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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광대 Nov 30. 2023

신뢰와 사기는 한끗차이

홀렸을 땐 STOP!

광고 브랜드 기획자로서 일을 한 경력이 있음에도 "기획"은 뜬구름 잡는 소리라고 생각한다.

(한때 ㄱㅎ 초성은 모두 싫어했다. 기획, 계획처럼.)


모든 것을 전략에 따라 기획해야만 했고

계획에 맞게 광고를 시작하고 끝맺혀

최대한의 효율로 최고의 효과를 창출해야한다.


광고 업계 제1원칙, '저비용 고효율'


막상 보기에는 멋있어 보이는 직업이긴 하다만

실상은 엄청난 짬처리를 해야한다는 것을

많은 현직자는 알 것이다.


광고 브랜드 기획자인 우리는,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어내기 위해 상품과 산업 조사, 타겟 조사, 컨셉을 발굴해내는 일련의 과정을 진행하는데


이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기획자의 사기능력이다.


첫 회사에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은 날,

평소 남몰래 존경하던 차장님이 있었다.


존경을 대놓고 했으면 차장님과 친해질 기회가 있었겠다만 유명한 광고 회사 출신인 차장님은 조금은 어려운 존재였고 마음의 크기에 비해 표현력은 1/10에 불과했기에 그에게 그의 장점을 나열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다.


어느날, 운이 좋게도 차장님과 단둘이 식사자리를 할 때가 있었고, 최대한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차장님이 하는 것대로 따라하며 밥을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나이스한 태도를 갖고 있던 차장님께서는 사회초년생인 나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주었고 리액션 로봇이라는 별명에 부합하게 차장님의 말을 경청하며 대답했다.


그러던 중 차장님의 한 말씀.


"너는 사기 잘 쳐서 성공할 것 같은데?"


아..?


사기요..?


제가 아는 그 사기, 말씀하시는 것 맞으시죠..?


그릇이 아니라..사기..?


마음 속에 수 만개의 물음표가 떠올랐고

이를 칭찬으로 받아들여야 할 지 욕으로 받아들여야 할 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차장님은 대체 날 어떻게 바라보았기에 사기를 잘 칠 것 같다고 판단하신 것인지(사실 이건 아직도 모르겠으며, 차장님의 잘못된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궁금함과 함께, 밉보인 것 같다는 서글픔만 있었다.


차장님의 사기를 잘 칠 것 같다는 그 말은

예언가가 '이 아이는 장차 나라를 망하게 만들 아이네!' 라고 말한 것처럼 인생을 프레이밍 씌웠고


결과적으로 차장님의 말 중 일부가 들어맞게 되었다.


사기를 치는 광고 브랜드 기획자가 되었으니까

("잘" 치진 못했으며, "성공"도 하지 못했으니 일부가 아니겠는가)


수많은 제품 사이에서 제품이 살아남기 위해선,

한 끗 차이가 필요하며 이 한 끗 차이를 알아줄 타깃에게 그들이 필요로 하는 동시에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작업이 필요하다.


광고 기획자라면 모두가 아는 그 프로세스.


SWOT, STP, 타깃 페르소나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논리력을 갖춘 예쁜 제안서를 작성하고,

신뢰성을 주는 듯한 높은 분께서 발표를 함으로써 입찰에 성공을 하는 것이 광고 기획자가 하는 것이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확신"의 작업이다.


과연 나의 논리가 맞을까? 나의 생각이 맞을까? 타깃은 정말 이러한 특성이 있는 것이 맞을까?

내가 일부 표본만을 본 것은 아닐까? 이 방법이 가장 최저의 비용을 들이는 것이 맞을까? 더 좋은 방법은 없는 것이 확실한 것인가? 이 제품이 여기서 이 포지셔닝을 취하는 것이 가장 최적의 방법일까?


자신을 끊임없이 의심을 하라는 데카르트에 빙의하는 것에서 적어도 광고 기획자는 STOP!의 단계를 거쳐야한다.


어느 단계에서는 합리적으로 여기까지! 라는 선을 긋고, 배를 항해하는 선항으로 빙의하여

무조건 자신을 믿고 따르라는 나폴레옹과 같은

기세와 확신이 필요하다.


비록 타인이 비판적인 태도를 대한다고 한들,

갑자기 방향을 바뀌면 그에 상응하는 비용을 더 지출해야하는 상황이 발생하기에 중요한 것은 끊임없이 의심한 뒤 결정을 내리고,

무조건 그 결정을 성공시키는 것 밖에 없다.


하지만 그 결과, 실패할 것이라는 생각이 있음에도(때론 사내 정치로 인해, 실패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끝까지 밀어붙이는 경우가 생긴다. (경영학에서는 이를 확증편향으로 인한 실패로 본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끊임없이 의심을 하는 시대이면서도 확신과 고집으로 가득찬 시대이기 때문인지,

자신의 말이 맞으며, 무한히 신뢰해도 괜찮다고 말하는 이에게 사람들은 확신을 하며,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는 것을 광고 기획자로 일하면서 알게되었다.


아니, 정말 이 전략이 통한다고?


광고는 사기이다!

그때 그 시기에 사람을 홀리게 만드는 것!

그것이 광고가 하는 것이다.


브랜드라는 손으로 잡히지 않는 무언가를 만들면, 매출을 더 늘릴 수 있다고 설득하고

이러한 브랜드를 수 십번은 해 본 경험이 있다고 이번에도 성공을 확신한다.

때로는 거짓말과 사기를 쳐가면서,

스스로를 속여가면서까지


신뢰 = 사기 = 홀리는 것 = 광고 = 신뢰


이는 비단 광고산업에서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사회를 살면서 면접, 부동산 계약, 주식 투자, 사랑 등 다양한 방면에서 사기의 면모는 보인다.

미래의 성공과 번영을 확신하며 미래의 행복한 나날을 그리게 하거나

불행해서 꺼내주는 히어로로 둔갑하며 자선을 베풀듯이 올 수 있다.


때문에 우리는 주의하며,

주위에게 물어보아야한다.

홀린 상태를 STOP! 할 수 있도록


이제는 '너는 사기를 잘 쳐서 성공을 할 것'이라는 차장님의 말이 '사기 대한민국'에서 엄청난 칭찬이라는 것을 알게된 어른이 되었으며 그 예언을 성공하기를 간곡히 바란다.


때문에 누군가를 홀리지 않으면서 살진 않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 역시 예언이 틀릴 확률이 크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래도 게임은 공정해야 재밌으니까.


신뢰와 사기는 한끗 차이이니 홀리지 않기를 바란다.


또한 미래 사기꾼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저기요, 사기 칠 수는 있는데,


말한 것에는 책임을 지는 태도


그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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