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동생을 간호하고 일주일 만에 집에 왔다.
아프니까 예민해진 환자를 돌보는 일이 쉽지 않다. 무엇보다도 환자의 마음을 공감해 주어야 한다. 아파 보지 않은 내가 자칫하면 환자를 서운하게 할 수가 있어 긴장을 했다.
집에 오니 긴장도 풀어지고 해서 시원한 맥주 생각이 났다. 맥주캔을 따려고 하는 순간
내 눈에 뭔가가 보였다. 날씨가 추워져서 거실 안으로 들여놓은 군자란에서 꽃대가 쑥 올라와 꽃을 피우려고 꽃망울을 머금고 있는 게 아닌가. 와! 잠깐만!
옆에 있던 딸이 놀라서 "왜 그래! 엄마!" 한다. " 군자란에 꽃이 피려고 해!"
이게 무슨 일이지? 신기하다 신기해. 금방이라도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이 가슴이 설렌다. 어떻게 10년 만에 꽃이 피지?
10년 전에 친정엄마가 이제는 화분 키우는 것도 힘들다면서 딸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었는데 나는 이 군자란을 받아왔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자 친정엄마가, 그래도 사람 사는 집이라면 화분은 있어야지~ 하셔서 봄이 오면 나도 예쁜 꽃이 피어 있는 화분을 사서 키워 보았는데 매번 죽었다. 그래서인지 이 군자란에게도 애정이 안 갔다. 주택에 살 때는 마당 한구석에, 아파트 살면서는 베란다에 그냥 방치했다.
" 친절해라, 우리가 만나는 사람은 모두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다"라고 한 플라톤의 말씀이 생각난다. 사람뿐만이 아닌 것 같다.
이 식물 군자란도 10년 동안 치열한 싸움 끝에 꽃을 피우지 않았을까? 친절하게 대하지 않아서 미안하다.
65년을 살면서 처음으로 식물 앞에서 숙연해졌다. 나는 이 식물에게 아무것도 해 준 게 없는데 꽃을 피워 나를 기쁘게 하고 뭔가 희망도 갖게 해 준다. 새해에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깨닫게도 했다. 바라지 말고, 기다려 주고, 나 스스로 잘 견디고 예쁘게 살아 주위를 웃게 만드는 거다.
먼지 낀 잎을 닦아주니 반짝반짝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꽃에게 다가가 말도 걸었다. 예쁘다고, 고맙다고.
오늘은 드디어 꽃이 만개했다. 주황색이 이렇게도 선명하고 빛이 나다니 다시 한번 와!.
환하게 핀 꽃 한 송이에 집안에 밝은 기운이 돈다.
좋은 일이 꼭 생길 것 같다. 우리 딸에게 기분 좋은 남자 친구가 생기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