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위병 교대식을 보기 위해 두번째 날도 부지런히 움직였다. 사실 근위병 교대식에 관심이 있던건 아니였다. 하지만 동행하기로 한 친구가 보고싶다는 말에, 난 관심없는데 라고 솔직할 수 없어서 그러자 라고 답했다.
아마 이런 이유로 내가 혼자여행을 결심했던 것 같았지만, 한번 쯤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며 길을 나섰다. 하지만 이미 나보다 더 부지런했던 사람들의 인파로 사람들 사이에 갇히는 꼴이 되버렸다. 발 뒷꿈치를 들긴 하지만 150도 채 되지 않는 나의 키로는 역부족이었다. 결국은 핸드폰을 셀카봉에 연결하고, 머리위로 쭉 올려서 내가 볼 수 없는 그 인파 너머의 근위병들을 촬영했다. 그렇게 촬영한 동영상이나 사진을 통해 근위병 교대식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짐작했다. 흔들리며 구도도 맞지 않는 그런 영상들을 보며 하나씩 삭제해나갔다.
제대로 찍히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내가 직접 눈으로 보지 못했던 것을 굳이 흔적으로 남길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사진을 통해 보는 것은 직접 여행을 하지 않고서도 가능하다. 물론 사진은 좋다. 기억은 희미하다. 사진들이 내가 거기 있었음을 나의 기억보다 더 생생하게 전해준다. 필터를 입히고 수정되어 더 예쁘게 보이는 사진들도 좋다. 그런 사진들은 내가 거기 있어 얼마나 행복했는지를 느끼게 해준다.
그렇지만, 내가 직접 보지 않았던 것은
내 기억도, 추억도 될 수 없다.
결국은 그 사진들이 내가 거기 있었고,
그 곳에서 직접 그것을 보았고 느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사진 찍는것에 집착하곤 했었다. 감탄의 연속은 언제나 셔터의 연속으로 끝나곤 했다. 그 곳에 내가 존재한 사진도 찍어야 했다. 혼자 여행에서는 벅찬 사진들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을 만났다 동행을 구했다.
처음 혼자 여행을 계획했을 때는, 혼자서 여행하는 것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여유롭게 거닐면서, 사진보다는 그림으로 남기고 가슴에 남기며, 스스로에 대해 돌아보고 사색하는 그런 여행을 생각했었다. 하지만 넉넉하게 잡았다고 생각한 일정들은, 하루하루를 알차게 보내도 부족했고, 카메라는 손에서 떨어질줄 몰랐으며, 혼자 보다 누군가를 만나게 되는 날이 더 많았다.
같은 길 같은 장소 똑같은 일정, 그러니깐 우리의 일상 속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만난다 하더라도 어색한 인사 뒤 몇마디를 주고받는 것이 다였다. 여행을 하면서는 매일 새로운 곳을 마주하는 것 처럼 매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그 역시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빼고는 모든 것이 달랐다.
서로에게 소중한 시간인 지금을 같이 행복하게 보내기 위해 노력한다. 조금만 같이 걷다보면, 우리를 감싸안는 이 곳의 풍경 때문인지, 그래서 들뜬 마음 때문인지, 처음 만난 사이들이 아닌 것처럼 웃는다. 행복해한다.
처음 생각했던 혼자 여행과는 다르지만,
혼자이기에 가능했던 만남들과
서투름이 좋았다.
스스로에 대한 사색보다 그에 대해
생각할 틈이 없던 시간들이 좋았다.
온전히 그 곳을 즐기고 그 곳에 대해서만
생각 할 수 있어 좋았다.
근위병 교대식은 결국 제대로 보지 못하고 그 주변 green park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디서나 이렇게
파릇파릇한 공원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이 부러웠다.
어렸을 때 공원의 개념은 어린이공원이었다. 차를 타고 멀리멀리 가는 곳, 일년에 한번 어린이날같은 특별한 날에만 갈 수 있는 곳. 커가면서 공원은 푸른 들판이 있고 나무가 있고 사람들이 쉬거나 놀 수 있는 곳으로 의미가 확장했어도, 차를 타고 가야하는 곳, 어쩌다 특별한 날에 가야하는 곳임은 변하지 않았다.
