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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연 Jun 30. 2018

낮보다 눈부신 밤, 부다페스트





프라하를 떠나는 날까지 적응이 되지 않았던 건 전철역에 있는 에스컬레이터의 속도였다. 그래서 캐리어를 끌고 탈 때면 무척 긴장이 된다. 빠르게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에 내 몸과 캐리어가 동시에 올라서야 한다. 마음속으로 저절로 ‘하나 둘 셋’을 센다.


빠른 속도로 지하를 향해 내려갔다. 분명 프라하의 땅 밑이지만, 지각하지 않는 한 그저 지하철이다. 뒤를 돌려봐도 나를 태워준 긴 에스컬레이터 밖에 보이지 않는다. 어쩐지 허무하기도 한 프라하와의 이별이었다.


숨이 차도록 달렸던게 무색하게도, 기차는 지연된 상태였다. 맥이 탁 빠지기도 했지만, 놓치는 것보단 지연된 게 나았다. 숨을 고른 뒤 약간의 먹거리를 사고, 핸드폰 앨범에 담긴 프라하 풍경을 뒤적거렸다.


이제 프라하를 떠나 부다페스트로 향한다. 기차를 놓칠까 정신없이 달리긴 했지만, 오늘 아침 날씨가 무척 좋았다는건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기차에서 내려 막 프라하에 도착한 사람들이 바삐 캐리어를 끌고 지나쳐간다. 이 사람들의 프라하 여행은 적어도 오늘만큼은 좋은 추억으로 남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맑은 날씨였다.


기차에 앉자마자 잠이 들었다. 3시간 정도를 자고 눈을 떴지만, 아직도 4시간이 남아 있었다. 야간기차 대신 주간기차를 선택했기에, 7시간이 넘는 시간을 꼬박 달려야 부다페스트에 도착하는 여정이었다. 아침의 아쉬운 작별인사가 무색하게 기차 밖 풍경을 바라보며 오랫동안 프라하와 작별인사를 할 수 있었다.


여행에서의 만남과 이별은 그렇다. 만남과 이별의 경계가 흐릿하다. 분명 떠나고 있지만, 떠나는 동안 새로운 모습을 만난다. 도착지에 도착하고 나서야 이전 여행지와 이별을 했음을 깨닫지만 곧바로 다가오는 새로운 만남에 마음을 빼앗긴다. 사람들과의 이별도 예상치 못한 만남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내가 지금  곳을 만나고 있는건지, 헤어지고 있는건지   었다.


다만 정말 이별이라고 생각할때, 더 이상 새로운 만남과 새로운 이별이 반복되지 않고, 비슷한 만남과 비슷한 이별만이 반복될 때 크게 낙담하지 않기로 했다. 다시 만나기 위해서 약간의 헤어짐이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자고, 그래서 이 곳을 다시 한번 만나기 위해 이별하는 중이라 생각하자고 다짐했다.















부다페스트에 도착했다. 부다페스트가 반가운 건지 기차를 벗어남에 반가운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무척 반가웠다. 그리고 숙소에 도착한 나를 반겨주는  엄청난 수의 계단이었다. 앞으로 여행을 하게 된다면 숙소기준에 계단이 많은지를 포함해야겠다. 얼마나 많았는지 마지막날에 캐리어를 끌고 내려가면서 계단을 하나하나 셌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96 정도였던  같다. 차라리 기차에 다시 앉고 싶은 심정이었다.


오늘 밤은 여러곳을  번에 돌아다닐  있는 야경투어에 참여하기로 했다. 재빠르게 사진막 찍고 움직여야 하는 여행을 좋아하진 않지만, 부다페스트에서 머무는 시간은 23  이기에, 야경을   있는 밤도 2 뿐이었다. 그리고 낮이  유럽의 여름에서 밤은 너무도 짧았다. 투어는 이럴때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약속 장소에 만난 사람들과 그리 크지 않은 차에 올라탔다. 아직 해는 떠있지만  밤이 찾아올 부다페스트의 노을 속을 달렸다.


차를 타고 지나면서 가장  감탄사가 나온 곳은 노을지는 다뉴브강 다리 위를 건널  였다. 기차역에서 숙소로 그리고 다시 약속 장소로 옮기기만 하여 아직 부다페스트에 있는게 맞는지 얼떨떨한 나에게,  노을진 다리  풍경이 마치 웰컴 부다페스트!하며 환영인사를 건네는  같았다.




















어부의 요새에서 내려다 본 부다페스트의 야경은 그동안 봐온 야경보다 웅장하고 거대한 아름다움이었다. 인공의 빛이지만, 아침 햇살의 싱그러움, 오후 햇살의 맑음, 노을의 따뜻함만큼 아름다웠다. 밤에 피는 햇살같았다. 따뜻하고 아름답고 강에 일렁거리는 빛처럼 어딘가 마음을 일렁거리게 하는 모습이었다.


여러 곳을 다녔다. 아쉬운 점은 정해진 시간내에 많은 곳을 가야했기에 어느 곳은 노을의 시작일때 잠깐 보고 어느 곳은 노을이 질때 잠깐 보고 어느 곳은 깜깜한 어둠이 내린 뒤 볼 수 있었다.  



오늘 지나쳤던 곳 한 곳 한 곳을 노을의 시작부터 마지막 어둠까지 오랫동안 바라보고 싶었다. 그럴려면 한 곳 당 하루의 노을과 밤이 필요했다. 한 번의 밤으로 모든 곳의 야경을 보려했던 것이 어리석었다.


