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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연 Sep 06. 2017

흐릿하게 아름다운, 파리



 핸드폰 알람소리에 눈을 뜨지만, 평소보다 몸이 무겁다.


평소에도 잠이 많은 편이다. 고등학교 시절 내내 같은시간에 눈을 떠야했지만, 적응은 커녕 매일매일이 새로운 것처럼 일어나기 괴로워 했다. 물론 대학교에 와서도 변함은 없었다. 알람소리를 듣고 깨는 시간과 침대 위를 벅차고 일어나는 시간의 간격이 길었다. 으레 대학생들이 그렇듯, 어떻게 그렇게 일찍 일어날 수 있었을까? 하고 종종 과거의 나를 대단하게 여기며, 그때보단 충분히 늦은 시간에 등교했다. 그러나 여행을 시작 한 뒤, 오랜만에 이른 아침마다 눈을 떠야하는 나날들이 반복되었다. 잠이 깨기 위해서는 여전히 알람소리가 필요했지만, 눈을 뜨면 대개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곤 했다. 피곤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새로운 곳을 가고, 보고, 느끼는 것은 심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피곤한 일이다. 밤마다 기절하듯 잠들기 일 쑤 였다. 그럼에도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그 어느 때 보다 힘들지 않았다.




사실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힘든게 아니라,
일어나서부터 시작되는 하루가 버거웠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잠보다 달콤하지 못한 일상들이기에,
쉽사리 잠을 이겨내지 못했던 것일지도.






아침에 눈을 뜨면 그 날이 기대되고, 비추는 햇살에 오늘 하루 역시 즐겁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을 받고, 지나가는 시간이 아까워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게 되고, 저무는 해를 바라보며 다음날에 대한 기대를 갖는 그런 하루.


..우리 내면에서 새롭게 얻은 힘과 열망이 우리를 깨우면, 공장의 종소리가 아닌 천상의 음악이 파도치고 향기가 대기에 충만하며 오늘의 삶은 어제보다 한 차원 높아진다.
/월든


그런 하루가 오직 여행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라면, 몇 주뒤 한국에 있는 나는 또 다시 피곤한 하루하루를 맞게 될까. 그렇다면 할 수 있는 한 오랫동안 여행을 하고 싶다. 아니 내 모든 삶이 여행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언제가 죽음이라는 이름으로 이 여행이 끝나기 전에, 하나라도 더 보고 느끼고 행복하기 위해 매일 아침 부지런히 일어나 기분좋게 하루를 맞이하지 않을까. 지금처럼.







그런데, 파리에서 첫 아침은 런던에서의 아침과 달랐다. 도시간의 이동에 따른 피곤함이라고 생각했다. 애써 무거운 몸을 일으켜 나갈 채비를 했다. 창밖의 날씨가 흐리다. 날씨앱에서도 흐린 구름이 둥둥 떠다녔다. 어제 들고나간 에코백에 우산만 더 넣은뒤 방을 빠져 나왔다.



빵에 딸기잼과 버터를 발라 한입에 넣는다. 빵을 씹는 동안 눈은 핸드폰 화면에 고정되어있다. 날씨도 흐리고 비가 올 수도 있으니 오늘 일정은 대부분 실내에 있을 수 있는 박물관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뮤지엄패스를 사기 위해 첫 목적지는 로댕박물관을 선택했다.



날씨가 흐린탓일까, 거리에 사람이 드물다. 베이지색 고풍스런 건물들과 구름이 빼곡해 우중충한 날씨가 제법 어울린다.




로댕박물관에도 사람은 많지 않았다. 로댕의 생각하는 동상은 고개를 올려다보아야하는, 비교적 높은 곳에 있었다. 드문드문 있는 사람들, 몇몇의 말소리 빼고는 고요함 그리고 아직은 흐릿한 날씨가 흡사 새벽녘과 같은 느낌을 준다. 생각하는 동상과 어울리는 풍경이라고 생각했다. 생각하기에 좋은 고요함과 아늑한 흐림이었다. 괜히 턱에 손을 올려 생각을 해본다. 이 다음에는 어디로 가지. 딱히 그처럼 심각하게 생각할 거리들은 떠오르지 않는다. 여기가 한국이라면 모를까, 한국에서의 일을 생각하려니 저절로 그 동상처럼 얼굴이 무거워지고 깊은 생각에 잠기려 한다.



생각하는 동상 뒷편의 작은 길로 들어 섰다. 오만과 편견이라는 책을 읽을 때 였나, 유럽은 경험해 보지 못 했고 더더욱 18-19세기의 유럽은 익숙치 않은 상태에서 그 곳에 나오는 장소를 책에 적힌 묘사만으로 상상해야했다. 그럴때 내가 떠올리곤 했던 풍경이 지금 이곳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샛길을 통해 이어지는 큰 궁궐같이 생긴 집과 그 앞의 푸른 정원. 물과 그 물에 비친 하늘을 머금고 있는 동그랗게 생긴 분수대 같은 곳을 천천히 돌았다.





그 곳을 벗어나 다음 목적지를 향해 거리를 걸었다. 파리의 길거리였다. '파리의'만 붙었을 뿐, 길거리임은 다르지 않지만 그 것이 주는 느낌은 왠지 '아름다움' 이다. 물론, 이에 반대하며 악취, 냄새, 쥐 등을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같은 곳을 가더라도 그 사람의 현재 마음이나 몸의 상태, 마주치는 사람들, 날씨, 보고 느꼈던 것 모두 다르니 각각 다르게 느끼고 다르게 기억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니 이 파리를 지나쳤고 지나치고 지나칠 수 많은 사람들은 그럼에도 '자신만의' '특별한' 기억이나 경험을 지니게 된다. 넘쳐나는 여행기를 우리가 매번 새롭게 읽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도 이왕이면 불쾌한 경험들보다 좋은 경험이 더 많기를, 그래서 나쁜기억은 잘 까먹는 내가 훗날 좋은 기억만 어렴풋이 떠오르며 참 좋았지라고 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서 나의 기억 속 파리는, 음악을 들으며 걸었던 그 거리들, 센느강위에서 반짝 거리는 햇빛, 드믄드문 서 있던 키큰 가로수, 다리 건너편에서 닮은듯 다른듯 서있던 건물들 등 단편단편의 기억들이 모여 대부분 '아름다움'이 되었다.  


