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우리도 사랑일까' (Take This Waltz)
*본문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인생엔 당연히 빈틈이 있는 거야. 그걸 일일이 미친 사람처럼 메울 순 없어.” 새롭게 사랑하게 된 남자 때문에 남편을 버린 여자에게 그녀의 전 시누이는 이렇게 말한다.
여자는 자신의 행동을 강하게 비난하는 전 시누이의 말에 당황하지만 제대로 된 반박 한마디 하지 못한다. 그녀의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평화로운 캐나다 교외에서 다정한 남편 루(세스 로건)와 5년째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마고(미셸 윌리엄스)는 자신의 결혼 생활에 큰 불만이 없다. 물론 익숙해진 남편과의 일상에 가끔 따분함을 느끼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러던 중 일 때문에 떠난 여행에서 우연히 옆집 남자 대니얼(루크 커비)을 만나며 마고의 마음에는 소용돌이가 몰아치기 시작한다.
여행을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온 마고는 계속해서 눈앞에 나타나는 옆집 남자 때문에 괴로워하고 결국 남편을 버리고 새롭게 사랑하게 된 대니얼을 선택한다.
‘남편을 배신하고 새로운 사랑을 찾아가는 여자의 이야기’는 드라마나 영화의 흔한 소재다. 하지만 진부한 이 소재는 사라 폴리 감독의 손길을 거치며 '우리도 사랑일까'에서 설득력 있게 그려진다.
마고는 충분히 좋은 남편이지만 어느새 ‘헌것’이 된 루에게 ‘빈틈’을 느낀다. 매일 아침 상대를 사랑하는 마음을 온갖 욕으로 표현하고 함께 밥을 먹고 장난을 치고 거리를 걷지만 마고는 ‘새것’이었을 때의 루만큼 남편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는 사이 대니얼은 이미 결혼을 한 마고에게 조심스럽고 꾸준하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다.
대니얼의 사랑으로 루로부터의 빈틈이 메워질수록 마고의 마음속에는 점점 루 대신 대니얼의 자리가 커진다. 그녀의 상황을 알기라도 하듯 수영장 샤워실에서 우연히 만난 지긋한 나이의 노인들은 “새것도 결국 헌것이 된다.”고 말한다.
비록 헌것이긴 하지만 남편에 대한 의리를 저버릴 수 없는 마고는 대니얼에게 “지금이 아닌 30년 후에 키스하자”고 약속을 해보지만 소용이 없다. 그녀는 지금 마음껏 대니얼을 사랑하고 싶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새것의 유혹을 받는다. 새로 출시된 핸드폰은 지금 내 휴대폰보다 좋아 보이고 트렌드를 한껏 반영한 신상 구두는 신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질 것 같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오래된 친구들과의 술자리는 편안하지만 새롭게 만난 사람들과의 술자리는 예상치 못한 즐거움을 준다.
사랑도 예외는 아니다. 풋풋했던 사랑은 어느새 진부해져 버리고 창고에 오래 묵혀둔 물건처럼 쾌쾌해진다. 이처럼 인간이라면 한번쯤 겪는 새것에 대한 갈망을 사라 폴리 감독은 관객을 향해 끄집어낸다.
그리고 누군가 마고처럼 남편을 버리고 새로운 사랑을 선택한다면 이를 본 많은 사람들은 손가락질 하겠지만 사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감정일 뿐이라고 설득한다. 동시에 감정에 충실하는 것은 자유지만 영원할 것만 같던 새것의 향기는 오래가지 않고 그것 또한 결국 헌것이 되기 마련이라고 말한다.
사라 폴리 감독의 말대로 죽는 날까지 뜨겁게 불타오를 줄 알았던 마고와 대니얼의 관계는 오래된 다른 커플처럼 점점 소원해진다. 마고에게는 새것이었던 대니얼 또한 결국 헌것이 된 것이다.
사라 폴리 감독의 메시지는 미셸 윌리엄스의 섬세한 연기로 더욱 설득력 있어진다. 미셸 윌리엄스는 새로운 남자에 이미 마음을 빼앗겼지만 그 마음을 드러낼 수 없는 마고의 심리를 불안한 표정으로 승화한다. 하지만 그와 상반되는 절제된 몸짓 연기는 헌것이라고 물건 버리듯 남편을 버릴 수 없는 마고의 상황을 대변한다.
세스 로건의 연기도 훌륭하다. 코믹 배우 이미지가 강한 그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다른 남자에게 빠진 아내 때문에 고민하는 남성을 진중한 연기로 표현했다.
따뜻한 영화의 색감과 차분한 캐나다 교외 풍경은 마고의 일렁이는 마음을 담담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다.
영화의 마지막 마고는 놀이기구를 탄다. 영화 중반 대니얼과 함께 탔던 놀이기구를 혼자 타는 마고의 모습 뒤로 팝송 ‘비디오 킬 더 라디오 스타(video killed the radio star)가 흐른다. 마고는 신나는 노래에 맞춰 몸까지 흔들며 놀이기구를 즐긴다. 하지만 이윽고 놀이기구는 끝이 나고 노래도 멈추고 화려한 총천연색 조명도 꺼진다. 남편을 버리고 새로운 사랑을 찾았지만 그 새로운 사랑조차 점차 헌것이 돼 가는 일종의 인생 법칙을 깨닫게 된 마고는 쓸쓸한 표정으로 놀이기구에서 내린다.
마고의 표정 뒤로 영화는 우리에게 묻는다. 마고처럼 새것의 유혹을 받았을 때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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