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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연 Aug 31. 2017

낭만의 도시 맞잖아, 파리

런던 안녕, 파리 안녕!

뉴욕여행을 한 적이 있다. 4박 5일이라는 짧은 일정이었다. 그래서인지 뉴욕자체를 느끼기보단 봐야할 곳들을 보기 위해 바쁘게 돌아다니는 여행이었다. 그럼에도 많은 곳을 보지 못했지만. 그렇게 짧지만 부지런한 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가장 좋았던 것은 마지막날 비행기를 타러가기 전 피곤한 눈꺼풀을 들어올려 아침일찍 길을 나섰던 그 순간이었다. 전날 미리 사둔 빵을 들고 가장 좋아했던 브라이언트파크로 걸어갔다. 같이 여행 온 친구와 잠시 헤어져 동이 막 터오른, 아직 이른 시간으로 다소 조용한 그 뉴욕거리들을 혼자 걷던 그 순간. 오른쪽 골목에서부터 시작된 햇살이 점차 위로 떠올라 골목골목을 비추던 모습. 청소차가 길거리를 청소하던 그 모습. 빠른 발걸음으로 날 지나쳐 간 선글라스를 낀 여성. 그 순간 난 관광객이 아니라, 그들 일상의 한 부분이 된 것 같았다.


그렇게 햇빛이 서서히 비추는 거리들을 구경하며 도착한 브라이언트 파크도 전날 점심시간보다 한가로웠다. 새들의 지저귐을 들으며 빵을 먹기시작했다. 빽빽한 건물들 사이로 네모낳게 구멍이 나듯 생긴 브라이언트 파크 위에는 그렇게 네모난 햇살이 비추고 있었다.

 


가만히 앉아 그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 순간이 좋았다. 이 곳도 저곳도 봐야한다며 부지런하게 돌아다니고, 전망을 보기 위해 비싼 돈을 지불한 곳이 그토록 많았는데, 결국 이곳이라니 결국 이렇게 앉아있던 순간이라니.









그때의 여행부터 나는 혼자여행을 선호하기 시작했다. 그날 아침의 기억이 너무도 선명하게, 너무도 가슴 뛰게 좋았기 때문에 여행을 하게 된다면, 그날 아침처럼 여행하고 싶었다. 마지막날에는 여유롭게 떠나야 했다. 그 도시의 가장 맘에 들었던 곳을 다시 한번 다녀올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하는, 그런 여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도시 간에 이동하는 날에는 여건이 된다면 한 시나 두시 출발을 선택했다. 첫 날이 될 도시에게는 비교적 늦은 인사를 건너게 되겠지만, 마지막 날이 될 그 도시에게 작별인사를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파리로 가는 열차도 한시 반 기차였다. 아침에 눈을 뜨고 런던에서 가장 맘에 들었던 곳, 그 곳으로 가기로 했다.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내 발걸음에도 힘이 들어간다. 힘주어 한발 한발을 내딛는다. 이렇게 라도 내 발자국을, 흔적을 남기고 싶다는 듯이. 아스팔트 위에서 희미한 자국 조차 생기지 않을테지만, 그래도 꾹꾹 눌러 담는다. 마지막 발걸음이니, 물론 다시 오고싶은 곳이니 언젠가 다시 걷게 될 곳이겠지만 그때도 이 흔적을 느낄 수 있게. 떠나는 날인데 자꾸 뒤를 돌아보게 끔 날씨가 좋다. 좀 더 천천히 걸어본다. 그 곳은 역시 트라팔가 광장이었다.  



런던 첫 날 이른 아침에 온전한 모습을 보여주던 트라팔가 광장은 그 이후로 어떤 행사 때문에 무대와 철근 구조물로 둘러쌓여있었다. 그리고 마지막날 아침에 다시 온전한 모습을 드러낸 트라팔가 광장이었다. 적어도 첫인사와 마지막 인사는 온전하게 해주니 그것 만으로도 다행이었다. 트라팔가 광장 자체는 광장이라 불리기에 그리 크지도 않고 우뚝솟은 넬슨제독의 기념비와 그 뒤에는 내셔널갤러리가 있는 그런 장소였다. 그래도 그 곳이 내겐 가장 런던 같은 곳이었다. 6박의 짧은 여행으로는 런던을 안다고 말할 수 없지만, 그 짧은 시간동안 내가 느낀 런던은 그러했다. 바닥에 무언갈 그리는 행위예술가와 붐비는 사람들, 분수대와 그뒤의 기념비, 그 곳을 지나다니는 차와 빨간 버스 그리고 계단에 턱 하니 앉아 앞을 바라보면 보이는 저 앞의 빅벤의 모습까지, 내가 느낀 런던이었다.