포토벨로마켓을 구경하기로 했다. 마켓을 들어서기 전에 노팅힐 서점을 들렸다. 유럽여행을 오기 전 유럽을 배경으로한 영화 목록 중 하나였던 노팅힐. 결국은 매번 그렇듯이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보지 못하고 이 곳에 서 있었다. 그래 나중에 한국에 가서 그 영화를 보며 지금을 떠올리지 뭐- 라고 말하며 애써 게으른 내 자신을 합리화 했다.
파란색 간판, 빨간색 벽돌 그리고 유리창뒤에 진열된 여러 책들이 이런 것이 바로, 오래됨 그 자체로 아름다울 수 있는 빈티지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서점은 작지만 아기자기 했다. 특히 서점 뒷편 천장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들이 이 작은 서점을 따스하게 감싸안아, 포근한 느낌을 주었다.
마켓에 들어서니 생각보다 큰 규모에 놀랐다. 이 마켓에 들리기 전에 점심을 먹은 것이 아쉬울 정도로 많고 다양한 먹거리들이 펼쳐져 있었고, 여기저기 여행객의 눈길을 사로잡는 기념품들도 눈에 띄었다. 다음주에는 올 수 없는 곳이기에, 마켓 이곳 저곳을 누볐다. 물건을 팔고 사려는 사람들의 소음과 그 속에서 노래를 부르는 길거리 버스킹이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여행을 하는동안 나에게 시간은
몇월 몇일 몇요일이 아닌,
런던 1일차,2일차 혹은 파리까지 5일남음
정도로, 여행지에 대한 간격으로
장소가 중심이 되어 흘러간다.
그래서 날짜에 대해 무뎌졌지만, 그 소리들과 풍경들이 주는 느낌이 활기찬 주말 그 자체 같았다. 토요일이 잘 어울리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이곳에 있어 오늘은 토요일이 잘 어울리는 날이라고 생각했다.
상상했던 것 보다 큰 규모였던 마켓 구경을 끝내고 내려와보니 대영박물관의 입장시간은 끝나 있었다. 아쉬운마음으로 발길을 돌리려 할 때, 구름속에 숨어있던 햇빛이 대영박물관을 비추기 시작했다.
그런 햇살이 좋아 퇴장 시간의 대영박물관 주위를 왔다 갔다 했다. 대영박물관 근처에 자리잡은 큰 나무와 그 사이로 난 거리에 햇살이 비추니 아름다웠다.
그런 곳이 좋았다.
우연히 지나치던 거리들,
누군가에게는 그저 길일 뿐인 거리들이지만그 곳에서만 볼 수 있는 거리들.
그 곳에 내가 지금 있어야
볼 수 있는 거리들.
유명한 관광지와 달리 그런 거리들은 내가 남기지 않으면 다시 오지 않는 이상 볼 수 없는, 아니 다시오더라도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곳이기에 카메라를 들었다. 지금 이 느낌도 같이 담기길 바라며 사진을 남겼다.
우연히 지나다 한국음식을 파는 상점을 보았다. 아직 여행을 시작한지 이틀째지만 반가운 한국음식을 포장해서 근처 공원에 앉아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었지만 아직 쨍쨍한 해 밑에서 눕거나 노래를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언젠가 그릴 것 같아 가지고 다니던 연필과 스케치노트를 펴 지금 이 공간을 그리기 시작했다. 생각만큼 그려지진 않았지만 그냥 이 곳에 이렇게 그림을 그리며 오랫동안 가만히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좋았다.
쌀쌀해진 날씨에 옷을 갈아입고 야경을 보기위해 런던브릿지를 향해 갔다.
10시가 되어서야 어둑어둑해진 날씨를 보니 확실히 여름이 맞지만, 볼을 스치는 바람은 차갑다. 하지만 이런 바람과 어울리는 풍경들이었다.
오래되고 고풍스러운 런던브릿지 맞은편엔 현대식 건물들이 줄지어 있었다. 그곳에서 내뿜는 불빛들과 다리위를 지나치는 차들 속에서 바람이 부는 것조차 이 풍경을 위한 장치 같았다. 우연치 않게 배가 지나가기 위해 다리가 올라가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방금 전까지 저 위로 솟았던 다리를 건너간다. 다리를 건너니 완연한 밤이다.
내일 난 또 어떤 거리를 걸을까. 그 길 위에는 무엇이 있을까, 무엇을 만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