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가 현실을 위로하는 법
우리는 흔히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도 꿈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태어났을 때부터 누군가의 부모, 혹은 조부모로 살아왔을 것만 같다. 그래서일까.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그들은 항상 누군가의 할아버지, 엄마로 등장하는 조연이었다. 그런데 노년층이 주인공인 드라마가 정말 오랜만에 나왔다. 심지어 70대 할아버지의 발레 도전기라니, 이렇게 사랑스러운 이야기가 또 있을까.
<나빌레라>의 주인공 덕출(박인환 분)은 은퇴 이후 무료한 삶을 사는 평범한 할아버지다. 그는 우연히 채록(송강 분)이 발레를 하는 모습을 보게 되고, 어린 시절 아버지의 반대로 인해 묻어뒀던 발레리노라는 꿈이 되살아난다. 덕출은 더 늦어 후회하기 전에 발레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지만, 가장 먼저 부딪힌 것은 가족들의 반대다.
자식들은 덕출의 발레를 '민망한 짓'으로 치부하며 발레가 자식보다 중요하냐는 협박으로 덕출의 기를 꺾는다. 자식들이 덕출에게 바라는 모습은 아내와 등산이나 다니며 조용하고 얌전한 여생을 보내는 것이다.
험난한 덕출의 발레 도전기를 보고 있으니 얼마 전 화제가 되었던 MBC 예능 <놀면 뭐하니?>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출퇴근길에 자전거를 타고 싶다는 사연자에게 유재석이 자전거 타는 법을 알려주는 회차였다(84회). 사연자는 중년의 여성이었다.
처음엔 넘어질 것을 두려워해 페달을 놓치던 사연자는 유재석의 끝없는 격려에 자신감을 얻고 자전거 타기에 성공한다. 다른 무엇보다 시종일관 '괜찮다'며 용기를 준 유재석의 응원이 큰 도움이 된 것 같았다.
왜 어릴 땐 금방 배우는 자전거 타기가 어른들에겐 이렇게 어려울까. 유재석은 두려움에서 이유를 찾았다. "어렸을 때는 넘어지는 게 겁이 안 나서 그래요. 어른이 될수록 넘어지는 것에 두려움이 있잖아요." 그렇기에 넘어지는 것이 두려운 나이에 하는 도전은 더 의미 있고 값지다.
어쩌면 유재석처럼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의 부재와 과도하게 실패를 염려하고 미래를 걱정하는 사회가 덕출의 발레를 반대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낸 것일지도 모른다. 이 드라마가 던지는 메시지는 나이를 불문한 모든 세대를 관통한다.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 '괜한 욕심이 아닐까'. 나이는 달라도 모두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다.
물론 모든 일에는 적당한 때가 있겠지만, 그 적당한 때를 직접 만들어가는 것도 멋진 일이다. 덕출의 발레 도전이 세상을 바꾸진 못하겠지만 적어도 덕출의 세상은 바꿨다. 발레를 대할 때 아이 같이 순수한 기쁨을 담은 그의 표정과 간절한 노력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먼저 도전하는 사람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뒷사람의 세상도 변하기 마련이다. 같은 길을 먼저 걸어간 사람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큰 용기가 되므로.
세상에 도전하기 늦은 나이란 없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두려워하기보다는 무수히 흘려보낸 과거를 아쉬워하는 사람들에게, 도전에 격려와 응원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새로움이 무서운 사람들에게 이 드라마는 큰 힘이 된다. 괜찮다, 좀 넘어져도 괜찮다. 다시 일어나도 되니 괜찮다. 적어도 도전하는 지금은 행복할 테니, 덕출의 말처럼 무릎이 좀 까지면 어떠하랴. 조금 느린 도전을 하는 모두에게 이 드라마와 함께 응원을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