빅벤이 보이는 길 왼쪽에 난 길에는 길가에 세워진 나무들이 푸르렀다. 그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반짝였다. 그 곳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모른채로, 마냥 그 거리가 예뻐 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풍성하게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햇빛을 받으며 걸었다. 런던 특유의 고풍스러운 건물들 사이로 그렇게 푸른 나뭇잎 색깔의 햇살을 받으며 걷는 그자체가 기분이 좋았다. 날씨가 좋아서 아니면 런던이라는 곳 자체가 주는 분위기 때문에, 아니면 단지 낯설고 이국적인 풍경이어서, 그냥 길거리임에도 그 거리를 걷는 것이 이토록 좋았다. 길거리를 걸으면서 한번도 이런 기분을 느껴 본 적 없었다. 이렇게 걷는 것만으로도 새삼 행복하게 하는 것, 이런 것 만으로도 행복 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것, 이런것을 느끼기 위해 여행을 온 것 같았다.




런던에서 파리로 넘어갔다. 처음 기차를 타고 도시간의 이동이다보니 플랫폼을 잘 찾고 제대로 잘 타고 잃어버리는 것없이 잘 도착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수 많았지만, 런던의 기차도 그냥 기차였다. 마법의 세계로 가는 기차와 섞여있지도 않았으니 찾기 쉬웠고, 그 앞에서 기다리다가 기차가 도착하면, 캐리어를 넣고 예매해놓은 자리를 찾아 앉으면 그 뿐 이었다. 런던에서는 비교적 안전한 느낌을 받았지만, 지금 향해 가고 있는 '파리' 는 워낙에 소매치기의 위험성을 많이 들은터라 그 곳에 가까워질 수 록 설렘보다는 긴장감이 더 커져갔다. 파리 북역에 도착했다. 캐리어를 매고 배낭을 매고 또 돈을 따로 보관한 작은 가방을 어깨에 맨 채였다.


이렇게 낯선 곳에 내 짐을 겨우 든채로 애써 길을 찾으려 할 때면, 이곳에 나 혼자라는 것이 새삼스레 느껴지곤 한다. 그 곳에서 난 어울리지 않은 풍경같았고 곧 떠나버리기에 그 무엇에도 익숙해질 수 없고 흔적도 남길 수 없는 그런 존재 였다.


고독이 느껴지려 할 때 쯤 이럴 겨를이 없다고 생각했다. 어서 전철역을 찾아야 했다. 북역에서 소매치기를 당했다는 글은 이미 여럿 들었으니 멍하니 서있을 수 는 없었다. 티켓을 끊을때도 들고 있는 핸드폰과 짐 그리고 꺼내야하는 돈들 사이에서 어찌나 긴장을 했던지, 급하게 티켓을 끊고 전철을 타러 아무렇지 않은 척 하지만 속으로 긴장을 잔뜩 한채로 종종걸음을 걸었다. 환승까지하는 숙소로 가는길이었지만 잘 도착하긴 했다. 도착하자마자 침대에 뻗어 한 숨을 내쉬었다. 안도의 한숨인지 모를 그런 한 숨 뒤에 이윽고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낡은 파리 지하철에서 큰 짐을 들고 이동하기란 쉽지 않았다. 엘레베이터는 커녕 에스컬레이터도 없는 파리 지하철에는 수많은 계단만이 존재했다. 환승까지 하느라 그 많은 계단을 세번이나 마주쳐야했고, 낑낑거리며 계단한칸 제대로 오르지도 내리지도 못하던 나에게 많은 이들이 도움을 주었다. 어쩔 수 없이 그 도움을 받으면서 얼굴이 화끈해졌다. 물론 파리 사람들의 친절함에 감사했고, 다행히 돈을 요구하는 이들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도와주는 그 사람들을 보며 나도 여행객을 만나면 이렇게 친절히 대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내가 감당 할 수 없는 내 짐을 들고 나 홀로 여행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짐이라는 것이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여행이라는 것을 뜻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파리에서부터는 불필요한 짐들을 과감히 버리기 시작했다. 내가 해낼 여행이었고, 그 안에는 짐을 혼자 감당하는 것도 포함되어있었다.








