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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쪙약사 Apr 20. 2020

병원 약사 일기장

새내기 약사의 첫 출근

<2020.03.09>

내 인생 첫 출근 날짜.


첫 출근하기 까지 코로나로 우여곡절이 많았다. 코로나 사태가 심각 해지면서, 병원에서는 해외여행을 다녀오면 3월에 발령이 나기 어려울 것 같다고 연락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다녀오면 한동안 여행을 갈 수 있을지 불투명하기에 발령을 미루고 여행을 가기로 했었다. 그런데 2월 19일부터 한국의 코로나 확진자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였고, 이로 인해 결국 대만은 한국을 입국 금지하기로 했다. 3월 4일 예정되어있었던 타이베이 여행은 물 건너갔고, 나는 그 대신 병원으로 출근을 하게 되었다.


금요일에 한 주를 마무리하고 애인과 만나, 5일 동안의 이야기를 구구절절 쉴 새 없이 했더니 "이제 1주일 출근했는데 에피소드가 이렇게 많아서 어떡해."라며 함께 웃었다. 그 웃음엔 직장인들의 애환이 담겨있었다.


[3월 9일, 월요일]

아침 7시에 출근하는 것 자체가 미션이었다. 약사 고시가 끝나고 약 1 달반을 12시, 1시에 일어나던 백수생활이 이어지고 있었는데, 7시까지 출근해야 한다는 사실은 꽤나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집에서 병원까지 7시에 도착하려면, 5시에 일어나 준비하고 6시 전에 집을 나서야 했다. 다행히도 3박 4일로 다녀온 국내여행 때문에 몸이 꽤나 피로했는지 일찍 잠들었고, 5시간 정도의 숙면을 취하고 출근을 했다.


출근 첫날 오후에는 인사팀에 가서 근로계약서를 쓰라는 안내를 받았다. 근로계약서를 쓸 때 보통, 연봉계약서를 쓰는 등 연봉을 알려주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들었는데, 나는 내 연봉에 대해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지금이 2020년이 맞는지, 내가 다니는 회사가 비교적 큰 규모의 병원인데 이런 처우가 여전하다는 것에 한숨만 나왔다.


[3월 10일, 화요일]

인수인계를 겨우 하루 받았을 뿐인데, 오늘부터 당장 혼자 일해야 한다고 했다. 신입을 옆에 끼고 가르치기에 병원에서 고용한 약사의 인력은 부족한 터였다. (사실 난 약대에 오기 전에 간호학과를 전공했고, 최소한의 인력을 갈아서 운영하는 한국의 병원 시스템이 심히 못마땅했던 터라 졸업 후 병원약사가 될 줄을 꿈에도 몰랐었다.) 병원에서는 약사의 모든 업무를 매우 잘게 잘게 쪼개고, 각 포지션마다 한 명씩 배치된다. 각 포지션에 배정되는 인원이 딱 1명이기 때문에 내가 내 분량을 해내지 못하면 환자들에게 약이 제때 투약될 수 없다는 것이 주는 압박감과 긴장 속에 정신없는 하루가 끝났다.     


[3월 13일, 금요일]

이래저래 무사히 첫 주가 지나나 싶더니 대형사고를 치고 말았다. 나 때문에 선생님들 몇 분이 정시 퇴근을 하지 못하셨고, 첫 주부터 M/E (medication error) 보고서를 작성해야 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나 때문에 일어난 일인데 내가 수습할 수 있는 것은 없고, 한 선생님은 거의 2~3시간가량 늦게 퇴근하셔야 했던 상황이었다. 그 안에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병원 밖을 나오면서 다리가 후들거리고 온 몸에 힘이 쭉 빠져있었다. 선생님들께서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시 알려주시고, 뭔가 이상한 것이 있을 때는 꼭 확인하고 진행하라고 신입 시절이 지나가면 묻기 어려워지는 시점이 분명히 온다고 말하셨다.


직장인의 주말은 진짜 순삭이었고, 내일은 다시 월요일이다. 부디, 이번 주는 야무 딱지게 정신 차리고 1인분의 몫을 다 해내길 바라본다.  마이너스 인분을 벗어나는 그 날까지 화이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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