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다른 곳으로 거주지를 옮기기로 결정한 후 문득문득 이런 장면들이 떠올랐다.
캐리어를 질질 끌고 청량리역을 내리던 열아홉 살의 내 모습,
월세날이 다가오는데 돈이 없어 함께 사는 언니와 동네 벤치에 앉아 발을 동동거렸던 일,
때가 되면 무거운 반찬을 싸들고 내가 살던 원룸에 찾아왔던 엄마의 모습 같은 것들.
사실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에서 자취를 한다는 게 이민처럼 대단하고 특별한 일도 아닌데
적어도 내게는 무척이나 서럽고, 대견하고, 특별한 일이었나 보다.
그래서 그때의 나를 공감해 주고 토닥이고 싶은 마음에 이 책을 쓰게 됐다.
물론 막상 내가 쓴 글을 쭉 모아놓고 보니 온통 찌질한 이야기들뿐이지만
그 찌질했던 순간들 덕분에 내가 조금 더 자라고, 그다음엔 조금 더 잘할 수 있었다는 걸 안다.
어쩌면 지금까지의 내 인생은 둘 중 하나였던 것 같다.
잘하거나, 자라거나.
물론 잘했던 순간이 훨씬 적지만 그래도 괜찮다.
찌질하고, 실패하고, 실망하고, 불안해했던 그 나머지 시간은
내가 잘 자라고 있는 시간이었으니까.
그리고 화려하고 복잡한 서울 어딘가,
작은 원룸에서 눈을 감고 눈을 뜨며 보내는 너의 하루도 그런 시간일 거라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