켜놓은 라디오에서 비발디 4계절중 2악장이 흘러 나온다.
아! 비발디 겨울, 겨울이 왔는데도 잊고 있었다. 오랫만에 듣게된 차분하고 아름다운 곡이 겨울잠을 깨운다. 눈을 감았다.
머리속에서, 어제 동생이 가짜 머리카락을 붙인 모자를 쓰고 어색하게 웃으며 찍은 사진의 모습이 떠오른다. 눈물이 난다.
유방암1기 라는 판정을 받고 항암주사를 1차 맞았을 뿐인데 벌써 머리카락이 빠져 어제 머리를 다 밀었다고 했다. 마음이 아프다.
이런 우리의 마음을 위로 하려는듯 사진을 찍어 보내온 것이다.
동생의 유방암은 유방암 중에서도 희귀한 "3중 음성 유방암" 이라고 한다. 처음 들어보는 암이다.
3중 음성 유방암 이란? 예후가 좋지 않고 치료가 어려운 암이라고 한다. 그러나 장점도 있는데 3년 이내에 재발만 안되면 완치가 된다는 거다. 일반 암이라면 1기 니까 방사선 치료만 해도 되는데 이런 특이한 암이다 보니 항암주사를 맞아야 했다.
지난 10월의 어느 날, 뜬금없이 조직검사를 하고 왔다는 말에 나는
"아닐거야! 그렇게 쉽게 큰일은 닥치지 않더라." 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나 쉽게도 큰 일이 닥쳤다..
이 동생은 어릴적부터 좀 유별 났다. 우리형제들은 이 동생이 이끄는 대로 엄마 눈을 솎여가며 부잡스런 놀이를 즐기곤 했다. 싸움같은 것은 구경조차 하지 않는 우리들에 비해 이 동생은 친구들과
편을 갈라 싸우기가 일쑤였고, 남에게 지고는 못살았던 동생은 공부도 잘했다.
그러나 내 아버지께서는 이 동생을 예뻐하지 않으셨다. 동생의 운명이라 할까?
아버지께서는 그 옛날의 관습대로 부모님께서 맺어준 베필과 혼인 했다. 딸을 둘 낳고 살았지만 그 분과는 뜻이 맞지 않았던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얻어야 한다는 이유있는 명분으로 내 엄마를 만났다.
그러나 내엄마에게서도 딸인 나를 낳으셨다. 그리고 이제 이번만큼은 꼭 아들이라 기대 했지만 동생은 4번째 딸로 태어나고 말았다. 이 딸을 낳을 때 문밖에서 노심초사 하셨던 아버지께서는 또 딸을 낳자 아기를 쳐다보지도 않고 밖으로 나가셔서 3일 밤을 안 들어오셨다고 한다
게다가 동생은 배꼽에 탯줄이 일주일도 안되어 떨어져 나갈 정도로 밤잠을 안 자고 울어서 더 아버지의 미움을 샀다고 전해 들었다.
우리가 중 고등학교에 다닐때다. 동생은 공부를 잘해서 전교 1,2등한 성적표를 아버지 앞에 내밀었을때도 말없이 옆으로 쓱 밀어 내리시고, 내가 반에서 겨우 30등 한 성적표는 훝어보시며 다음에는 더 잘하라는 격려를 해 주시곤 했다. 아버지의 무관심과 편파적인 사랑은, 동생에게 점점 애정결핍을 동반한 독립심이 자신도 모르게 생겨 버린것 같다.
동생은 고등학교를 졸업 하면서부터 가가호호 방문 하여 책을 팔아 돈을 벌어서 아버지께 용돈을 받아 쓰지 않았다. 그 시절에 방문 판매를 하는 사람은 너무 가난하여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사람만 하는 줄 알았던 나는 동생이 창피 하다고 생각 했다.
회사에도 다녔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았는지 공부를 하여 사서 자격증을 따더니 곧 공무원이 되어 30년을 지각 한 번 안하고 다녔고 4년전 퇴직 하였다. 그 과정은 옆에서 보기에도 만만치 않았다.
착하기만 하여 남들 도와 주는 걸 더 우선하는 제부가 동생 욕심에 찰 리가 없다. 얼마나 제 속을 끓여 왔는지 안타까웠다.
게다가 유난히 힘들게 회사생활을 하는 것 같았다. 호시탐탐 스트래스를 하소연 했는데, 우리는 회사생활 안 힘들게 하는 사람은 없다며 듣기 싫어 했다. 저에 대한 자상한 관심을 받고 싶어 했지만 무심하기만한 남편과, 좀 맞지 않은 성격 성향 때문에 우리 형제들도 피곤해 했던것도 사실이다. 사랑 받고, 위로 받고 싶은 마음이 컸던 만큼 상실감이 컸을거라는 생각이 들어 죄책감이 든다.
그렇게 30년을 버티어 명예로운 퇴직을 하고 남편이 먼저 가 터를 닦아 놓은 시골로 들어가 살면서 매일 아침 출근 안해도 되는 편한 생활이 너무 좋다면서 좀 더 일찍 퇴직 하지 못했음을 후회 했다.
억척스러운 동생은 시골에서 할 일을 바로 찾아 된장, 고추장을 만들어 팔기도 하고 드디어는 지인들에게 김치까지 팔기 시작 했다.
직장에 다닐때, 지 남편이 갓 담근 생김치 좋아 한다며 퇴근 후 집에 올때는 시장에 들러 배추 한 포기씩을 사와 김치를 이틀에 한 번씩 담그곤 했다. 동생이 쓱쓱 비벼 담근 김치는 참 맛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겂도 없이 김치장사를 시작한 동생에게 식구들은 모두 한마디씩 해대며 동생의 억척에 눈쌀을 찌푸렸다. 농사일 이라는게 하늘이 도와 주어야만 하는 거 아닌가. 배추를 잘 키우는 일에 신경을 곤두 세우고 있으니 남편이 못 믿어워 또 지 속을 끓였고.
3년을 배워 가며 온 정성을 다 하다 보니 차분한 제부는 고추도 배추도 잘 키워 냈다. 노심초사 남편을 지켜 보던 동생이 그제야 자신있게 김장을 하며 즐거워 했다.
세상살이 욕심대로, 제 뜻대로 안 된다는 거 60살 정도 되어 보면 다 알게 된다. 아니, 알게 만드는 신이시다.
동생이 그동안도 열심히 살았으니까 이제는 여유있는 시골 생활_ 상쾌한 공기, 따스한 햇빛, 싱싱한 갓 따온 채소와 밥먹기, 나른한 오후 맘껏 즐기기를 바란 나였다. 이런 나에 비해 동생의 취향은 아주 현실적이다. 꽃이 피기를 바라기보다는 배추나 고추 농사가 잘 되기를 바라는 동생인거 안다. 그러나 신께서 동생에게도 허락 하신 아름다운 자연을 자세히 보는 눈, 오래 보아서 사랑스러운 마음이 일어 영혼이 행복한게 뭔지 알기를 바래 본다.
어제2차 항암주사를 맞고 들어 갔으니까 지금쯤 센 약과 싸우느라 얼마나 힘들고 있을지. 짠해서 눈물이 자꾸 난다.
항암주사는 앞으로 2번만 더 맞으면 끝난다 했다. 봄이 오면 온 세상에 새싹이 돋고 생기가 돈다. 내 동생도 빠졌던 머리가 새로 돋고 더욱 건강하고 활기차게 오래오래 살 수 있을거라 믿는다.
이 번 봄은 더디게 오겠으나 더 따뜻한 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