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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연 Apr 04. 2018

여행기를 쓰면서.

글로 남은 여행이 남기는 것은.



인정해야겠다.

내가 여행글을 쓰는 이유는

날로 희미해지는 내 기억속 여행을 '글'로 붙잡아, 보다 선명한 글자와 단어들로 남기기 위해서다.

그리고 이렇게 모르는 척 쓰다보면 내 여행이 '글'로 남길만한 가치가 있는 여행이 될 것 같았다.



글로 남기기 전 내 여행은 어쩐지 초라해 보이는 것이었다. 많은 이들이 지나쳤고 또 앞으로 지나칠 곳을 갔었다. 무지 오랜 시간이 아닌, 짧지 않은 시간을 머물렀다. 특별한 것을 하기보다 그저 걷고 보고 먹고 그리고 다시 걸었다. 돌아오고나서는 마치 여행을 한 적 없듯 변함없는 삶을 살았다.


내 여행이 그저 그런 여행이 되기전에, 바래고 희미해진 기억에만 존재하기 전에, 어딘가에 남기고 싶었다. 그것이 기념품들을 책상 서랍 한켠에 차곡차곡 진열해 두는 것이든,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만남을 이어가는 것이든, 사진으로 남은 추억들을 쓰다듬는 것이든,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이든,

어떤 형태로라도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여행에 의미를 담고 싶었다.

누군가는 처음부터 의미를 가지고 여행을 시작할테고, 누군가는 여행 중간중간 그 의미를 깨닫게 되고

누군가는 훗날 돌아보며 여행에 의미를 불어넣겠지만. 내 여행은 어땠는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그리고 그 의미가 오로지 나에게만 의미 있는지, 누군가에게도 의미 있을 수 있는지. 궁금하고 또 바라며 글을 쓰고 있다.



이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이 내 여행에 그런 작은 의미 하나하나가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한동안 바쁜 삶을 살았다. 바쁜만큼 공허했다. 무엇때문에 바쁘기보다, 바쁘기 위해 무엇을 하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흔히 '필요'라 불리는, 운명처럼 보이는 것에 발목을 잡혀, 곧 좀 먹고 녹슬고 도둑이 침입해 훔쳐갈 재물을 축적하느라 안간힘을 쓴다. 그리고 마침내 죽을 때에 이르러서야 이것이 바보 같은 삶임을 깨닫는다.
- 월든



여행을 돌아보기 어려웠다. 작년에 이 모든 여행기를 끝내겠다는 다짐으로 시작했지만 벌써 새로운 해, 4월이다. 물론 바쁜 시간을 틈타 돌아볼 시간은 있었다. 다만 이런 마음으로 돌아보고 싶지 않았다. 현실과의 괴리감을 느끼거나 불안하고 답답한 마음으로 내 여행을 곱씹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마음이 편해지는 시간 혹은 그런 때를 찾았다. 오늘도 그 중 하나였다.


오늘 아침, 여지 없이 같은 곳을 향해 걸어갔다. 걷기에만 충실한 걸음이었다. 목적이 뚜렷한 걸음이었다. 바닥을 보며 걷는 나를 무언가가 지나쳐간다. 위를 올려다보니, 푸르른 하늘위에 둥둥 떠있는 구름이다. 구름의 그림자가 지나간 곳을 따뜻한 햇살감싼다. 북적북적한 사람들 말소리와 발소리 사이사이에 햇빛이, 구름의 그림자가, 꽃잎들이 자리한다. 저마다 조금씩 다른 분홍색 꽃들로 매일 똑같은 거리가 오늘은 왠지 다르게 느껴진다. 오랜만에 하늘부터 발끝까지 좋은 날씨였다.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가슴이 부푸는 느낌이다.

지금 이 감정이 무엇인지 떠올리는데 시간이 걸렸다. 내가 보고 듣고 있는 하늘, 햇빛, 낮의 소란스러움들 사이로 문득 런던의, 파리의, 스위스의, 두브로브니크의 하늘이 떠올랐다.

이제 알 것 같다. '여행하는 느낌'이었다.

오랜만이라 잊고 있었는데, 내가 여행하는 동안 느꼈던 감정들 이었다.






작년 이맘때 쯤, 난 여행 준비에 여념 없었다.

나는 지금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 걸까.

다시 한번 여행이 그리워지는 시간에 글을 쓴다.




내 여행이 글로 남고,
글로 남은 내 여행이 남긴 것은
문득 떠오르는 감정, 나타나는 기억,
다시 한번 여행을 바라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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