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아닌 방에 삽니다

by 찌지링

서울에서 나의 집은 늘 한 칸짜리 '방'이었다.

어릴 때부터 내 방을 갖는 게 소원이었던 나는 마침내 서울에 와서 참 많은 '방'을 전전했다.


나의 마지막 서울 방은 7평짜리 작은 원룸이었는데

서울 상경 후 늘 언니에게 얹혀살다가 언니가 결혼한 다음

처음으로 내가 부동산을 찾아가 직접 알아보고, 계약하고, 매달 내가 번 돈으로 월세를 낸 곳이기에

그곳이야 말로 진짜 내 서울 방이라 할 수 있겠다.


1인용 침대 하나, 책상 하나, 스탠드 옷걸이 하나.

그리고 남은 자리는 두 사람이 엉덩이를 딱 붙여 앉아야 할 정도의 공간이 전부인 방.

두 사람이 오래 함께 있기에 불편한 공간이라 그런 것도 있지만 딱히 누구에게 보여줄 만큼

자랑스러운 곳은 못되었기에 4년을 살면서도 그 집에 초대한 사람은 2,3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심지어 나조차도 하루 종일 머물기에는 답답함을 느껴 틈만 나면 근처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막상 신혼집으로 이사를 하려고 짐 정리를 마친 후 그곳을 떠나려 하니 이상한 마음이 들었다.

그저 먹고 자는 곳이 필요해서 머물렀던 곳인데 떠나려니 섭섭한 마음이 든다는 게

말 그대로 참 이상한 마음이었다.

그러면서 유난히 맘이 지쳤던 어느 하루 끝,

홀로 원룸방 침대에 앉아 엉엉 소리 내 서럽게 울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내 '이곳이 없었다면 어쩔 뻔했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넓은 서울 땅에서 온전히 내가 나일 수 있었던 유일한 공간.

그래서 작고 누추해도 그곳에 들어오면 몸의 긴장이 풀리면서 '집이 좋다'라고 읊조리게 됐던 내 방.

나는 지금도 그곳을 지나갈 때마다 애틋한 마음으로 그곳을 바라본다.


하지만 내가 서울에 올라와 머물렀던 여러 '방'들에 대해 이런 마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에게 있어 서울에서의 집이란, 편히 쉴 수 있는 곳임과 동시에

불안하고 무서움을 느끼게 하는 존재이기도 했다.

날마다 쏟아지는 흉흉한 뉴스 때문인지 태어나서부터 쭉 단독주택에서만 살아서인지

아무 정보도 없는 누군가와 한 건물에 산다는 막연한 공포감을 나는 서울에 올라와서 처음 느꼈다.

지금도 지하철 역을 나와 저 7평짜리 원룸의 문을 열고 들어가기까지

내가 얼마나 긴장을 했었는지 그 기분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내가 살았던 원룸은 인적이 드문 골목에 있었기 때문에 밤늦게 일이 끝날 때마다

지하철 역에서 어두운 골목, 골목을 걸어가는 것부터 곤욕이었다.

빌라 앞에 도착해서 현관 비밀번호를 치고,

1층에서 5층까지 내 발소리만 들리는 고요한 계단을 걸어가고,

내 원룸 앞에서 비밀번호를 누르는 모든 순간이 내겐 누구에게 쫓기는 것처럼 무서운 일이었다.

그래서 어쩌면 원룸 안에서 느꼈던 나의 안도감과 편안함은

하루 종일 사람들과 뒤섞여 살았던 하루의 긴장감이 풀려서가 아니라

그곳까지 오느라 바짝 긴장해 있던 몸과 마음이 풀려서였던 것 같기도 하다.


돌이켜보면 이런 대상이 없는 공포는 서울에 올라오는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내가 서울에 올라와 처음으로 언니와 자취를 했던 곳이 대학가에 있는 오래된 나무집이었는데

거실, 부엌, 화장실, 방 2개인 그 집에서 방 하나는 언니와 내가,

다른 방 하나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이 살았다.

이렇게만 들으면 하숙집이나 셰어하우스가 떠오르겠지만

말 그대로 '셰어하우스'일 뿐 그때 내가 생각했던, 그리고 시트콤에서 봤던 셰어하우스와는 너무 달랐다.

일단 주인이 그 집에서 함께 살지 않아 그 집에는 우리와 옆방 사람들뿐이었고,

우리는 서로의 정보를, 심지어는 얼굴조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 집에 들어설 때마다 얼른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재빨리 열쇠로 방문을 열어 쏙 들어갔고

이후엔 문을 잠근 채 웬만하면 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건 옆 방 사람들도 마찬가지여서 거실과 부엌은 아무도 사용하는 사람이 없어

늘 어두컴컴하게 불이 꺼져있었고, 한 집에서 화장실을 같이 쓰면서도

우리는 신기하게 몇 개월동안 단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었다.

방 문을 잠그고 누워있으면 남자 여러 명이 떠드는 소리가 들려

3명 정도 되는 남자들이 옆 방에 살고 있구나, 짐작할 뿐이었고

그래서 더더욱 집을 들어오고 나갈 때, 화장실을 갈 때 집 안에 인기척이 없는지 살핀 후 움직이곤 했다.


물론 모든 서울에서의 생활이 다 그랬던 건 아니지만

이렇게 집까지 가는 길이 공포스럽고, 또 집 안에서도 맘 편히 있지 못하는 상황들을 여러 번 겪으면서

'돈이 많았으면 골목이 아니라 지하철역과 가까운 곳에서,

복도에 cctv가 있고 관리 사무소가 있는 곳에서 살 수도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을 참 자주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세상 참 치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안전도 돈으로 사야 되는 세상이라니.

이전 04화스무 살, '빚투'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