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를 그토록 울리는 건 누구인가?

by 강비

그들과의 조우는 흡사 교통사고였다. 난데없이 앞에 끼어든 자동차와 같은. 부딪히고 남은 충격이 너무나 강렬한. 대형사고. ‘어머나’란 가사를 뱉으며 손을 입 가에 갖다 대는 여자의 모습을 본 그 길로 K의 인생은 전혀 다른 모습이 되었다. 지독한 후유증으로 앓았다. 팬 카페에 가입하고, 다섯 멤버들의 이름을 외우고, 데뷔 전 리얼리티와 ‘텔 미’ 이전의 방송 활동들을 순식간에 섭렵했다. 그들이 활동하는 동안의 목, 금, 토, 일은 그저 평범한 날들이 아닌 TV 앞에 철썩 같이 붙어있어야 하는 날이었다. 생전 본 적 없었던 ‘뮤직뱅크’였다. 장안의 화제인 ‘텔 미’를 부르는 그들과 그들을 응원하는 팬들의 모습을 보면서 언젠가는 그들을 두 눈으로 직접 보고 말리라는 다짐을 했다. 민선예, 박예은, 선미 짱, 안소희, 김유빈. 제 목소리로 응원법을 외치는 그 순간을 그리며.

K의 세상은 온통 원더걸스로 넘쳤다. 그 마음은 제법 요란하게 끓어 넘쳐 숨길 수도, 숨겨질 수도 없는 것이었다. 주변 모두가 암 쏘 쏘리 다 거짓말을 외칠 때, K만은 꿋꿋이 텔 미의 가사를 읊었다. “여잔데 왜 여자 그룹을 좋아해?”라는 물음 따윈 대수롭지도 않은 것이었다. 좋아서. 그냥 너무너무 좋아서. 좋은데 이유가 필요하고 성별이 필요해? K는 민선예, 박예은, 선미, 안소희, 김유빈을 첫사랑으로 정했다.


K는 눈물의 주체가 슬픔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노바디’로 데뷔 1년 만에 대상을 받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첫사랑은 자주 K를 울렸다. 처음으로 열린 콘서트에선 먼 좌석에 앉는 바람에 얼굴을 보기는커녕 면봉만 한 몸집만 볼뿐이었지만, 그들과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 시시때때로 울었더랬다. 미국이란 장소를 그들의 새로운 무대로 결정한 그들의 선택에는 전폭적인 지지를 맹세하며 웃었지만, 그 선택에 힘겨워하는 그들을 볼 때면 저도 모르게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들이 기쁠 때도, 그리고 그들이 힘겨워할 때에도 K의 눈은 종종 축축하게 젖었다. 존재하는 것. 그 자체만으로 눈물이 날 것 같은 것. 그것이 곧 사랑임을 배웠다. K의 사랑이었다.


기다림이 기다림으로 이어지는 동안 누군가가 말했다. 아직도 좋아해? 여전히 사랑한다. 첫사랑이란 게 무릇 그렇듯, 떠올리면 울적해지다가도 그래도 선뜻 놓을 수가 없었다. 기다리고 싶었다.


그룹의 방향성이 불투명해질 때 즈음, 그들은 악기를 메고 다시 나타났다. 사랑하지만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라 어림짐작 했었다. 꽤 넓은 짐작을 배신한 만큼 충격과 감격의 폭도 넓었다. 모두가 끝이라고 재단하는 동안, 그들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곳에 범접하고 있었다. 그 경이로움에 K는 또 소리 내어 울었다.

난데없이, 그들을 맞닥뜨린 지 11년이 다 되어가는 K는 여전히 운다. 어제는 퇴근길 개찰구에서 만난 선미의 게임 광고를 보다 문득 눈에 눈물이 맺히고 말았다. 밤 11시였고 유난히 고된 하루였다. 사회 초년생이었다. 벽 한 면 가득 차지한 선미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생각했다. 당신들이 늘 그랬던 것처럼, 나도 힘내 볼게. 그들은 K의 첫사랑이었다.

곧 눈물을 닦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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