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에게 보내는 열여섯 번째 편지
잘못하면 날아간다니, 너무 재밌는걸? 내가 하는 모든 것에 즉각적인 달콤함을 느끼려고 조급해지면 생각하지 못했던 곳에서 일이 터지기도 하고, 원치 않는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고 생각해.
Take your time :D
어제 테니스를 너무 과격하게 쳤는지, 밤부터 오른 팔꿈치가 찌릿하며 아파. 아마도 테니스 엘보우인 것 같아. 당분간은 테니스를 쉬며 주변 정리도 하고 나도 쉬어가는 타임을 가져야 할 듯해.
사실 미국에 오기 전, 회사 내에 테니스 동호회가 있어 간헐적으로 활동을 했어. 그래서 누군가가 "구력이 어떻게 되세요?" 하면 딱 몇 년이라고 말하기가 어려워. 이를 테면 삼 개월 치다가 사 개월 쉬고, 반년 치다가 일 년 쉬는 패턴이었거든.
2017-18년도에는 1년 조금 넘게 사회 테니스 동호회에서 열심히 활동한 적이 있었는데, 지금 실력의 기초는 아마 그때 다져진 것이 아닌가 싶어. 그 이후로는 시들해지다 결국 연례행사처럼 테니스를 쳤어. 하지만 미국에 온 후로는 각 잡고 열테(열심히 테니스 치기)하는 중이야.
한국과는 다른 미국 테니스
미국은 운동인들의 천국이야. 저번 일기에도 썼듯이 다양한 종목의 운동들이 다채롭게 섞여 있거든. 그중에서도 테니스는 아주 인기 있는 종목 중 하나인 듯 해. 남편이 미국에 와서 한국인 테니스 동호회 소모임을 만들었어. 하지만 이틀 전에 열리는 코트 예약 전쟁에서 살아남기가 매우 힘들어. 아무래도 학교에서 운영하는 코트이고, 이 근방에서 MIT 테니스 코트가 제일 좋은 편이라 그런 것 같아.
한국에서는 코트 예약이 오전 9시에 열렸어. 출근해서 디지털시계를 켜놓고 미친 듯이 예약 전쟁을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 근데 그거 알아? 미국이나 한국이나 모두 1분 안에 예약이 마감된다는 사실을. 모두 대단한 사람들이야 그렇지?
하지만 MIT 테니스 코트는 시설이 최상급에 속하기 때문에 그런 전쟁이 열리는 거고, 그런 코트를 제외하면 동네마다 코트가 1개 이상 있고, 예약을 안 해도 언제나 여유로운 곳도 많아. 한국은 테니스 코트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인데, 미국은 적당한 곳에서 치려고 하면 코트 없어서 못 친다는 얘기는 못할 듯해.
그리고 또 다른 점은 사람들이야. 이곳에는 코트가 많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다들 여유로운 건지 모르겠지만 가족 단위로 아이들과 함께 테니스를 많이 치러 나와. 아장아장 걷는 애들이 유아용 테니스 라켓을 휘두를 때, 얼마나 귀여운지 몰라. 십 대들의 테니스 모임 교류도 활발한 것 같고, 머리가 하얗게 센 할아버지들도 젊은이들 못지않게 파워풀한 테니스를 즐기더라고.
우리나라는 대부분 단체에서 테니스 코트를 점령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 최근에는 실내 테니스장이 많이 생겨서 어떤 분위기인지는 모르겠지만, 몇 년 전만 해도 테니스 자체는 주로 성인들 위주의, 게다가 진입 장벽도 매우 높은 스포츠였어. 그래서 만약 공을 잘 못 치는 사람이 나오면 눈칫밥을 먹어야 했던 것 같아.
마지막은 테니스장의 풍경이야. 테니스장에서 한국인들은 랠리를 하면서 몸을 풀고 주로 복식 게임 위주로 하는 것 같아. 종종 단식도 하지만, 내가 한국에서 동호회를 할 때에 복식경기를 주로 했어. 하지만 미국에서는 의외로 복식경기는 많이 안 하더라. 주로 랠리를 하거나 단식을 하는 것 같아. 여기서도 민족적인 특성이 나오는 걸까? 우리나라는 함께 조직적으로 하는 게임을 즐기며 전투력을 불사르는데 비해 미국은 나 혼자서 컨트롤할 수 있는 파워풀한 경기를 즐기는 것.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말이야.
나는 복식경기가 좋아. 단식도 매력이 있지만, 너무 힘들기도 하고, 무엇보다 사람들과 같이 운동하면서 즐기는 게 더 재밌기 때문이야.
미국에서 흥미로웠던 것 중 하나는 대체 스포츠였어. 야구를 대체할 수 있는 소프트볼, 테니스와 탁구를 결합한 피클볼 등 진입 장벽이 높은 스포츠를 더 쉽고 간단한 룰로 즐기는 모습을 많거든. 어제 갔던 동네 코트에는 피클볼 코트 라인도 같이 표시되어 있는데, '참 다양성을 존중해 주는구나' 하고 생각했어.
이런 환경과 더불어 테니스에 중독된 남편 덕분에 나는 매주 아주 열심히 테니스를 치고 있어. 처음에는 귀찮기도 하고, 잘 안되면 짜증도 나고 또 그러면 하기 싫어졌는데 꾸준하게 하다 보니까 미세하게라도 성장하더라. 어제 못 받았던 탑스핀 공을 오늘은 받을 수 있게 되고, 예전엔 따라가지 못했던 코스를 스텝을 밟으며 한두 번씩 치는 내 모습을 발견하면서 테니스가 점점 더 너무 재밌어지는 거 있지?
성장한다는 게 이런 걸까? 어느 단계까지는 죽어라 해도 안되고 짜증 나고 포기하고 싶었는데, 갑자기 어느 순간 되는 기쁨. 그 결과 또 다른 욕심이 생기고, 점점 나도 모르게 커가는 것. 그 속에서 '어쩌면 나도 의미 있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드는 것 같아. 그동안은 이것도 저것도 애매하게 하다 말고 해서 가족들이 뭐라도 하나 똑바로 하라고 잔소리했거든. 왜 아주 작은 것부터 성취하는 습관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는지 알 것 같아.
나아는 테니스 잘 치는지 궁금해. 언제 기회가 되면 테니스, 아니면 피클볼이라도 같이 해보자! 너무 즐거울 것 같아. 어제 찍은 테니스 랠리하는 모습의 영상을 마지막으로 인사할게. 부족하지만 아직 성장하는 중이니 이쁘게 봐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