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극복 중 12

게임을 레벨 업!

by 솔솔
게임을 레벨 업!.jpg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매일 청소를 하고, 운동하고, 아르바이트 투잡을 뛰고, 약을 먹고, 글을 적었다. 하지만 조급한 성격을 가진 나에게는 이러한 시도와 노력이 매우 더디게 느껴졌다. 상상 속의 나는 벌써 경제적, 심리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티브이에 나와서 대중들에게 강의하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카페 매니저로 일하면서 꾸역꾸역 억지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이럴 때 가장 많이 하는 스트레스 해소법이 게임을 레벨 업!이다.


우울증이 절정일 때는 원피스 트레저 크루즈라는 핸드폰 게임에 빠져 있었다. 그때 핸드폰 게임의 용도는 잠깐의 재미를 위한 것이 아닌 현실을 회피하는 수단이었다. 눈을 뜨고 잠들 때까지 핸드폰을 붙잡고 있었다. 종일 핸드폰 게임에 빠져서 가난과 정신병에 허덕이는 집안 사정을 외면했다. 그러다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원피스 트레저 크루즈 앱을 삭제하고, 디지몬 RPG나 메이플스토리 같은 컴퓨터 게임에 간간이 시간을 투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컴퓨터 게임은 우울증 환자에게 커다란 메리트를 안겨주지 못했다. 일단 언제 어디서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게임을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집이라는 한정적인 공간에서만 게임을 실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컴퓨터를 켜고 끄는 행위 자체가 너무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었다. 그래서 다시 핸드폰 게임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현실을 회피하는 이데아가 아닌 현실의 스트레스를 푸는 잠시의 안식처로 이용해 보기로 했다.


다양한 게임을 해보면서 알맞은 모바일 게임을 찾을 수 있었다. 일단 전략적으로 머리를 쓰는 게임은 스트레스를 증가시킬 뿐이었다. 메이플스토리처럼 캐릭터 스텟을 균형 잡게 올려야 하는 게임도 어울리지 않았다. 단순하고 직관적으로 할 수 있는 게임이 딱 어울렸다. 간단하게 시간과 노력만 쏟아부으면 단기적인 결과를 볼 수 있는 게임이 도움이 되었다. 현실의 나는 아주 천천히 성장하고 도전과 실패를 반복하고 있지만, 게임 속의 캐릭터는 작은 시간과 노력으로도, 성장이 가능했다. 현실의 답답함을 모바일이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꾸준히 해결했다.


그중에서도 카트라이더 속 러시팜이라는 게임이 나에게 잘 맞았다. 적은 관심과 손가락질만으로 단시간에 농장이 레벨업 되었다. 그리고 레벨업을 할 때마다 수확할 수 있는 작물의 종류가 달라지고 이런 형식으로 동물농장, 낚시장, 최근에는 레스토랑까지 운영할 수 있다. 퀘스트를 깨고 경험치와 돈을 모아서 레벨을 올리는 반복작업이 깊고 우울한 생각으로 빠지는 것을 막아주었다. 몸이 축 늘어질 때마다, 현생에 치여 잠시 쉬고 싶을 때마다, 핸드폰 게임 버튼을 눌렀다.


게임을 레벨 업! 할 때마다 생각한다. 현실 속의 나도 이렇게 빠르게 성장했으면 좋겠다고. 사람들의 작은 행동과 말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카페 일도 척척 해내는 그런 유능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언젠가 능력과 경험치가 쌓이면 사람들이 저절로 찾아오는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아직도 현실에서 멘털이 깨지는 날이면 모바일 게임으로 도망치는 순간이 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과거를 조심스레 떠올리게 된다.


다이소 점장에게 가슴에 비수 꽂는 소리를 듣고, 편의점 사장님에게 돈 없는 거 아니냐고 비아냥을 듣고, 카페 사장님한테 언제 나갈 거냐고 무언의 압박을 받던 나. 정신과 선생님까지 지금 애인이나 친구는 있냐고 싫은 티를 팍팍 내던 우울증 환자. 현실에서 처지가 너무나 버겁고 무거워서 핸드폰 게임이라는 망상의 세계에 도망치던 패배자. 지금은 많은 부분을 고쳤지만, 모바일 게임에 빠질 때마다 다짐한다. 마지막에는 현실 세계에 돌아오는 걸 잊지 말자고.


게임 속 캐릭터에게 돈과 시간을 들여서 레벨 업 하듯이, 현실의 나에게 노력이라는 스탯을 쏟아부어서 우울증을 극복할 수 날이 오기를 빌어본다. 언젠가는 모바일 게임이라는 가상의 세계에서 벗어나 온전히 현실을 바라볼 수 있는 성인이 되기를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우울증 극복 중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