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휴, 진짜 이 코로나!

by 이연

민족의 대 명절인 설이 돌아왔다. 2년이 넘게 바이러스 균이 우리나라는 물론 온 지구인을 꽁꽁 묶어 버린 지금, 명절에는 으레 고향에 오고 가느라 꽉 막힌 고속도로에 차 행렬을 본지가 오래된 옛날 같다. 이번 설에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오미크론 변이 확산세가 급등하여 신규 확진자가 2만 명을 넘길 거라 했다. 그래서 딸의 회사에서는 가족들과의 모임도 자제하고 타지를 방문했을 시 자가진단키트를 사용해 검진을 받고 회사 출근을 하도록 지시했다. 긴 연휴이어서 세웠던 모든 계획 다 포기한 딸은 할머니께 세배만 하고 오겠다며 가더니 할머니 혼자 계시는 게 안쓰러워 고스톱도 쳐 드리고 하룻밤을 같이 잤다. 그리고 아침, 회사에서 뜬 문자! 바로 옆자리 근무자가 확진되 밀촉 접촉자가 되었으니 빨리 가까운 보건소에 가서 검사받으라고 했다.

딸은 안절부절 그 동네에 보건소를 찾았지만 검사를 받으려는 긴 줄에 아연실색고,

여기저기 보건소를 찾아 헤매었다. 도를 하려다가 할머니 코로나 균을 옮겼을까 봐 걱정이 되어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조마조마해 잠도 못 잤다. 다행히 딸의 검사 결과가 음성으로 나다. 아휴! 진짜 이 코로나! 도대체 몇 번을 가슴 졸여야 이 재앙이 끝날 것인가?

작년, 재작년은 어땠는가, 일본에 유학 중이었던 작은 딸이, 불투명한 일본의 방역대책이 불안해서 귀국을 했다. 양쪽 공항에서 PCR 검사를 두 번 받 음성으로 나온 검사 결과만 믿고, 격리에 소홀하다 겪은 마음고생은 잊을 수가 없다.

격리 2주일 차에 들어서면서 딸은 저녁때만 되면 열이 나기 시작해 밤에도 열이 안 내리는 것이다. 하루하루 지나고 수요일쯤부터는 좌불안석이 되어 밤이고 낮이고 열을 쟀다. 가뜩이나 예민 해져 있는 딸은 그만 재라고 화를 내고. 보건소에서는 더 지켜보자고 했고. 일상생활을 같이 한 큰 딸은 회사 출근을 하고 있고. 나는 동네 곳곳 안 다닌 데가 없다. 처음에 신천지 발병 환자에서부터 시작하여 번호까지 붙이며 환자 색출을 했기 때문에 나는 사색이 되었다. 밥맛도 다 떨어지고 밤에 잠도 오지 않았다. 이제 나는 이 동네에서 못 살지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사는 이 지역은 단 한 사람도 환자가 없는 청정 지역이었다. 딸도 나도 단숨에 2kg이 쑥 빠졌다. 일주일 내내 밤만 되면 올랐던 열이 격리가 해제된 시점으로 열은 나지 않았다. 참! 장난하냐? 상상 코로나?라고 말하는 친지도 있었다. 아무튼 십년감수했다.

그리고 아베 총린가 뭔가가 일방적인 수출규제에 이어 한국인에 대해 입국규제를 갑자기 선포했다. 딸은 부랴부랴 서둘러 출국했다. 그러나 학교는 가지도 않은 데다 올림픽 계최에만 혈안이 되어 더욱 안갯속 같은 일본의 방역대책에 너무 불안해진 우리는 또 귀국행을 결정하고 일본 공항에서, 인천공항에서 검사 검사를 하고 또 격리를 했다. 방학기간까지 긴 시간을 한국에서 보냈다. 졸업작품도 해야 한다며, 이번에는 할 일 하지 못해 불안해진 딸은 다시 들어갔다. 기숙사에서 또 격리하고. 작품도 졸업전시도 제대로 하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졸업을 했다. 2021년 3월에 귀국해서 3번의 코로나 검사를 받고 또 격리를 했다. 왔다 갔다 하며 총 12번의 코로나 검사로 인해 딸의 코는 굴뚝처럼 길이 나 있을 것 같다. 번에는 더욱 철저해진 방역지침 의해 차를 공항에 가져다 두고 왔다. 딸은 혼자 운전을 해 집으로 와서 혼자 2주일의 격리를 마쳤다. 나는 딸이 2주일 동안 먹을걸 충분히 준비해 두고 동생네로 가 있었다. 국가에서는 친절하게도 먹지도 않는 비비고 육개장, 김치찌개 등등 먹거리, 생필품이 든 커다란 박스를 보내왔다. 다 우리의 세금인데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를 해서 필요하냐고 물어보고 보내는 것이 많이 번거로운 일일까?

2021년 3월 말부터 백신 접종이 시작되었는데 의료 시설 종사자, 기관들의 우선순위 대상자를 우선하고, 고령층부터 백신 주사를 맞고 있다. 65세인 나도 (아스트라 제네카) 백신을 맞았다.

주사를 맞기 전에 딸은 고기를 먹어야 한다 하고 엄마가 아플지 모르니까 회사를 쉬어야 할 것 같다며 야단이다. 주사를 맞고 나면 다들 걱정을 해 주는 게 예의라도 되는 듯한 이 사회의 분위기다. 동생들도 괜찮냐고 전화가 온다.

주사 때문인지는 몰라도 밤에 수시로 잠이 깨어서 잠을 못 잔 것 말고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두 딸은 같은 날 예약이 되었는데, 큰 딸은 엄마가 서울 가서 동생을 돌봐 주라 하고, 동생은 나는 씩씩하니까 엄마가 언니 옆에 있어 주라 하고, 자매의 애정이 이렇게나 두터웠나 싶다. 딸들은 주사 맞기 전 날엔 고기를 먹고 주사 맞은 다음 날에 회사는 당연히 쉬고 아픈 사람처럼 누워 있었다. 나는 그 모습에 웃음만 났다. 먼 훗날 이 팬데믹 사태도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아 추억이 되어 말할 날 오겠지.

금방 끝날 줄 알았던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예상 밖으로 길어진다. 곳곳 상가에 "임대"라는 단어가 눈에 띈다. 그럼 가게 문을 닫고 뭘 먹고사나? 식구들도 있을 텐데.. 가게뿐일까? 살기 힘들어진 사람들 많을 텐데 다들 어찌 살고 있는지..

할 말이 없다. 겪을 만큼 겪어야 끝나 지려나? 이제 겪을 만큼 겪은 것도 같다.

금방 종식될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봄이 오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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