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가 힘든 그대의 내면에서 벌어질 의문들, 다섯번째 글
나와 공부할 책, 이렇게 둘만의 시간을 가지다 보면 자칫 여러 가지 생각에 빠지기 십상이다. 집중이 잘되지 않거나 졸린 경우, 집중에 한계를 느낀 뇌는 방어기전으로 다른 생각을 해야 할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여러 번의 수험생활을 거치면서 획득한 방법은 이왕 딴생각을 할 거면 시험에 합격해 기뻐하는 상상과 같은 긍정적인 상상 쪽으로 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시절엔 공부 외에도 온갖 다양한 걱정으로 얼마나 자신을 스스로 힘들게 몰아갔는지 모른다.
특히 어렸을 때부터 건강에 대한 걱정이 많은 편이었다. 조금만 아파도 결국 최악의 상황까지 상상하게 되었다. 수능 재수를 준비할 때는 공부에 대한 걱정 외에 건강에 대한 걱정까지 추가로 하자니 실제로 희한한 증상이 많이 생겼다. 안구건조증이 있었던지라 눈 건강에 대한 걱정이 시작되었고, 그 걱정이 계속되며 실제로 눈앞에서 빛이 번쩍거리는 증상이 나타났다. 한동안 온몸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진동이 느껴지기도 했고, 윗집 꼬마가 친 피아노 소리가 며칠 내내 귀에서 맴도는 환청 증세까지 나타났으니 꽤 심각했다. 이렇게 정신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본 시험에서 평소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지금 생각하면 이 정도로 힘들었다면 심리 상담을 받는 방법도 괜찮을 듯 하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이러한 증상은 시험이 끝나니 거짓말같이 모두 사라졌다. 역시 ‘만병의 근원은 스트레스’라는 사실을 몸소 겪었다. 그런데 걱정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시험 날 단 하루 만에 모든 것이 판가름이 난다는 사실이 두려웠던 나머지, 시험 날 벌어질 만일의 상황, 사실은 일어나지 않을 꾸며낸 이야기를 자꾸만 상상했다. 시험 도중 화장실이 너무 가고 싶으면 어쩌지, 갑자기 시계가 멈추면 당황스러울 텐데 어쩌지, 앞의 사람이 다리를 떨어서 집중을 못 하게 되면 어쩌지 등등. 만들어 낼 수 있는 걱정거리는 참 많았다.
이렇게 온갖 걱정을 그만두고 공부에 전념할 수 있었던 것은 피트 재수 수험기간부터였다. 앞글에서 말했던 ‘그날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기’, 아니면 ‘단 한 시간 동안만 집중하기’와 같은 방법 외에도 나를 위해 매일 마음속으로 되새긴 문장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할 수 있다.’ 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어쩌면 진부하게 느껴질지 몰라도, 무엇을 이루기 위한 의지를 다지는데 최고로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시험 날 컨디션이 나빠도 나는 해낼 것이었고, 건강이 최악이라도 나는 해 낼 것이었다. 그만큼의 실력을 쌓으면 되고, 그만큼 최선을 다해 공부하면 되는 것이었다. 나는 어떤 조건 아래서도 해낼 수 있을 만큼 최선을 다해 공부한다고 생각해야 마음이 편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열심히 공부하기를 실천한 만큼 마음은 편안해졌다.
미래에 대한 걱정을 없애기 위해 올해 초에 있었던 약사고시를 준비하는 동안에는, ‘나는 오늘만 산다’고 생각했다. 약사고시는 다들 열심히 공부하기에 그만큼 합격률이 높았고, 혹시라도 떨어지면 동기뿐만 아니라 다른 학교까지 소문이 퍼져 부끄러워지는 상황이었다. 합격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하면 한없이 힘들어졌기에 내일 대신 오늘의 공부에만 집중하기 위함이었다. 실제로 오늘만 산다면, 오늘 하루 안에 무슨 일이 일어나겠는가? 미래의 합격이나 불합격은 전혀 걱정거리가 될 수 없었다. 단지 오늘의 공부 계획에 충실하면 나는 오늘 하루를 참 잘 살아낸 것이었다.
시험을 잘 치루기 위해 이렇게 다소 극단적으로 생각해야 했고, 이런 나 자신이 소위 ‘멘탈이 강한 편’은 아니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공부 외의 온갖 걱정을 하는 자신을 스스로 멈추기 위해, 이렇게 다소 극단적인 마음가짐이 필요한 나와 같은 사람이 있다면, 매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할 수 있다'와 '나는 오늘만 산다'를 마음속으로 외쳐 보는 것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