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이 컸다. 25살이나 되었다.
나는 이 딸을 하늘에 계신 높으신 그 분께 생 떼를 써서 키운 것 같다. 되돌아보니,
애들이 잘 커 준게, 내가 잘 해서가 아니고 하늘에 계신 그 분께서 시시때때로 함께 해주셨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들을 키울때는 아무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내 딸은 중학교 1학년 때까지는 공부도 잘하고 얼굴도 하얗고 몸이 가냘픈게 참 예쁘고 똑똑했다.
매 학년이 끝나 선생님께 수고 하셨다는 감사의 인사를 하러 가면 오히려 선생님들께서 이런 학생을 가르치게 되어 행복했다며 감사의 인사를 듣고 와 뿌듯하고 흐뭇했던 나였다.
중학교 2학년이 되었다.
어느 날, 가슴 쪽 단추구멍이 벌어질 정도로 쪼여 있고 저고리처럼 짧아진 교복을 입은, 머리는 샤기컷트라나? 지저분해진 모습의 딸이 집에 있었다. 시작이었다.
그 당시에 40대 였던 우리 부부는 시골생활을 동경해서 직장도 그만 두고 강원도 시골로 들어 갔었다. 농사를 지어 살기로 하고 과감히 들어갔지만 도시에서만 살았던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불과 2년만에 집을 팔아 가지고 간 돈은 바닥이 나고 말았다. 아직 애들은 어렸고 돈이 필요했다. 궁여지책 끝에 나는 만두가게를 벌렸다.
학교가 끝나고 온 딸은 집에 혼자 있게 되었다.
그 전까지는 딸이 올 시간에 맞춰 간식을 해놓고 기다리면 배가 고팠던 차에 맛있게 먹으면서 조잘 조잘 대곤했었는데, 갑자기 엄마가 집에 없으니 우리 딸의 당황스러운 기분을 잘 알아주었어야만 했다. 그러나 나도 처음 접한 세상에 당황스러웠다.
그러면서 딸은 4년 전에 살았던 동네를 그리워했고, 다시 이사를 가자며 나를 졸랐다.
"울고 싶은데 뺨 때린다" 고.
나도 누군가 은근 그래주기를 바랬던지라 곧바로 옛날에 정들었던 동네로 다시 갔다. 옥탑방을 얻어서 곧장 이사 했다. 문만 열면 이어지는 넓은 옥상에 나가 이불도 탁탁 털어 햇볕에 바짝 말리고, 식구들 오라해서 옥상에서 삽겹살도 구워 먹고 딸이 친구들을 데리고 오면 텐트를 쳐 주며 별을 보라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내 친정식구들은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싶다.
내 딸은 그동네에서 제일 공부를 잘한다는 중학교로 전학했는데, 적응을 못했다.
공부는 거의 꼴등에서 맴돌고 자꾸만 살이 쪄, 지 이모할머니가 코메디언 백남봉(백남봉님이 살 쪘을 때가 있었다) 닮았다고 놀리기도 해서 더 속상했던 기억이 있다.
어려서부터 미술에 소질을 보인 딸을 동네 화실이라도 꾸준히 보냈었는데 전학을 오고는 화실보다는 학원에 보내기 급급했다. 그 때는 내가 아르바이트 해서 월 130만원정도 받는 걸로 생활을 했으니까, 그 것 보내놓고도 돈 값을 못한다고 안달을 했었다. 그렇게 심난스럽게 지내고 있을 때, 하루는 학교에서 오더니 "엄마! 도덕선생님이 미술특성화고등학교가 있다고 거길 가면 좋겠다고 하셨어!" 나는 눈이 번쩍 뜨였다.
알아보니 서울에 있었고, 고등학교 입학을 위한 실기와 필기시험이 있었다. 당장 실기를 시작해야 했다. 동네에 인상 좋은 선생님이 하시는 미술학원인데 3개월 레슨비가 오백만이랬다.
오백만원? 없다. 바로 무릎꿇고 기도했다.
"하늘에 계시는 높으신 분이 알아서 하세요! 나는 내 아이를 미술에 재능있게 해 달라고 안했어요. 그 분께서 그렇게 태어나게 했으니, 하늘에 높이 계시는 분께서 책임지세요! 라고 떼를 썼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엄마였기 때문에 그렇게 당당하게 떼를 썼던 것 같다. 내가 엄마니까 내 목소리를 들을 수 밖에 없었던 그 분께서는 돈을 주셨다. 이렇게,
몇달 후에 탈 수 있는 적금이 있으니까 미리 좀 꾸고, 내 착한 오빠가 나 어렵다며 우연찮게 통장에 100만원 을 넣어 주셨다. 오빠도 내 기도를 들었을까? 그리고 바로 예기치 않게 200만원이라는 큰 돈이 생겼다.
외삼촌께서는 아들이 35살이나 되었는데(2006년 당시에는 이 나이가 노총각으로 인식되어 큰 걱정거리였다) 장가를 못가 애를 태우고 계셨다. 적시에 내가 중매를 하게 되었다. 외삼촌은 며느리감이 100점이라면서 좋아하시며 중매비는 꼭 줘야 그 부부가 잘 산다는 말이 있으니 받아야 한다면서 구지 주셨다.
그렇게 미술학교에 가서 다시 지 세상을 만난듯이 반장도 하고 공부도 잘해 1,2등을 하고 전교회장까지 제의해온 선생님께 제 딸보다는 이 엄마가 능력이 안된다며 정중히 거절을 하면서 내 어깨에 뽕이 어찌나 빵빵하게 들어가든지...
이제 딸은 멋진 작가가 되어 세상을 예쁘게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며 성실했다.
그 해에는 떨어졌지만, 재수기간동안 더 열심히 한 딸은 한 대학교에 장학생으로 합격도 했다. 기꺼이 다른 친구를 위하여 양보하고, 제가 가고 싶은 학교로 진학했다.
어느덧 4학년이 되어 졸업작품 전시회 준비 한다며 정신없이 보내고 있다
"신은 모든곳에 있을 수 없어서 어머니를 만들었다" 라는 책제목도 있는것을 보면 엄마의 기도는 하늘에 계시는 높으신 그 분도 떼를 쓰던 협박을 하던 꼼짝 못하시는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