그래도   내가 가장 맘에 들었던 곳은 가장 첨으로 갔던, 시타델라 전망대 였다. 아마 내가 욕심이 많아서  곳이 맘에 들었던  같기도 하다.  곳에선  눈에 부다페스트을 내려다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장소는 내가  있는 에서 얼마가지 않는 정도의 풍경만 주지만, 이곳은 내가 얼마나 넓은 곳에  있는지   있게 해주었다. 내가 겨우 며칠만으로  곳을 다녀갔다고 말한다는게 얼마나 터무니 없는지를 가장 생생하게 말해주는 곳이었다.



오늘처럼 노을질때 쯤 찾아와 가만히 어둠이 내려앉는 것을 바라보고싶었다.
















어젯밤, 어두운 곳에서 보았던 곳들이 낮의 쨍쨍한 해 아래서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낮의 부다페스트 모습을 보기위해 이곳저곳 돌아다녔다. 어젯 밤 찬란하게 빛을 내던 국회의사당이지만, 지금은 해의 빛을 받고 있을 뿐이었다. 트램을 타고 지나치며 창가를 통해 바라보았다. 잘못 탄 트램은 그렇게 국회의사당을 끼고 달려 마지막 정류장에 도착했다.







해가 아까보단 누그러졌을 때 쯤 나는 엘리자베스 다리를 걷고 있었다. 다리 아래의 풍경을 바라보며 걸음을 옮겼다. 어제 그 작은 봉고차를 타고 창문밖을 보기 위해 머리를 쭉 내밀고 봤을때 나를 반겨주던 풍경도 이와 비슷했다. 속도의 차이 때문인지 천천히 걸어가며 본 다리와 그 위에서 바라본 풍경이 어제 차 창으로 보았던 것 보다 광활하다.  


생각보다 한참을 걸어갔고, 난 어제 그래 여기!라고 정했던 시타델라 전망대로 올라가는 시작점에 섰다. 오늘의 해가 저 지평선 밑으로 고개를 숙일 시간은 그리 많이 남지 않는것 같다. 하지만 해가 전하는 강렬한 뜨거움은 여전했다. 한 걸음 옮길때마다 땀이 흘렀다. 어제는 차로 오느라 알지 못했는데, 시타델라 전망대로 오르는 길은 꽤 가파르고 오래걸렸다. 왜 어제의 나는 이 곳을 정했을까. 그 많던 아름다운 곳에서 마지막 밤을 왜 여기서 보내겠다고 정했을까. 속으로 지난 나를 탓해봤자 여전히 내게 놓여진 가파른 길은 끝을 모르고 이어졌다. 빨리 올라서 쉬겠다는 마음으로 앞을 보며 가던 것도 곧 지쳐, 잠시 걸음을 멈췄다.


지칠대로 지치기도 했지만 더 힘든건 어느정도 올라왔는지도 모른다는 상태였다. 앞으로 얼마나 더 이렇게 올라가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포기하고 다시 내려갈까 지금이라도 다른 곳으로 갈까 라고 생각했을 때였다. 바람이 불어오는 나뭇잎 사이로 내가 올라온만큼 낮아진 부다페스트의 모습이 보였다.


어제 느꼈던 그 감정, 그래 굳이 한 곳을 고르자면 꼭 여기로 하자던, 그 전망대를 보며 느꼈던 설렘의 감정이 지친 몸 사이로 흐르는 땀 사이로 다시 느껴졌다. 다시 묵묵히 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나뭇잎으로 우거져 점점 어두워진 곳에서 빛을 따라, 점점 가까워져오는 말 소리를 따라 걸어갔다. 수풀에 둘러싸여 어두운 그림자가 감싸는 길을 벗어나서 가장 먼저 보였던 건 이미 올라와있던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수풀이 아닌 하늘로 둘러싸인 전망대였다.  


어제, 이 곳의 밤 모습은 어떨까 하며 궁금하고 아쉬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던 곳을 향해 달려갔다.



어제 보았고 기억했던 모습들이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곳과 겹쳐진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이미 땀도 말라 있었다.


어제보다 조금 이른 시각에서부터 어제는 볼 수 없었던 밤의 풍경까지 그 변화를 느끼며 가만히 서 있었다. 이 곳은 불과 2시간만에 전혀 다른 모습을 띄었다. 노을이 시작되던 순간 부터 노을이 지기 직전 가장 붉은 순간, 어둠이 천천히 파란색 보라색을 띄며 내려 앉다가 완연한 어둠으로 바뀌던 순간, 어둠이 짙어짐에 따라 하나둘 불이 켜지던 순간 그래서 햇빛 대신 불빛으로 어둠속에서 빛나던 순간. 어둠이 짙어질수록 아름다움도 짙어져갔다.


어떤 생각을 하면서 오랫동안 이 변화를 바라보았는지 이제는 흐릿하다. 밤이 어두워질수록 이 곳이 품고있는 빛들은 선명해졌다. 하지만 내 머릿속을 지나가는 생각들은 여전히 불분명하고 멋대로였다. 여러 생각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가 사라지기도 하고,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지던 생각들을 억지로 끊어내기도 했다. 딱히 이 야경보다 선명한 생각도 아름다운 생각도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냥 아무 생각을 안하기로 했다. 이 곳에 깔린 어둠들이 내 생각조차 삼켜주기를 바랐다. '다시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 조차 말이다.


다시 볼 수 없다 하더라도, 지금 내가 보고 있으니깐 이게 마지막일지라도 또 이게 처음이니깐




어둠이 깊이 깔리고 나서도 한참을 지나서야 발길을 돌렸다. 이제 다시 돌아가야했다. 내가 내려다 보았던 이 넓은 풍경 중 한 점을 향해. 자꾸 누군가 나를 부르듯 멈춰서서 뒤를 돌아보기를 반복했다. 조용히 그러나 반짝이는 풍경이 나를 붙잡는 듯 했다.


부다페스트의 밤은 낮보다 눈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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