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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delion Mar 04. 2021

세상을 향해 전하고 싶은 것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리고 내가 세상에 전하고 싶은것


애니매이션에 이렇게 빠져본 적이 있었던가? 한때 나는 유행했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성>으로만 미야자키 하야오를 알았고 ‘뭔가 독특한 애니매이션이다’라고만 기억했었다. 예쁘고 귀엽지만은 않은 기괴한 장면과 사실적인 묘사들에 신기함을 느꼈던 기억이 있다. 애니매이션에 대해선 문외한이던 내가 새로이 미야자키의 세계에 관심을 갖게된 계기는 미야자키의 생애와 작품에 대해 수년간 연구하고 이를 8년간 집필하여 담아낸 수잔 네이피어의 <미야자키 월드>를 통해서다. 작품이 탄생하기까지의 배경이 됬던 그의 생애와 트라우마, 세계관, 영감들, 피땀어린 노력들, 스튜디오 지브리의 이야기를 통해 그가 담아내고 전달하고자 했던 작품속 의미와 메세지들을 한번씩 곱씹어보는 요즘이다. 

정말 아는 만큼 새로이 보이고, 또다른 감동을 느낀다. 그리고 나만의 관점과 교훈을 얻게된다. 작품과 작품을 만든 사람에 대한 배경지식을 아는 것은 나만의 더욱 풍부한 감상을 갖게하는 훌륭한 방법인듯하다. 한편으론 작품에 대한 다른이의 관점과 해석을 옅보는 것이 작품을 더 많이 이해하게 해줄지언정 타인이 제시한 프레임에 갖혀 작품을 바라보진 않을까 우려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최소한 미야자키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개인적, 예술가적 비전이 강하고 이를 그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영화에 담아낸 예술적 기교가 뛰어난 한 애니매이터에 대하여 새로이 알아갈 수 있는 계기가되었고, 이제는 미야자키의 작품들이 그저 단순한 하나의 애니매이션 영화가 아닌 작가가 혼신을 다해 전달하고자 했던 한가지 의미로 다가온다.



미야자키라는 장르가 생기기까지

스튜디오 지브리의 미야자키 하야오

미야자키 하야오(1941.01.05~)는 이제 역사이자 애니매이션에 대한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 그는 41편의 애니매이션 작품에 참가하였고, 14편의 장편 애니매이션, 5편의 단편 애니매이션, 2편의 TV 애니매이션을 각본 연출 기획 감독하였다. 그의 애니매이션은 아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는 단순하지 않고 가볍지만은 않은 주제를 다루며 영화에 그의 세계관과 가치관, 비전을 담아낸다.


그는 용기, 수용, 기쁨의 감정의 축을 영화에 이용하고 역사, 인류, 자연재앙, 멸망후 세계, 추방, 상실, 트라우마, 향수, 유토피아 비전 등을 작품에 담아내며 이 모든 것들을 감동적인 태피스트리로 엮어낸다. 공감 능력과 감수성이 뛰어난 지혜로운 주인공을 내세우며 특히 대부분의 10대 소녀인 주인공과 노인여성을 등장시키기도 한다. 섬세하고 뛰어난 장면에 대한 묘사와 이에 어울리는 음향감독까지 까다롭게 고른다. 그의 작품은 그의 엄청난 재능과 열정을 담아내며 관객을 압도하는 에너지가 있다. 

학교에서 만화를 보는 학생은 나뿐이었다. 남들은 만화를 그리는 내모습을 바보 같다는 눈빛으로 쳐다보고 나를 괴짜취급했지만, 나는 오히려 만화의 잠재력을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이야말로 바보라고 생각했다.

<미야자키 월드>_수잔 네이피어

그는 "백사전"이라는 일본최초 장편 컬러 만화영화를 보고 만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림그리는 것을 좋아해 주변을 세심하게 관찰하였고, 만화보다는 책을 더 많이 읽었다. 그의 유년기는 “잃어버린 어린시절”이라 칭할 정도로 외로움과 무력감, 공허함으로 덮여있었고 모든 독서와 그림들은 그를 달래주는 분출구이자 탈출구였다. 그의 인터뷰에서 어린시절 즐거운 기억은 전혀 없으며, 대학 입학때까지 내가 느낀 감정은 굴욕뿐이었다는 발언을 통해 그의 유년시절 그림자를 엿볼수 있다. 이러한 그림자가 드리운 어린시절이 그에게는 유일한 탈출구였던 만화에 오롯이 집중하여 관찰력을 기르고, 그림을 그리며, 독서를 하는 등의 기본기를 다지는 시기가 되었다. 



