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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연 May 31. 2018

길지만 짧았던 프라하










어제처럼 쨍쨍한 해가

오늘도 뜨거운 하루가 되리라 예고하는 듯 했다.


해가 가장 높이 뜬 2시 부터 오후 팁투어에 참가했다. 팁투어는 매일 정해진 시간, 같은 장소에서 시작되기에, 그저 올바른 장소를 시간 맞춰 가면 누구든 참여할 수 있었다.


팁투어의 설명을 들으면서 프라하를 이곳 저곳을 누볐다. 혼자 걷고 보고 느끼는 것과 이 곳이 담고있는 이야기를 들으며 바라보는 것의 차이를 느꼈다.


어떤 것이 더 좋다고 굳이 나눌 필요는 없지만,

장소가 품고 있던 이야기를 알게된 것만 으로도,

이 장소와 훌쩍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


이를테면 까를교에 있는 한 동상을 사람들이 소원을 빌기 위해 손을 뻗는걸 보고 따라하는 것과 그 동상에 얽힌 이야기를 알고 손을 뻗는 것의 차이랄까.


많은 인파에 밀리기도 했고, 생각보다 높아서 내 손은 그 동상에 닿지 못했다. 그래도 아쉽지 않았다. 손을 뻗는 순간까지 어떤 소원을 빌어야 할지 몰랐을 정도로 이 여행이 내 꿈이었기 때문에, 다른 소원은 생각나지 않았다. 그동안 소원이라고 하면 크고 거창하고 그래서 터무니없는 것들을 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취업, 연애, 성적, 돈 처럼 현실적인 문제가 아니라, 행복이나 평화 이런 것들을 말이다. 당장 5분 뒤의 일도 알지 못하는 내가 혼자 하기엔 너무도 역부족인 일이, 우연에 기댈 수 밖에 없지만 꼭 필요한 일만이 '소원'으로 불리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중 가장 세속적이었던 소원이 바로 이 여행이었고, 내 소원은 이루어졌다. 매일 만나는 새로운 모습에 감탄하고 신나하는 이 감정이 아마 소원이 이루어진 후의 감정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동안 소원을 들어준다는 뜻을 소원을 이뤄준다는 뜻으로 착각 했었다. 들어준다는 문자 그대로, 누군가가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준다는 것 혹은 어렵고 무거운 이야기를 같이 나눠 들어주는 것이 더 맞는 의미였다.


그리고 소원을 빈다는 건 내 속에 꽁꽁 숨겨진 이야기를 들여다보고, 그 중 하나를 골라내는 것 같다. 현실에 치여 터무니 없는 생각이라고 미뤄뒀지만, 사실은 현실을 떠나 온전히 '내가 바라는 것'을 떠올려보는 행위인 것이다. 그 이야기를 어쩌면 누군가가 들어줄 것이라 생각하니 그리 외롭지 않은 혼자만의 속삭임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오늘도 그 자리를 지나가며 각자의 소원을 빈다.  


어쩌면 오늘의 이 날들이 곧 한국으로 돌아가면 다시 소원이 될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난 다시 소원을 빌고 이 자리에 돌아와 소원을 이루고싶다.

 






장소에 얽힌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야기 속 주인공들을 떠올린다. 그 성인은 어떻게 그렇게 죽을 수 있었을까. 끝내 완성하지 못한 성을 두고 눈을 감아야 할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리 상상력이 풍부한 편도 아닌데, 이야기의 시작인 곳에서 혹은 이야기와 관련된 건축물 앞에서 자연스럽게 이런 저런 생각들이 떠올랐다.


이 곳을 스쳐지나간 사람들을 기억하며 걸음을 옮겼다.


팁투어의 거의 끝무렵인 성 비투스 성당에서 비가 올 것 같다는 누군가의 말과 함께 먹구름이 몰려왔다. 순식간에 하늘이 어둑어둑 해졌다. 비가 내리기전에 설명을 끝마치려 했던 가이드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비는 조금의 여유도 주지 않은채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갑자기 내리는 비에 비를 피할 수 있는 처마 밑으로 옹기종기 모였다.


