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약사 출근 일지
대학병원으로 출근하기 시작한지 어느새 3주가 훌쩍 지났다.
졸업 후 진로를 결정함에 있어서 약국과 대학병원이라는 선택지를 두고 고민할 때 후자로 마음이 기울었던 것은 의외로 단순한 이유때문이었다. 개인 약국 같은 경우, 몇몇 큰 약국을 제외하고는 내 방만한 크기의 작은 공간에서 하루 종일 근무해야한다는 것이 싫었다. 10평 남짓한 공간 중, 환자분들을 위한 공간을 빼고나면 대략 5평정도 되는 공간에서 매일 약국장과 부대끼며 일하는 모습을 떠올리면 숨이 턱 막혀왔다. 20살부터 일을 시작해서 60세가 내일 모레인 지금까지 일하고 계신 엄마가 항상 "개인 사업자 밑에서 일하는 게 얼마나 치사한 일인지 생각한다면, 일단은 병원에 취업했으면 좋겠다."고 따라다니며 잔소리했던 것도 의사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지만 말이다.
그렇게 나는 어린이병원, 암병원, 본관, 치과병원 등 단독건물이 몇 채나 되는 대학병원에 운좋게 입사하게 되었다. 그치만 일하면서 내게 허락된 공간은 체감 상 1평에 지나지 않는다. 그만큼 한 자리에 서서 일하는 시간이 길다. 지난 금요일엔 8시간 근무 중, 점심시간을 빼고 30분가량 앉아서 업무한 시간 이외에는 온종일 서서 근무했다. 며칠 전 주문한 압박스타킹을 때마침 신고 갔던 것은 우연한 행운이었을까, 아니면 미래의 내가 보낸 신호를 감지한 덕일까. 압박스타킹을 신었음에도 발바닥이 너무 아파 집에 오는 길이 평소보다 더 오래걸렸는데, 만약 신지 않고 근무했다면 집에 오지 못하고 길거리에 주저 앉았을지도 모르겠다.
점심시간에는 월말 부서 회의가 있었다. 입사 후 처음 참여하는 회의이다보니 내심 기대도 했고, 약 조제와 관련해서 중요한 전달사항이 있는 경우도 있다길래, 오전 내내 높은 업무강도에 시달렸지만 정신 똑바로 차리고 듣겠다는 마음으로 참여했다. 그런데 내가 생각한 것과 회의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회의를 진행하면서 점점 주위 선생님들이 식사를 못하는 것이 느껴졌고, 나 역시 도시락을 다 먹지 못한 채 식사를 그만 할 수 밖에 없었다. "코로나로 인해서 병상에 환자수를 많이 줄였고, 그래서 병원이 매우 적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사들의 월급을 줄이지는 않았다."는 것이 회의의 요지였기 때문이다.
병원 바깥, 약국은 코로나때문에 고용 불안정이 있는 상황인 것은 맞다. 실제로 같은 해 졸업한 동기들을 보았을 때, 처방전 수가 크게 줄어 일방적으로 약국에서 무급 휴가를 제안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더라. (근로계약서를 썼는데도 말이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의 상황보단 나으니, 적어도 월급이 꼬박꼬박 나오니까 내가 다니는 회사는 좋은 곳이라고 착즙하며 다니라는 것일까? 평소에 의료인력을 갈아넣어 최소한의 인력으로 운영하는 곳이 대학병원이다. 이런 문제는 간호사 직군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렇게 알뜰살뜰 운영해서 모은 돈은 다 누구에게 가는건지,,,,,,, '이익이 많이 나면 성과급이 있는 곳이던가!' 라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그래도 내일이면 다시 나는 '개인 사업자 밑에서 일하는 것보단 덜 치사한 것이겠지'라며 착즙하며 출근을 하고 업무를 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