그는 스물 두살에 애니매이터가 되어 토에이에 입사한 후 성실함과 무시무시한 스케치 속도와 실력으로 1년도 안되 전설이 되었고, 누구보다 늦게까지 남아 일하면서 그림 실력을 연마했다. 그는 초고속 승진을 하며 노조활동에도 참여하여 “협동”과 “함께하는 힘”을 통한 공동체 의식의 중요함을 경험하였고, 유럽과 미국으로 현장답사를 다니며 세계관을 넓혔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수채화 도구

이후 '애니메이션 업계에 선풍(旋風)을 일으키자'는 의미인 스튜디오 지브리를 설립(1985.6.15.)하여 다수의 장편 애니매이션을 제작하고 감독으로서 전성기를 맞게된다. 미야자키는 긍적적이고 인내심이 강하며, 강인하고 적극적이다. 그는 성질이 불같기로 유명했고 자신의 주장을 굽히는 법이 없으며, 전공은 정치와 경제여서 그런지몰라도 상당히 실리적이다. 그는 실력 뿐만 아니라 빠른시간내에 작품을 해내고마는 지독한 인내와 추진력이 있다. 에너지가 끓어오르는 미야자키에게 주변 사람들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작품 속 미야자키의 메세지

사람들의 흥미를 끌고자 하는 전개와 해피엔딩, 공주나 왕자의 로맨스와 오락적 요소들이 주를 이루는 애니매이션이란 장르의 통념을 깰만한 도전의식은 어디서 나왔을까? 미야자키는 신랄하면서도 도전적이고 작품들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분명한 메세지가 있다. 물질만능주의와 소비주의 현실에 대한 비판도, 잃어버린 옛날과 온정에 대한 향수도, 환경파괴에 대한 경고도 들어있으며, 자신과 일본,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하나쯤은 있는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담아낸다. 아름다운 자연과 세밀한 감정선을 담아내는 세세함과 다채로운 음악은 작품에 대한 몰입감을 고조시키고, 마음 한편에 따듯함과 울림을 전한다.



트라우마

다양한 작품들을 탄생시키고 스튜디오 지브리를 이끌어오기까지 애니매이터로서 미야자키의 삶과 가치관에 영향을 준 것은 그의 어린시절의 환경이 한 몫을 한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40년대에 태어나 전쟁의 공포와 파멸의 순간들을 지켜보았다. 그의 아버지는 진주만 공격때 사용한 제로센 전투기의 팬벨트를 만드는 공장을 운영하였으며 그의 가족은 덕분에 전쟁통에 호화저택에서 호화스럽게 지냈고, 이후 그는 이에대한 죄책감으로 괴로워했다. 또한 전쟁의 막바지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으로 인한 무자비한 민간인 학살, 전쟁의 공포, 결국 패전한 군국주의의 폐해, 도쿄 지진과 쓰나미 등의 자연재해, 근대화와 서구화로 인한 사회의 정신적 병약함 등을 경험했다. 전쟁과 같은 강력한 트라우마와 그의 유년시절의 상처는 그에게 깊은 정신적 생채기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오히려 그는 이같은 상처와 트라우마를 회피하거나 감추지 않았으며, 작품에서 전쟁의 공포를 알리기 위해 전쟁의 역동성을 치밀하게 표현한다.


어린나이의 미야자키는 엄마가 결핵에 걸려 8년동안의 투병을 하는동안 언제고 엄마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무시무시한 공포와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야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남자주인공들은 어둡고 자기회의에 빠진 미야자키의 복잡한 내면을 투영한것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또한 남자 주인공들의 저주, 갈등, 슬픔은 인물을 더 섬세하고 현실적으로 다가오게 한다. 작품속에서 인물들의 감정선의 변화와 심리 묘사는 단순한 오락과 즐거움을 위한 애니매이션이라기 보다는 더 함축적이고 깊은 세계관을 전달하는 하나의 수단으로써의 애니매이션으로 보이게 한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사람뿐 아니라 강도 고통받고 있다”라고 한것처럼 그는 일본의 산업화의 광풍으로 인한 환경문제와 자연재해에 주목하였다. 일본의 애니미즘 문화는 인간은 자연의 힘들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하고 있으며, 그들이 겪은 자연재해(화산 폭발, 지진, 쓰나미 등)는 재난과 종말에 대한 상상력을 키우기 충분했고, 미야자키의 작품 또한 이러한 환경문제에 대한 두려움과 경고를 담아낸다. 작품 속 전쟁과 재해의 강렬함 속의 아름다움은 모순적인 이미지로 더욱 임팩트 있게 다다오며 그 속에서 “인생의 무상함” 또한 느끼게 한다.



회복

하지만 미야자키는 상처와 트라우마는 일반적이고, 감정의 상처는 인간존재의 기본 요소이며 그저 감내해야한다고 하였다. 그는 그의 작품에도 인내, 견딤, 수용을 중요한 주제로 삼으며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와 <바람이 분다>에서도 “살아야 한다”라는 메세지를 전한다.



자유와 성장(feat. 마녀배달부 키키)

<마녀 배달부 키키>는 지브리 스튜디오가 어려울 때 대박을 터뜨린 히트작이자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계관이 담긴 소중한 작품이다. 이 작품을 기점으로 할리우드 영화만이 히트작을 만들 수 있다는 기존의 통념을 무너뜨리고 스튜디오 지브리가 새로운 단계로 도약할 수 있었으며, 그 다음 10년동안 미야자키는 세계무대에서 감독 인생의 전성기를 맞게된다.


