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줄광대 Dec 10. 2023

저스트 텐세컨드

그래도 외모는 중요하다.

현재의 삶에 충실한 까닭일까, 유독 장기기억력이 부족한 편이지만,


몇 십년이 지나도 뇌리에 꽂히는 장면이 있다.


내가 중학생이던 시절,

가정 선생님은 보라색을 좋아하던 세련된 여성이었다.


현 시점에서 다시 생각해보아도 몸매가 뛰어나고 똑똑했던 가정 선생님은

우리에게 "배에 힘을 주고 다녀야한다" 라며

조언을 해주셨고,


마냥 어렸던 나는 선생님의 말씀이 여성을 향한 코르셋으로 치부하고 반감을 느꼈다.


하지만, 글을 쓰고 있는 현 시점,


허리는 꼿꼿하게 세워져 있고,

배를 완전히 의식하며 선생님의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을 일상 속에 접목하고 있다.



대구에서 서울로 막 올라온 20대 여성이자

최저시급과 유사한(최저시급이 더 나을 것 같은) 박봉의 월급을 받으며,


서울의 월세와 생활비를 감당해야하는 상황 속,

옷과 화장품 등 용모를 갖추기 위한 물품은

생활 물품이 아닌 사치 물품이었었다.


많은 이들이 알다시피 대학생에 가까운 나이에는

사회 속 갖춘 용모에 큰 차이가 없지만

한 해, 두 해 나이를 먹을수록 동료가 입는 옷과 신발, 가방의 때깔이 보이며,


이러한 때깔들이 그들의 아우라를 만드는데 좋은 도구가 된다는 것을 알았다.


도구들을 살 수 없었기에 취할 수 밖에 없었던 전략은

돈이 없고 힘든 상황에도 꿋꿋하게 버티는 "캔디" 포지셔닝 전략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캔디는 너무 예뻤다.


분석 실패, 전략을 수정해야했다.


캔디인 척 하는 마이쮸 정도?


싫든 좋든 현대 사회에서 외모가 주는 힘이 크며,

이는 사실이다.


특히 하루에 소개팅도 3번씩 한다는 서울에서,

5분 단위로 계획을 세우며 갓생을 사는 서울에서,

1분 1초가 아까워 지하철을 뛰어 오르는 서울에서,


어떤 이의 가치관과 살아온 발자취를 알아내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때문에 임의로 정했다.


10초.

서울에서 사람들이 누군가의 첫 인상을 결정하는 시간.


더 길면 시간 아까우니까!

(사실 이건 서울 사람이 아닌 나의 기준일 수 있다.)


10초라는 짧은 시간이니 사람들은

브랜드가 없는 옷과 신발 따위에는 신경을 쓰지 않으며, 그들이 보는 것은 전체적인 느낌이라고 생각했고, 이러한 생각은 마음을 편하게 했다.  


"동정은 사절. 부러움은 환영"
슬로건을 마음에 새겼다.


앞서 말했듯 서울 빈곤층이었기에 어떤 일이든 최소한의 비용을 통한 효과 달성을 추구하였고


그 결과,

옷을 절약하기 위한 방법은 "패완얼", "패완몸" 이라는 결과를 내렸다.


패션의 완성은 얼굴과 몸매.


선천적인 얼굴과 체형은 바꿀 수 없고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에


거울을 보며 웃는 연습

다양한 표정을 지으며 단점 숨기는 연습

나와 맞는 화장법을 연구하기 위해 닮은 연예인을 찾은 후 메이크업 연구

선크림의 일상화

날씬하지는 않더라도 운동을 통한 관리

일상 속에서 배에 힘을 주어 코어 관리

자세 교정을 위한 스트레칭


옷은 주름없이. 먼지없이.

신발과 가방은 적당히 깨끗하게


기세는 자세에서

자신감은 표정에서


비록 아무것도 없더라도

뭔가 있는 것처럼 보이게끔

배에 힘을 주며 허리와 어깨를 꼿꼿하게 펴고 다니는 모습은 실제로도 매우 유용했는데,


가령 10초만에 판단하는 사회에서

쉽게 호감을 살 수 있으며,

바로 앞 문장이 착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는 타인에게 신뢰감을 줄 수 있게 되어 업무와 일상 생활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왔다.


다만, 그럼에도 아직까지 붙어있는 마이쮸의 인식코드가 있다.


바로 백팩의 일상화와

오랜 공부 시간,

높은 업무 강도를 보여주는 거북목이다.


꾸준한 랫풀다운에 그 증상이 호전되었음에도 

목 뒤는 여전히 불룩하게 나와있고

이를 가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짧은 머리가 아닌

긴 머리를 고수하고 있다.


거북목은 비호감을 줄 수 있는 요소이니 숨겨야한다.


그런데,

나르시시즘일까,

자기연민일까

거북목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인 대중과 달리

거북목인 누군가를 서울 지하철에서 보면

10초만에 평가하게 된다.


'저 분은 치열한 삶을 살아왔겠구나'


비록 거북목이 부를 상징하는 아비투스는 아닐지언정

성실함의 아비투스는 아닐까?


서울에서 만난 2살 어린

베트남이 고향이지만

독일에서 홀로 유학생활중이며

세븐틴을 좋아해 혼자 서울에 온 그녀.

돈이 없어서 대부분의 끼니를 편의점에서 먹었지만 나와의 식사는 맛있게 족발을 먹었던 그녀.


밝은 표정의 그녀 역시 무거운 백팩을 메고 다녔었다.


그런 그녀에게도 언니로서 해주고 싶은 말


'배에 힘을 주고 살아야 해'


우리의 거북목 훈장은

단단한 머리카락이 가려줄거야

작가의 이전글 나의 광고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