같은 듯 다르게 생긴 베이지색 건물들에는 여러 창문이 나있었고 그 창문들 마다 곡선으로 이루어진 발코니 창이 있었다. 창문 주위에는 창문이 하나의 작품인것처럼 고풍스러운 문양이나 조각들이 감싸고 있었다. 그 창문을 여는 것만으로도, 로미오를 바라보는 줄리엣이 될 것 같은 기분을 주는 모양들이었다. 그리고 드문드문 꽃힌 분홍, 빨강의 꽃들이 그 창백한 건물들에 화사함을 더해주었다.  


7월의 파리, 관광객이 많을 시점인데 센느강을 따라 걷는 길이 한적하다. 흐린 하늘이지만 우중충하기보단 고독한 느낌만을 줄 뿐이다.





그렇지만 당신의 고독은 당신에게
아주 낯선 상황속에서도
당신을 위한 의지처이자
고향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바로 고독을
출발점으로 삼아서
당신의 모든 길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젊은시인이게 보내는 편지-







그 많던 관광객들은 아마 여기 모여있었나 할 정도로 줄은 선 사람들의 행렬이 끝없이 이어진다. 세모난 투명한 피라미드, 루브르 박물관 이었다. 뮤지엄패스를 소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반대편 줄에서 곧바로 입장할 수 있었다. 긴 줄을 서지 않아도 되었다는 것만으로 뮤지엄패스를 충분히 활용한 기분이 들었다. 먼저 입장하는 퍼스트클래스나 비지니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기분이 이런 걸까, 이런 입장하나에도 먼저 들어갔다는 것에 기분이 우쭐해진다. 큰 값을 지불한다는건, '남들과는 특별하게 다른' 기분을 사는 값도 포함되어있는 것 같았다. 그것이 때론 우월함으로 잘못 해석 되기도 하지만...


기다림의 지침 없이 입장한 루브르였지만, 엄청나게 많은 인파 속에서 피곤함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사람도 작품도 참 많은 곳에서 이곳 저곳을 누비며 다녔다. 어디가 시작이고 끝인지 모를 끝없이 이어진 작품들 속에서, 미로같은 길 속에서, 모나리자를 찾았다. 작은 모나리자 그림을 바라보며 이 곳을 끝이라 결정했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좋아하지 않은 체질인지, 컨디션이 좋지않던 몸 때문인지, 소란스럽고 북적거리는 다소 산만한 분위기 때문인지 혹은 그 총제적인 것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박물관은 나와 맞지 않는것 같다며 루브르 박물관을 빠져나왔다. 그런 나를 반겨준건 뜨거운 햇살이었다.



분명 아침부터 비가 내릴 것같은 하늘이었는데, 아니 30분전까지만해도 구름들로 빼곡해 어둡기만한 하늘이었는데, 어느새 구름들은 잦아들고 청명하고 뜨거운 햇살이 주위를 비추고 있었다. 하루에 4계절이 모두 있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었는지 아침에 쌀쌀하던 가을날씨가 지금은 35도가 넘는, 파리치곤 매우 뜨거운 여름 날씨로 바뀌었다. 파란하늘과 뜨거운 햇살, 어제보지 못했던 낮의 에펠탑 모습을 마주하기 좋은 날씨라고 생각했다.









샤이요궁으로 향하는 길 동안 등에 땀이 주륵 흘러내렸다. 생각보다 뜨거운 햇살에 얼굴을 들기도 힘들었다. 결국 에펠탑의 모습은 제대로 마주할 수 없었고 도망치듯 근처식당으로 들어섰다. 파리의 여름은 대체로 이렇게 덥지 않기 때문에 냉방시설을 갖춘 곳이 부족했다. 내가 들어온 식당도 이 뜨거운 햇살에 겨우 문을 활짝 열은 정도였다. 차가운 콜라 한 잔을 벌컥 들이켰다. 다행히 이것만으로도 더위가 가시는 듯 했다.






점차 해가 낮아지고 노을이 질 때 쯤, 에펠탑을 바라볼 수 있는 들판으로 향했다. 그 곳에 앉아 에펠탑을 올려다 보았다. 노을이 뒤로 넘어가는 모습 그리고 곧 어둠이 내리고 불이 켜지며 반짝거리는 에펠탑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딱히 무엇을 한건 아니였다. 그냥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놓고 하늘과 에펠탑만을 바라보고 있을 뿐, 가끔씩 다가오는 잡상인에게 노땡스 라고 말할 뿐 이었다. 그러다 정각이 되면 반짝거리는 빛을 내는 에펠탑 모습을 좀 더 유심히 바라보고, 다시 옆에 앉은 사람과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렇게 가만히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만, 돌아보니 벌써 열한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내일을 위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얼마나 머물러야 이 풍경이 익숙해질까.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져 알아차리지 못하는 나날들이 계속 되다가, 어느날 갑자기 '아. 맞다 에펠탑. 그래 이런 모습이었지. 그렇게 기분 설레게하는 느낌이었지' 하고 느끼게 될려면 말이다. 어쨌든 겨우 일주일로는 부족했음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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