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곧잘 같이 어울리곤 했던 친구가 있었다. 일곱 살의 끝자락 무렵 병설 유치원으로 전학 온 나에게 친구라곤 그 애가 유일하다시피 했다. 마침 사는 아파트도 같았던 터라 유치원에서의 모든 일과가 끝나고 나면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만나서 놀았다. 하루는 그 애 집을, 하루는 우리 집을 번갈아 가며.
불과 일곱 살짜리였던 나의 일곱 평짜리 세계엔 가족들만이 전부였다. 어디서 무얼 하든, 그것이 놀이건 공부건 늘 엄마와 동생과 함께 했던 나에 반해, 동갑인 그 애의 세계는 열 평쯤은 되어 보였다. 혼자서 척척 할 줄 알았고 아는 것도 많았다. 혼자서는 수영장에 가본 적도, 가볼 엄두도 내지 못했던 나는 홑몸으로 버스를 타고 수영장에 가서 놀았다는 그 애의 얘기를 듣고 소스라치게 놀랬다. 혼자서 수영장을 갈 줄 안다고? 나는 버스도 못 타는데? 멋대로 버스를 탔다가 길을 잃었던 언젠가의 나를 떠올리며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하지 못하는 사소한 것들을 한창 동경할 나이기도 했으니까.
그 애와 수영장에 갔다. 엄마와 동생이 아닌 사람과는 처음 가는 것이었다. 그 애는 능숙하게 버스를 타 수영장으로 향했고, 나는 그 애의 등 뒤를 졸졸 쫓았다. 어린 나의 시선엔 마찬가지로 어린 나이였던 그 애가 어른 내지는 언니처럼 보였다. 일곱 살이 생각하는 어른의 기준은 단순하다. 나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으면 그게 곧 어른이었다. 그 애는 혼자서 버스를 탈 줄 알았고, 우리 동네에서 멀리 떨어진 공설 운동장 수영장을 갈 줄을 알았으며, 어른의 도움 없이 성인 전용 풀장에서 노는 법도 알았다. 수영장을 나오고 나서는 육개장 사발면을 먹어야 한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태어난 지 7년 만에 수영장 앞 매점 파라솔에서 먹는 육개장 사발면의 맛을 알아버린 나는 그 후로도 몇 번이나 그 애와 수영장을 갔다. 수영보다 맛있었던 컵라면 그 하나를 위해서.
돌이켜보면 제법 많은 것들의 시작엔 그 애가 있었다. 패미컴 게임이란 걸 그 애의 집에서 처음 접했고, 생일날엔 유일한 친구였던 그 애를 초대해 생일 파티를 했다. 가족이 아닌 누군가와 처음 맞는 생일에 들떴던 엄마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음식을 했고, 만들다 못해 피자까지 만들었다. 그 애 더게 처음으로 엄마가 만든 수제 피자를 먹은 셈이었다. 나와 그 애. 단 두 사람 앞에 호화롭게 차려진 생일상을 앞두고 우리는 사진을 찍었다. 그 사진은 아직도 앨범 어딘가에 있다. 어렸던 나와 그 애가.
같은 초등학교에 들어간 우리는 더 이상 낡은 매점 앞에서 육개장을 먹곤 했던 그때의 우리가 아니었다. 초등학생이 되면 헤어지기로 작정이라도 한 것처럼, 초등학생이 되면 각자의 세계로 돌아가기로 정해 놓은 듯. 우리는 자연스레 멀어졌다.
초등학교는 교실 한 칸만을 뚝 떼어내 쓰던 병설 유치원보다 훨씬 큰 곳이었다. 비교도 안 되는 수의 선생들과 학생들이 교실과 학교를 빼곡히 메우는 것을 보며, 우리 둘만이 세계의 전부는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여덟 평짜리 나의 세계는 초등학교 건물만큼이나 커졌다. 나에겐 그 애가 아닌 다른 친구가 생겼고, 그 애는 내가 아닌 다른 친구와 복도를 걸었다. 나는 그 애의 집이 아닌 또 다른 친구의 집에 갔고, 그 애는 내가 아닌 또 다른 친구와 오락기 앞을 서성였다. 우리 사이에 놓인 자그마한 거리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걷잡을 수 없을 만큼, 거리에 거리를 더해갔다. 우리는 인사 조차 나누기 힘든 사이가 되고 말았다.
그 애는 ‘우리’라 묶을 수 없을 정도로, 평범의 극치에 달하는 내가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점점 멀어져만 갔다. 그 애는 고학년이 되면서부터 소위 말하는 ‘노는 아이’로 타인들의 입에 오르내렸고, 그 타이틀은 중학교에 가서도 떨어질 줄을 몰랐다. 늘 소심하고 겁이 많았던 나에게 있어서 그 애는, 단순히 멀어진 친구가 아닌 말을 붙이기 힘든 ‘어느 누군가’가 되어 있었다.
‘우리’에서 갈라진 우리가 ‘나’와 ‘너’가 된 이후로 딱 한번, 그 애가 먼저 말을 건 적이 있었다. 급식을 먹으려 줄을 서있는 나에게 그 애가 인사를 한 것이었다. 안녕, 이라는 그 짤막한 인사를 어색하게 받아내고는 나를 보는 그 애의 눈길을 피해 같이 서 있던 다른 친구와 마저 이야기를 했다. 그때는 일종의 편견이 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이름난 일진이 된 그 애가 말을 건 데엔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고.(가령 내 앞자리에 서게 해달라던가) 아닐 수도 있는데. 그저 나에게 인사가 하고 싶었을 수도 있는데.
우연찮은 만남이 이어지면 그것 또한 인연일지도 모른다. 그 애는 인연일지도 몰랐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주말 저녁마다 편의점으로 출근했던 나는 또다시 그 애를 만났다. 우리 집에서 걸어서 20분이나 걸리는 곳이었다. 그 애는 근처로 이사를 간 모양인지 주말 저녁마다 내가 일하는 곳에 출근 도장을 찍었다. 중학교 졸업 후, 지나가다가도 마주친 적이 없었던 그 애는 여전히 그때의 그 얼굴을 하고선 캔맥주를 사 갔다. 나는 그 애를 한 번에 알아보았지만 그 애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듯했다. 알아본다 한들 뭘 어떻게 하지도 않았을 테지만.
편의점 카운터에 설 때마다 종종 그 애를 마주했고, 여태껏 그래 왔듯 모른 척을 했다. 캔맥주와 빨대를 챙기는 그 애를 보며 아는 척이라도 해볼까, 하는 충동이 이따금씩 들끓었지만 나의 그 어느 감정보다 앞서 나가는 겁이라는 감정이, 내 입을 틀어막고 놓아주지 않았다. 끝끝내 말 한번 붙여보지 못한 채 그곳을 나왔다. 6개월의 시간 동안, 나는 그 애와 그 애 손에 들린 캔맥주만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지나간 인연에 일일이 집착하지 않는다. 가버린 인연은 이미 지나가버린, 다시는 붙잡을 수 없는 과거의 인연에 불과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 올 인연은 끈질기게 쫓아와 내 옆에 달라붙으리라 믿는다. 하지만 그 애는 간혹 나를 찾아와 인연에 대한 내 모든 태도를 뒤틀어 놓는다. 한 번쯤은 잡았어야 했을까. 줄을 서 있던 그때에. 캔맥주를 사 가던 그때에. 아니면 내 옆을, 내 앞을 지나갔던 수많은 그때에. 그 애는 내 옆에 자리할 수 있었던 끈질긴 인연일지도 몰랐다. 어쩌면 우리는 친구가 될 수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