오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과거의 기억에 붙들려 길거리에서 남이 걱정할 만큼 울던 시간이 있다. 가슴속에 죽고 싶은 마음을 묻고 묵묵히 일만 하던 시간이 있다. 여름 한낮에 기미가 생길 만큼 햇볕을 쬐면서 무식하게 운동만 하던 시간이 있다. 노력과 실패, 다시 노력과 성과, 게으른 노력과 권태, 다시 노력하고 열정을 쏟아붓는 과정을 통해 지금의 내가 되었다.
아직도 우울증 완치의 길은 멀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조금씩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더 건강해진 나를 느낄 수 있다. 특히 일을 하고 있을 때, 효율성이 높아져 가는 자신을 보고 놀라고 있다. 예전에는 실수투성이에다 어렵게만 느껴지던 일이 손쉽게 착착 진행되면 2년 5개월 동안 고생한 게 드디어 빛을 보는구나, 감동이 밀려온다. 부디 5년 안에 우울증 완치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오늘도 하늘에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