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자취를 하며 다양한 집주인들을 만났다.
대부분은 처음 계약할 때만 얼굴을 보고 이후엔 방값 내는 날만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는 정도의 관계였지만 그래도 특별히 기억에 남는 몇 분이 있다.
처음엔 무척 인자한 분이었는데 계약이 끝나 보증금을 받아야 할 때 갑자기 보증금을 절대 줄 수 없다며 '아들이 지금 감방에 있으니 날 고소하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라'라고 배 째란 식으로 나온 주인 할머니가 그렇고, 함께 살던 언니가 월세 세액공제 때문에 동의서를 요구하자 '젊은 사람이 약아빠져서 나쁜 짓만 한다'며 혼쭐을 냈던 할아버지, 할머니 부부가 그렇다.
또 내가 잊지 못하는 집주인이 한 분 더 있는데 바로 결혼 전 내 마지막 원룸의 주인아주머니다.
무엇보다 가격적인 면이 가장 좋았지만 방을 구경하러 갔을 때 만났던 주인집 아주머니도 퍽 맘에 들었다. 처음 만났을 때 아주머니는 '여자 혼자 사는데 안전이 제일 중요하다'며 건물 곳곳에 설치된 cctv를 보여주고, 내가 사는 층에는 전부 옆에 있는 초등학교 여선생님들이 산다는 정보를 알려주었다. 그러면서 혼자 자취하느라 많이 힘들 텐데 본인을 서울 엄마라고 생각하라고, 김치 같은 게 필요할 땐 얼마든지 말하라고 따뜻한 말들도 건네주었다.
그렇게 처음 집을 본 날 계약까지 일사천리로 진행했고, 마침내 이삿날이 되어 언니, 형부와 함께 집 앞에 도착했다. '5층이라고? 원래 4층짜리 건물인데 가건물을 올린 거네. 옥탑방처럼 춥고 더울 것 같은데' 내가 계약한 5층 방을 올려다보며 형부가 말했고 건물을 올려다본 나는 깜짝 놀랐다. 내가 계약한 5층은 딱 봐도 4층과 색깔부터 완전 다른 가건물이었고 난 그걸 이삿날 안 것이다.
생각해 보니 내가 방을 보러 갔을 땐 건물 외관이 잘 보이지 않는 밤이었다. 주인집 아주머니가 '다른 땐 시간이 안 되니 꼭 밤에 와야 한다'라고 해서 아무 생각 없이 퇴근 후 늦은 밤에 방을 보러 갔던 것이다. 튼튼해 보이는 건물 위에 올려진 컨테이너 같은 내 방을 보자 '혹시 일부러 날 밤에 부른 거 아냐?'라는 의심과 원망의 마음이 절로 솟아올랐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계약서를 작성했으니 열심히 이삿짐을 옮겼고 그 방은 이제 나의 '서울 임시거처'가 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본인을 엄마같이 생각하라던 주인집 아주머니는 방에 무언가 문제가 생겼을 땐 내 연락을 잘 받지 않았고, 내가 하루라도 월세를 밀리는 날엔 아침부터 전화를 해 입금을 재촉했다.
하긴 아무리 사이좋은 시어머니와 며느리도 진짜 엄마와 딸 같은 사이가 되기는 힘든 법이라던데 집주인과 세입자가 엄마와 딸 같은 사이라니,
내가 말도 안 되는 일을 기대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