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난 유독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다.
아빠, 엄마는 일 나가고 중, 고등학생인 언니들도 제각기 바빴기에 학교가 끝나고 집에 오면 늘 먼저 TV를 켰고 누군가 집에 오기 전까지 리모컨의 주인공은 나였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방송작가'의 꿈을 품게 되었고 초등학교 때는 스케치북을 잘라 음악 프로그램 MC들이 손에 쥐고 있는 대본을 직접 만들며 놀았고, 중학교 때는 방송반에 들어갔고, 고등학교 때는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라디오 작가'가 될지도 모른다며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라디오'만 주야장천 들었다.
내가 왜 연예인이나 PD가 아니라 작가를 꿈꿨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
그저 난 '꿈'이란 것도 '덕통사고'와 비슷한 거라 생각한다. 교통사고처럼 어느 날 갑자기, 아주 우연히 누군가의 팬이 되는 것같이 '꿈'이란 것도 어느 날 갑자기 나도 모르게 내 마음속에 안착해 내 모든 걸 사로잡았다.
그리고 그 '꿈'을 더 활활 불타오르게 한 건 나의 오빠들이었다.
초등학교 때 TV를 보며 진짜 '덕통사고'를 당한 나는 중, 고등학교 때 그들을 보기 위해 '이번에 전교 50등 안에 들면 콘서트 보내줘!' 등의 딜을 부모님께 여러 번 시도했고, 그중 몇 번은 실제로 성공해 친구와 함께 서울행 기차를 타고 콘서트장이나 방송국에 갈 수 있었다.
특히 엠넷 음악방송을 방청하기 위해 상암동에 있는 방송국에 갔을 땐 팬심과 더불어 '나중에 나도 이런 방송국에서 일해야지'하는 꿈을 향한 마음이 더욱더 커졌고 그래서 그로부터 약 6년 후, 막내작가가 돼 진짜 엠넷에서 일하게 됐을 때 내 안엔 흥분과 설렘이 가득했었다.
하지만 바로 그때, 난 꿈을 이뤘고 또 꿈을 잃었다.
당시 내 모습은 프로그램을 위해 팀원들과 자유롭게 재밌는 아이디어를 주고받고, 뿔테안경을 쓴 채 멋있게 대본을 휘갈기고, 연예인들과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는 내 상상 속 작가의 모습과는 완전 달랐다.
난 그저 회의 시간에 선배 피디, 작가들이 하는 무수한 이야기를 받아 적고 정리해야 했으며 연예인과 말을 나누기는커녕 선배들이 대본을 쓸 수 있도록 그들과 관련된 자료를 인터넷에서 박박 긁어모아 매주 책자를 만들어야 했고, 식사 시간 때마다 선배들에게 메뉴를 주문받아 보안요원의 눈을 피해 내 가방 안에 그 음식들을 전부 숨겨 배달해야 했다.
그렇게 내게 붙여진 '막내'라는 직책에 걸맞게 모든 순간 방송국 안에서 '막내'로 존재하며 밤낮없이 일했던 내가 그때 받았던 월급은 세전 80만 원. 그것도 주급 20만 원으로 계산해 한 주라도 결방되는 일이 생기면 세금을 떼고 통장에 찍히는 돈은 58만 원 정도였다.
그때 난 생각했다. 역시 꿈은 꿀 때가 가장 아름다운 거구나.
그리고 꿈에서 깨 현실을 맞닥뜨린 나는 어느새 밤낮 상암동을 떠도는 상암동 좀비가, 시간과 노동을 언제든 FREE로 내어줘야하는 프리랜서가 되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