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촌놈들은 모르는 서울이 본가가 아니라 좋은 점을 꼽아 보자.
1. '서울 생활 정산하고 확 집으로 내려가버려??' 일하다 화나면 되지도 않는 객기를 부릴 수 있다.
2. '십 년 후엔 춘천에서 카페나 차릴까',
'늙으면 춘천에서 가족들이랑 모여 살아야지' 같은 현실감각 없는 상상을 제멋대로 할 수 있다.
3. 자주 보지 못하니 서로 부딪치는 일이 줄어들어 가족끼리 사이가 오히려 돈독해진다.
4. 그래서 오랜만에 집에 가면 엄마가 맛있는 음식을 잔뜩 해준다
5. 그 음식들 생각만 해도 서울생활을 버티는 힘이 된다
한 마디로 언제나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
그것이 정신없이 돌아가는 서울생활에서 남모르게 내 안에 품고 있는 나의 자존감이다.
그래서 일 하다 번아웃이 오거나 힐링이 필요한 때, 나는 춘천 가는 itx를 탄다.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서울의 모습을 이방인처럼 바라보다
서울을 벗어날 때쯤 어김없이 잠이 들어 꾸벅꾸벅 졸다보면 어느새 남춘천역.
거기서 아빠에게 한 정거장 남았다고 전화를 하고 춘천역에 도착해 에스컬레이터를 내려가면
스쿠터를 타고 춘천역으로 달려오는 아빠의 모습이 보인다.
요즘 시대에 태어났으면 틀림없이 힙스터가 됐을 것 같은 아빠는
항상 새로운 것에 관심을 갖고 시도해 보는 스타일인데
10여 년 전에는 갑자기 오토바이에 꽂혀 엄마 몰래 스쿠터를 샀고
나한테만 몰래 얘기했다가 내가 엄마한테 이르는 바람에 둘이 또 한바탕 했었다.
그래도 난 스쿠터를 타는 아빠를 볼 때마다 오토바이는 사고 싶고,
근데 엄마한테 크게 혼날까 봐 귀여운 스쿠터로 타협을 본 그 마음이 참 귀엽다.
그래서 스쿠터에 엄마를 뒤에 태우고 바람을 가로질러 달리는 게 소원인 아빠를 위해
엄마 대신 기꺼이 뒷자리에 앉아 아빠 허리를 꽉 껴안는다.
(사실 나는 약간의 스피드도 엄청 싫어하고 그래서 매번 스쿠터에서 내릴 때마다
이번에도 살았다는 생각에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렇게 아빠의 에스코트를 받고 집에 도착하면
엄마가 이미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다 준비해 놓고 날 반긴다.
엄마가 해주는 건 다 맛있지만 그중 내 최애를 꼽자면 된장찌개.
엄마 된장찌개가 그리워 서울에서 유명하다는 된장찌개 식당을 다 찾아가 먹어봐도
내 입맛에 엄마 된장찌개보다 맛있는 건 없었고,
엄마한테 그런 말을 한 뒤로 집에 갈 때마다 된장찌개는 밥상에 꼭 빠지지 않는다.
된장찌개와 제육볶음, 김치 몇 종류, 나물 밑반찬 몇 가지.
유명한 식당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오래 했어서 전국의 내로라하는 식당들을 많이 가봤지만
내게 최고의 밥상은 단연 엄마가 차린 이 밥상이다.
요리를 못하는 나는 대부분 외식이나 배달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는데
이렇게 가끔 엄마가 만든 음식을 먹으면 몸을 정화하는 기분이 든다.
사실 우리 엄마는 조미료를 아끼지 않는 편인데
그냥 왠지 엄마가 만든 음식은 다 몸에 좋을 것 같은 기분.
그렇게 밥을 먹고 난 뒤 내가 설거지를 하겠다고 하면
엄마는 큰일이라도 난 듯 질색을 하며 날 부엌에서 내보낸다.
사실 그전에는 엄마 혼자 밥상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는 게 당연한 건 줄 알았다.
혼자 살고, 또 결혼을 하면서 집안일이 얼마나 힘든 건지 알게 되면서
그래도 설거지는 내가 하려고 하지만 엄마는 매번 너네 집에서나 하라면서 본인이 직접 설거지를 한다.
딸 손에 평생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하고픈게 엄마의 마음인 걸까.
아무튼 집에 내려가면 이렇게 밥을 먹는 게 유일하고 가장 큰 계획이다.
그 외엔 수다를 떨고, 함께 TV를 보고, 또 대자로 누워 쉬다 잠이 들면
다음 날 아침, 생선 굽는 냄새와 도마 소리가 들린다.
그럴 때 잠이 덜 깬 상태로도 난 알 수 있다.
이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서울로 상경한 뒤 매번 집에 내려갈 때마다 이렇게 평온하고 행복했던 건 아니다.
처음 서울에 올라오고 몇 년쯤은 집에 내려가는 일이 오히려 괴로웠고,
집보다 서울에 있는 게 훨씬 마음 편하고 즐거웠던 때도 있다.
내가 고등학교 때부터 우리 집에 계속해서 빚이 쌓였고,
부모님은 은행은 물론 주변 지인들에게 어느새 빚쟁이가 되어있었다.
친척 어른들은 곧 우리 집에 TV에서만 보던 빨간딱지가 다 붙을 거라고 했고,
그때 난 정확히 우리 집에 어떤 일이 생긴 건지 다 알 순 없었지만
우리 집에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평온이 깨졌다는 걸,
내가 그걸 해결할 수 있는 도리는 없다는 건 가늠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상황이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운 건 부모님이란 것도 알 수 있었다.
특히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아빠는
지인들에게 빚독촉을 받는 것에 무척 괴로워했다.
당시 아빠의 근무지가 춘천에서 동두천으로 바뀌어 아빠 혼자 동두천에서 거주를 하고 있었고
그래서 종종 아빠가 언니와 나를 태워 춘천 집에 같이 내려갈 때가 있었는데
춘천으로 가는 내내 아빠는 이런 상황이 발생한 것에 대해 엄마를 원망했고,
지금 본인이 얼마나 힘든지 우리에게 토로했다.
그때 아빠가 그런 말을 속시원히 할 수 있는 상대는 우리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어떤 어려움과 불안은 숨기고 싶어도 숨겨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서
그때의 아빠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 시절 나에게는
이성을 잃은 듯 보이는 아빠를 감당하기 힘들었다.
원래 아빠가 욱하는 성격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저러다 아빠가 차를 확 강가 쪽으로 틀어버려
물에 빠져버리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불쑥불쑥 들었고
그래서 지금은 가장 좋아하는 드라이브코스가 그때 내게는
내내 마음을 초조하고 불안하게 만들었던 고난의 구간이었다.
물론 다행히도 이후에 빨리 취직한 언니들까지 온 가족이 힘을 합쳐 집안 빚을 다 갚고
다시 예전의 평화를 되찾았지만 여전히 그때 그 시간들, 감정들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내 마음 깊은 곳에 각인 돼 있다.
생각해 보면 지금 서울살이에 힘들 때마다 내가 도망가는 피난처가 춘천이라면,
오히려 그때 나의 피난처는 서울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피난처가 양쪽에 있다는 건
어쩌면 나 같은 지방러들이 누리는 가장 큰 특권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