흐린 풍경 속 성당의 모습, 눈 앞에서 떨어지며 타닥타닥 소리를 내는 비, 각자 바쁜일정을 소화하며 한 공간에 있는지도 몰랐을 사람들과 좁은 공간에 모여있게 되니 느껴지는 왠지 모를 친근감, 같은 처지에 놓였다는 소속감, 등 뒤의 사람들의 소란스런 목소리가 빗소리에 가로막혀 이 곳에서만 나는 유일한 소리 처럼 크게 들리던 순간들. 급작스러운 비는 흐릿한 사진을 남겼지만, 대신 생생하고도 선명한 기억을 남겼다.


비가 아직 다 그치진 않았지만 제시간에 끝내야 하는 팁투어였기에, 보슬보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마지막 장소로 향했다. 그리고 황금소로를 끝으로 오후 팁투어를 마쳤다.




여전히 흐린 하늘을 따라 천천히 팁투어가 시작 된 곳으로 다시 돌아갔다.  

흐린 하늘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몰려오는 어둠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흐린 하늘을 감춰주는 건 흐림보다 더 짙은 어둠이었다. 그래서 오늘 프라하의 밤은 해가 쨍쨍했던 어제의 프라하의 밤과 닮아있었다.












프라하의 마지막 날도 역시 프라하에 머물렀다. 4박이라는, 같은 숙소에 묵던 친구들 보단 꽤 오랜시간 프라하에 머물렀다. 그런데도 체스키크롬로프나 드레스덴 같은 프라하 근교는 가지 않았다. 시간이 나면 가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어느새 마지막 날이었다. 오늘의 프라하는 분명 어제 그제의 프라하와 다를테니 4박을 프라하에만 머물러도 그리 아쉽진 않았다.


어디를 갈 거냐며 오늘 하루의 일정을 묻는 아침 식탁 앞에서 그냥 바깥풍경이 보이는 창문이 달린 카페에 가겠다고 답했다.


그리고 어디를 가기 위해서가 아닌, 걷기 위해 길을 나섰다.












프라하 시내의 모습이 보이는 곳에서 앉아, 그림도 그리고 책도 읽었다. 그러다 지겨워지면 또 어딘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걷는게 힘들면 트램을 탔다. 눈길을 사로잡는 비눗방울 만드는 사람을 보면 우뚝 멈춰섰다. 그러다 보이는 주변 상점에 들어가서 쇼핑도 했다.


아기자기한 프라하 모습처럼 아기자기한 물품들이, 다양한 종류의 기념품들이 많았다. 남은 여행기간이 있었기에 자리를 많이 차지하는 물건들은 잠깐 고민한 뒤 샀다.


그 이후로 배낭 하나는 기념품을 모아놓은 가방이 되었는데, 캐리어보다 더 소중히 여겼다. 캐리어는 잃어버려도 이건 잃어버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곳을 다녀간 증거이며, 시간이 지날 수록 희미해질 이 여행에 관련된 모든것들 중 가장 선명하게 '남을 것' 이기 때문이다.







트램을 타며 지나친 풍경









프라하에서 만난 인연들과 코젤맥주를 들이키고 음식을 먹었다. 붉어진 볼과 알딸딸한 느낌으로 노을지는 프라하의 거리를 걸었다. 그동안 걷거나 본 것이 나타나면 추억을 돌이키느라 잠깐 멈춰서기도 했지만 다시 걸었다.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해가 지는 속도에 맞춰 걸어갔다. 하나 둘 불이 켜진 등이 물결에 따라 일렁 거렸다.

프라하 풍경이 보이는 테라스에 서서 프라하의 낮이 밤으로 바뀌는 순간을 바라봤다. 기분좋은 바람을 느끼며 그렇게 프라하의 마지막 하루를 보냈다.



그다지 새로운 곳을 가거나, 새로운 것을 한건 아니지만, 여전히 걷고 보고 느꼈으니 오늘도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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