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하다가도 빨래를 개다가도 문득문득 언니 생각이 난다.
며칠 전에도 언니하고 전화통화를 하고 난 후, 소화가 안되기 시작해서 머리까지 아파 3일이나 애를 먹었다.
"가장 믿었던 사람이 가장 아프게 한다.
마음을 많이 내어 줄수록 상처도 크다.
좋았던 시간만큼 지워야 한 시간도 많다."
라고 쓴 어느 작가의 글을 떠올리며 내 마음을 더 불편하게 몰아간다. 그럴밖에.
정 많고 에너지 넘치는 언니가 나에게 파이팅 넘치게 베푼 만큼 언니가 배신감에 떨고 있는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전화기 액정에 언니 이름이 뜬다.
한참이나 전화기를 응시하며 "오늘은 끝까지 너그럽게 잘 받아야지"결심을 한다.
"응 언니!" " *연아~"
언니의 목소리를 듣자 결심이고 뭐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미주알고주알 떠든다. 그러다 급기야 참고 살았던 서글픈 신세타령을 쏟아 낸다. 오늘의 통화도 1시간이 되어가고 있다. 내 타령을 들은 자칭 지혜로운 언니는 벌써 진단했고 처방에 들어간다. " 그건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고 *연아~이렇게 해봐!! *연아~ 절대 그럴 필요 없어! 이렇게 하면 좋을 것 같아! 알았지?" 힘주어 말하는 언니에게
"응 응 그래 그래 그렇게 해볼게, 알았어 언니, 언니 말이 맞네, 고마워! 고마워!"
언니는 언니의 맞는 처방에 확신이 드는지 또 한 번, 다시 한번 나를 닦달하고 나는 다시 또다시 대답한다.
" 알았어 언니! 그렇게 할게~ 알았어~ 응 응 그래 그래! 고마워 언니!" 그러나 내 인내는 여기까지였다. " 언니! 알았다고! 알았다고 했잖아! 이제 그런 말 그만해!"
불쑥 퉁명하게 쏘아붙이고 말았다.
수화기 너머에서는 벌써 서운함을 넘어선 실망한 언니의 목소리가 잠꼬대처럼 길게 길게 이어진다. " "니가 그래! 너는 그런 데가 있더라~ 니가 그런 데가 있어~ 니가 그래~ 니가 그런 데가 있더라고... 자칭 지혜롭고 마음이 약하다는 언니가 반복적으로 하는 읊조리는 말을 듣고 있으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 왠지 모를 자존감이 뚝뚝 떨어지는 소리도 들리고.
사태가 여기까지 오기 전에 끊고 싶었던 전화는 결국 두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나서야 끊어졌다. " 니가 그런다고! 뭘! 뭘 그러냐고!" 전화기를 내동댕이 치며 씩씩거린다.
언니는 고향에서 유지셨던 돈 많은 내 큰아버지의 딸이고 나는 7남매 중 막내인 멋쟁이 작은 아버지의 딸이다. 언니와 나는 애틋해 만나면 헤어지기 싫어 1시간 거리에 있는 서로의 집을, 해가 지고 깜깜해질 때까지 왔다 갔다 하다가 우리의 마음도 모르는 어른들에게 꾸지람을 듣곤 했다. 그 시절은 중학교도 시험을 쳐서 들어갔기 때문에 혹독하게 공부를 해야 했다. 우리는 만나지 못했다.
이후 대학 졸업 후에야 만난 우리는 매일 함께하며 희로애락을 나누고 장밋빛만 있을 우리의 미래에 대해 꿈을 꾸며 재회를 즐겼다.
곧 알았다. 장밋빛 미래는 없다는 걸.
각자 결혼을 하면서 멀어진 거리만큼, 당시 과장에 집이 있는 사람과 신입사원에 집도 없는 사람의 경제력과 함께 마음도 멀어져 갔다.
세상 풍파가 뭔지 모르고 꽃 핀다고 들뜨고 낙엽 떨어진다고 슬프고 음악이 너무 좋다고 눈물 흘리던 언니와 나는 어처구니없는 세상을 살아내느라고 서로를 찾지 못했다. 아니 행복하게 사는 모습만을 보여 주고 싶은 자존심이 우리를 가로막고 있었던 게 진실이지 않았을까? "사촌이 땅 사면 배 아프다"라는 속담이 숨겨져 있지 않았을까?
중년이 되어 다시 만난 우리는 이제 더 열심히 만났고 좋아했고 신나 했다. 이제 우리가 함께 있으니 노년은 걱정 없다고, 다시는 우리가 헤어지지 않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언니가, 내가 아파하고 있다.
"삶은 간단하지 않다" 이 간단하지 않은 삶에 질질 끌려 다니는 나를 보는 게 너무 슬프다
"슬픔은 생활의 아버지
무릎을 꿇고
두 손 모아 고개를 조아려
지혜를 경청한다"
이재무 <슬픔에게 무릎을 꿇다 에서>
몇 달째 언니에게서 전화가 오지 않고 있고, 나도 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언니가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