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가 힘든 그대의 내면에서 벌어질 의문들, 여섯번째 글
혹시 당신은 어떤 나쁜 일이 일어났을 때, 외부 탓보다 자신 탓을 하는 편인가? 사실 이 글은 나와 같은 다소 소심한 사람들을 위한 글이다. 내게 벌어지는 모든 일의 책임을 나 자신에게 돌리는 오랜 습관을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내부 귀인’ 습관은 자신을 반성하게 하여 더 나은 방향으로 채찍질하는 긍정적인 효과도 분명 있다. 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하여 자책과 후회로 자신을 괴롭히게 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수험생이 가지게 되는 죄책감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많은 사람이 시험 기간에 공부를 열심히 하기 때문이 아니라, 공부를 열심히 안 하는 자신의 모습에 더 괴롭다고들 한다. 이처럼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은 가득한데, 그만큼 실천하지 못하는 것 같은 죄책감이 있을 것이다. 또는 나처럼 재시험에 도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 만에 붙은 효자, 효녀 친구들과는 달리 한 번에 합격하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도 있을 것이다.
사실은 공부가 매일 잘되지 않는 것이 당연하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실수를 한다. 처음으로 ‘성공했다’고 스스로 평가할 수 있는 피트 재시 시험 이틀 전, 나는 무려 꿈속에서 ‘전국 수석’을 했다. 자고 일어나서 그만큼 기분이 좋았던 적은 그전에도 후에도 없었다. 단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후회 없이 열심히 공부했다고 내면 깊숙이 믿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런데 매일 완벽하게 공부했다고 스스로 믿었던 것과 달리, 시험을 치르고 한참 후에 일기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게 되면서 다소 충격을 받았다. ‘오늘은 이상하게 공부 집중이 잘 안 되었다.’라고 쓰여 있는 날들이 수두룩했다. 아마 일기장에 적지 않았으면 기억하지 못했을 만큼 이러한 날들이 생각나지 않았던 것은,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을 지워 버리고 매일 새롭게 시작한 것 덕분이 아닐까. 결국, 오늘 공부를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아닌,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공부하는 날들이 더 많으면 되는 것이다.
또한 재수한다는 생각에 부모님께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이 혹시 있다면 그 죄책감을 ‘감사함’으로 바꿔보면 어떨까. 부모님이 아닌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해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이루고 싶은 것에 재도전한다는 것이 죄목이 될 수는 없다. 결코 죄인이 아닌 다만 자신의 인생을 위해서 도전하는 전국의 수많은 수험생 동지 중 한명일 뿐이다. 물론 부모님께서 자식이 힘든 수험 생활을 재도전한다는 사실에 같이 힘들어하시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결국 자식이 행복해지는 결말, 즉 원하는 성과를 거둔 후에 웃음을 되찾아 드리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죄책감은 잠시 접어 두고, 필요한 지원을 받을 수 있을 만큼 받아서 확실하게 도전하는 것이 현명한 자세 아닐까. 오히려 죄책감 탓에 최적의 공부 환경을 자신이 스스로 마다하는 것이 가장 안타까운 일이다.
나중에서야 ‘결국 이렇게 되려고 그랬구나’라고 의미 부여가 되는 경험을 모두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내가 이만큼 성장하기 위해 겪었어야 했던, 지나고 나서야 소중해지는 경험들이 있다. 지금 힘들고 머릿속이 복잡하더라도, 미래의 내가 이 시절의 나를 떠올리면서 대견하고 뿌듯할 수 있도록 해 보자.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공부 대신, 오직 나 자신에게 집중하고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가져 보자. 합격이 누구보다 간절하다면 죄책감은 잠시 멀리 던져버려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