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지연 May 02. 2018

내려다본 프라하




 어제보다 밝은 날이라고만 생각했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과 그 위에 뜬 해는 이 땅을 빈틈 없이   비추고 있었다.


한 걸음 내딛을 때 마다 땀이 흘렀다. 땀의 무게 때문인지, 고개는 점차 아래로 내려가고, 발걸음은 현저히 느려졌다. 이제 내 눈에 보이는 건, 바닥에 드리워진 내 얼굴 그림자 만큼의 돌길과 그 위를 지나치는 발 뿐이었다. 뒷목에 닿는 햇빛이 따끔거린다. 훤히 뚫린 광장과 다리 위에는 그늘이 없었다. 구름의 그림자 조차 없는 땅 위에서 햇빛을 피할 방도는 없어 보였다. 끈적끈적한 한국의 여름과는 다르지만, 옷 사이로 드러난 피부에 와닿는 햇빛이 무척 따가웠다.

점차 말수가 줄어들었다. 시원한 콜라 한 모금이 간절했다. 따금거리는 목 넘김 후 입안에 퍼지는 달콤한 향이 그리웠다. 하지만, 바닥만 보며 묵묵히 걸어온 이 쯤에서 콜라 한 잔 파는 곳을 찾기란 어려웠다. 콜라를 찾아 헤맬 것인지, 가던 곳을 가야할지 고민 했다. 더웠고, 목이 말랐고 몸은 지쳤다. 그럼에도 내 발이 향한 곳은 오늘 가고자 했던 레트나 공원이었다.


지금 서 있는 곳에서 전혀 가깝지 않은 곳이지만, 어딘지 모를 그 곳보단 어딘지 아는 곳을 가는게 나아보였다. 가야할 곳, 언젠가 도착하게 될 곳이 정해지니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어쩌면 저 모퉁이만 돌면 시원한 음료가 날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랐다. 지금까지 흘린 땀이 아까워서 인지, 혹은 실망하게 될까 두려워서인지, 마른 침을 한번 더 삼키고 다시 걸었다. 덥고 지친 내게,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음이 분명한 곳이 필요했던 것 같다.


이 더위가 쉽사리 가시지 않으며 가야할 곳이 멀다는 사실이 막막하기보단, 명료하게 다가왔다. 그러니 어쨌든 쉬지 않고 걸어야 하고, 이 땀과 뜨거움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빨리 이 더위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했던 순간보다 마음이 누그러졌다. 조급함에 쫓기지 않아도 되었다.


드문드문 불어오는 바람이 머리칼을 스치고 지나간다. 바람이 지나간 곳을 돌아보았다. 바람을 맞기 위해선 바람이 지나간 자욱을 따라가거나, 바람이 불어온 자리에 서 있거나, 혹은 바람을 고대하며 가야할 곳을 가면 된다.


다시 앞을 보고 걷기 시작했다.













공원에 도착하자마자 그늘을 찾아 돗자리를 피고 몸을 뉘었다. 그토록 찾던 그늘이었다. 바람 따라 나뭇잎이 움직일때마다 그 사이로 햇빛이 반짝거렸다. 아까보다는 누그러진 햇빛이었다. 쨍한 파란하늘을 가로지르던 마치 핀조명 같은 그런 해였는데, 지금은 주황색 빛으로 하늘을 감싸는 게 은은한 조명 같았다.


땀이 거의 다 말라갈때 쯤, 내가 누워있는 곳의 맞은편 광장에서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몸을 일으켜 그쪽을 바라보니,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이 곳의 전통옷 같아보이는 옷을 입고 춤을 추고 있었다. 점차 빨라지는 노랫소리에도 아랑곳하지않고 춤을 완벽히 췄다.

그들이 크게 소리내며 웃을 때마다, 그 모양에 따라 주름이 패였다. 깊게 패인 주름은 그들의 웃음짓던 세월을 담아내는 듯 했다. 더 많이 웃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훗날 저런 주름을 갖게 될려면, 내가 행복했던 세월을 깊게 담아낼려면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이제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봐도 눈이 부시지 않았다. 그래도 여전히 콜라 한 모금이 간절했다. 그 주변 맥도날드에서 햄버거 세트를 사서 돌아왔다. 뻥 뚫린 프라하의 풍경을 보며 콜라를 들이켰다.

지금의 프라하도, 지금의 시원함도 지금 나에게 딱충분한 만큼이었다.  


여전히 고개를 숙여 밑을 내려다보고 있지만, 아까와는 전혀 다른 풍경을 본다. 햇빛이라는 조명이 꺼지고 어둠이 내려앉을때까지 오래토록 내려다 봤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행기를 쓰면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