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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광대 Jan 01. 2024

이제는 쉽니다.

번아웃의 결말, 귀향

돌이켜보면 언제나 욕심이 많았다.


높은 등수의 성적, 가고 싶은 학과, 끊임없는 대외활동과 자랑스러운 공모전까지


어떠한 일이든 잘 해내고 싶었고,

이 한 몸 재가 되어도 내가 해야하는 일이라면,

더욱이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한 일이라면,

기꺼이 이 한 몸 바쳐 일을 해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는 자만이었다.


나는 약하디 약한

그저 그런,

지방에서 올라온


평범한 20대 사회 초년생에 불과했다.


헤르미온느의 똑똑한 지능도,

해리포터의 우월한 유전자도,

마법의 모래시계도 없었기 때문에

끊임없이 쏟아지는 업무를

모두 완벽하게 처리할 수 없었고

언제나 스스로를 바보같다고 여기며 울음을 삼켰다.


일과 사랑과 돈,

이 모두를 놓치지 않고,

늦어진만큼 나의 인생을 더 빛나게 만들어내고자 스스로를 궁지에 몰아세웠다.


그 결과, 그 누구도 시키지 않았음에도 몰락했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맺집이 강한 나는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자만이,

어떠한 것도 포기하지 않으려고 꽉 쥔 나의 욕심이, 나를 무너뜨렸다.


회사를 다니면서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보았을 때는 뿌듯함은 잠시,


더 이상 일을 키우고 싶지 않다는

소심한 생각이 들면서,

열의는 있지만 체력이 부쳐

더 이상 업무가 진전이 되지 않았다.


이상하리만큼 하루하루가 버거웠고,

출퇴근이 소름이 끼쳤다.


심호흡을 하며 애써 스스로를 위안을 해보아도 비정규직의 퇴로를 보이며 무책임함을 보이는 스스로에 실망을 했다.


나약해진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제발 이 지옥같은 삶을 끝내게 해달라'는 기도뿐이였다.


그렇다, 그때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바로 "휴식" 이었다.



퇴사 후 지난 삶을 돌이켜보았을 때,

2020년부터 3년간 제대로 쉬어본 경험이 없었다.


불안과 기도를 하는 취업 준비는 나의 오른팔이었다. 포트폴리오와 이력서를 쌓으며 항상 자소서를 써내려왔다.


일과 면접을 반복하고 합격과 불합격의 혼동 속 머리가 깨질 것 같은 시간이 계속 되었으며,


유목민과 같은 생활로 인해 회사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더욱이,

1년을 채우지 않고

빠르고 굵게 불태웠던 회사생활들로 인해,

휴식이 필요했음에도 한 달에 한 번씩만 나오는 휴가로 인해, 긴 휴식을 가질 수 없었다.


유일한 휴식은 밤인지 낮인지 헷갈릴정도로 어두운 방에서 죽은 듯이 잠을 자는 것 뿐.


하지만 그 마저도 하루를 허비했다며 스스로를 나무랐다.


제대로 된 직장도, 제대로 된 집도 없는 서울에서 괴로움에 혼자 오열하는 날만 늘어났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희망을 꿈꾸며

타인에게 이기심을 보였고,


그와 동시에 알랑한 자존심은

어두운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밝고 굳센 가면을 만들어 냈다.


그와 동시에 끊임없는 자기성찰과 반성으로 인해,

지하 285층까지 땅굴을 팠다.

 

그래,


그냥,


진짜


미친듯이 힘들었다.



번아웃으로 인해,


(내가 그토록 싫어하던) 자기연민에 빠진


가 되어 버렸다.  


아, 어떻게든 버텼다.


그렇지만 졌다.


서울에서의 3년의 결과,


졌지만 잘 싸웠다.

잘 싸웠지만 결국은 졌다.


이제 또 10년은 일해야 할테니까,

이기기 위해 잠시만 숨을 고르며 쉬자.


비록 내년 28살이 되더라도(만 나이는 26살이다.)


드디어 온전한 취준생이 될 수 있음에 감사해하며,

결국, 서울에서 뿌리를 내리는 스스로를 기도하며,


지금껏 나를 짓눌렀던 책임감과 욕심,

착하고 모범적인 딸,

자랑스러운 동생이자 누나,

믿음직한 부하,


이 모든 것을 벗어던지는

온전하고 건강한 아틀라스를 위해


정말, 잠시만,


아주, 잠시만,


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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