숙소 창 밖 풍경

숙소에 도착하니 6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밖은 이제 겨우 세 네시가 된 듯한 밝음이었다. 짐을 대충 풀고 길을 나섰다. 저쪽으로 가면 에펠탑이었고 이쪽으로가면 샹제리제거리와 개선문이었다. 아직 에펠탑을 마주하기에는 마음의 준비가 안되었다는 그런 생각으로 샹제리제 거리쪽으로 움직였다.




분명 여기가 샹제리제 거리가 맞는데, 그동안 미디어를 통해 접하고 내가 상상한 그런 느낌이 아니었다. 일섭할배처럼 인력거를 타고 가지 않아서 일까. 그 느낌은 아니었지만 큰 상점들과 네모난 나무와 부대끼는 프랑스 국기 그리고 저 앞에 서있는 개선문 까지 샹제리제거리였다. 거리에 서서 바라본 샹제리제 거리 끝에 자리한 개선문과 가까이에서 바라본 개선문은 달랐다.




신호등을 차례차례로 건너며 개선문 주위를 한 바퀴 돌면서 바라보았다. 그 주위를 도는 차 들 속에 우뚝 솟은 개선문은 나라도 그 곳을 지날때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당당한 발걸음으로 걸어나갈 것 같은, 그런 느낌을 주는 곳 이었다. 개선문 뒤쪽으로 가보니 저 멀리 우뚝 솟은 에펠탑의 모습이 살짝 보였다. 에펠탑이 뭐라고, 에펠탑을 보고싶은 마음과 아직은 아니라는 마음이 뒤섞였다. 결국 저녁을 먹고나서 바토무슈 위에서 에펠탑을 처음 마주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난 파리에 도착하는 사람들에게 첫날 밤에는 바토무슈를 타며 에펠탑을 바라보라고 권하곤 했다.





바토무슈를 타러가는 길에 에펠탑은 이미보였다. 벌써부터 신나기 시작했다. 그 에펠탑이라니. 유럽여행하면 떠오르는 장소, 상징물로 빠지지 않던 에펠탑, 파리하면 에펠탑을 넘어 유럽여행하면 에펠탑이었다. 9시40분, 바토무슈를 타는 시간을 기다렸다. 선착장에 서서 앞에 빼꼼 보이는 에펠탑을 바라보고 있는데 패키지 여행을 온 듯 보이는 한국인 여러명이 선착장으로 들어섰다. 그 사람들을 향해 가이드가 2층 맨 뒤에 타는 게 좋다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한테 한 말은 아니었겠지만, 그런 말을 듣고 나서는 2층 맨 뒤로 가서 앉을 수 밖에 없었다.



서서히 노을이 지기 시작하는 하늘아래로 파리의 풍경을 유유히 지나치는 바토무슈 위에서, 급하게 눈동자를 굴렸다.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분홍색 노을이 차츰 자취를 감출때 쯤 그 노을을 대신이라도 하겠다는 듯 하나 둘 건물들에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불켜진 다리 위로 저 멀리 불켜진 에펠탑이 보였다.


어느 한 다리 아래를 지나가자 에펠탑이 눈앞에 딱 하고 나타났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탄성을 내질렀다.


이 유람선 위에서, 센느강 위에서, 다리 아래를 지날때마다 손 흔드는 처음보는 사람들에게 나도 신나게 손을 흔들게 되는 그런 설렘감으로, 내 볼을 스쳐가는 바람사이로, 어두워진 하늘 아래로,

불이 환하게 켜진 에펠탑이었다.

드디어 에펠탑이었다.

드디어 파리에 왔다.



다시 한번 벅차오르는 감정이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그때의 그 느낌만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앞으로의 여정동안 무수히 에펠탑앞을 지나치고 바라보았지만, 그 때 그 첫 날 그 위에서 바라보며 느꼈던 감정은 그날 뿐 이었다.








낭만의 도시였다.
낭만, 익히 들은 단어이지만
한 번도 그 단어가 주는 느낌을 느껴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파리에 온 첫 날, 난 그 단어의 의미를 어렴풋이 알 것 만 같았다.
적어도 파리에게 낭만의 도시라는 말이 어울린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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