작품의 배경은 미야자키가 동경했던 아름다운 유럽이다. 주인공 키키는 어린 마녀이고, 진정한 마녀로 거듭나기 위한 수련과정을 거치기위해 생애처음 집을 떠나 독립하게된다. 키키의 성장드라마는 나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어 더욱 기억에 남는다. 독립을 즉흥적으로 결정하는 모습조차 나와 빼어닮아있게 느껴서 더 감정이입을 하고 작품속에 빠져들었다가 영화 후반부에는 감동의 쓰나미로 눈문과 콧물을 쏙 뺐다. 모험과 도전을 좋아하지만 빨란 리본과 빨간 신발을 좋아하고 또래 남자친구의 관심에 새침스런 모습을 보이는 어린 여자아이다운 사랑스러운 모습과, 자신에게 찾아온 모든 고객들에게 보이는 진실성, 성실함, 세상에 홀로서기를 위한 외로움과 고통을 감내하고 끝내 결국 성장하는 모습을 그리는 이야기는 당시 20대 여성들의 선풍적 인기를 끌만했다.

첫 독립을 위해 하늘을 날아올라 자유를 만끽하는 키키_<마녀 배달부 키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키키가 난생처음 집을 떠나 미숙하지만 빛자루를 타고 하늘높이 날아올라 비행하며 자유를 만끽하는 장면이다. 비행은 미야자키의 영화에서 반복되며 등장하는 주제이다. 그는 비행을 중력으로부터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방식 중 하나라고 생각했고, 그의 다수의 작품에 비행의 장면이 등장한다.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 라퓨타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도시이며, 영화에는 각종 항공 장치와 항공기의 그림이 등장한다. 이런 주제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도 찾을 수 있는데, 나우시카는 그녀 자신이 메베를 타고 하늘을 나는 조종사이고, 영화 속에서는 거대한 무기를 운반하는 공중 수송 부대의 모습이 등장한다. <이웃집 토토로>에서 거대한 토토로는 사츠키와 메이를 태우고 밤하늘을 가로지른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는 치히로가 하쿠가 변해서 된 용을 타고 하늘을 날아 마녀 유바바의 온천으로 돌아오고,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는 하울과 소피가 그들의 마을 위 하늘로 날아 오른다. <붉은 돼지>에서는 주인공과 그에 맞서는 인물이 모두 비행사로서, 작품의 초점이 비행에 맞추어져 있고 비행기와 전투기가 등장한다. 


키키는 비행을 통해 자유를 처음 만끽하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비행을 못하게 되며 마법의 힘이 약해져 "날 수 없으면 아무짝에도 쓸모 없다"란 말을 하며 성장통을 겪는다. 성장을 위한 고독, 외로움, 불안, 책임감에 짖눌려있던 키키는 위기의 순간에 다시 하늘로 날아오름으로써 자유를 되찾고 한단계 성장하는 짜릿함을 보여준다.




미야자키의 작품 하나하나는 평화로운듯 하지만 가볍지만은 않고, 향수를 불러일으키지만 경고의 메세지를 담아내며, 잔잔한듯 하지만 강력한 무언가가 담겨있다. 때로는 파격적이고 신랄하며 직접적으로 어두움을 표현하고 당당히 맞선다. 그리고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그의 메세지는 무엇이었는지 잠시 멈추어 생각에 잠기게 한다. 모든 작품을 다 보진 못했지만 작품 하나하나 곱씹어 보려고 아껴두었단 핑계를 대본다.


미야자키의 세계에는 “빛과 어두움”이 조화를 이룬다. 그는 멸망후 세계를 절망으로 그리면서도 기쁨과 회복과 유머를 엮어냈다. 그러면서도 “파괴와 재창조”를 통해 기존의 것들을 자신만의 색깔로 완전히 새롭게 담아낸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냈다.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그의 어두움에 맞서는 도전의식과 노력은 가히 전설을 만들어내는 재료로써 차곡차곡 쌓여 빛을 발할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는 마침내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내었고, 그의 세계는 세상을 오롯이 마주하여 세상을 향한 진심을 담아낼 수 있는 통로가 되었다. 


2주동안 그의 삶과 작품을 마주하며 그가 전하는 메세지를 통해 용기, 도전, 노력, 헌신, 끈기, 희망을 배운다. 그리고 내가 세상을 향해 전하고 싶은 메세지는 무엇인지, 이를 위해 나아가할 방향은 어디인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빛을 드러내는 것은 어둠이고, 존재를 드러내는 것은 부재와 상실이며, 잃어버린 것들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만들어나갈지 알게된다. 또한 만들어나가는 과정은 도전과 인내의 연속이며 결국은 이과정들을 통해 모든것을 수용하고 회복할 수 있는 힘 또한 얻을 수 있게되길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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