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지연 Aug 01. 2018

자그레브, 크로아티아

드디어 크로아티아로!



새벽 6시 핸드폰 알람 소리가 울리자, 눈을 뜨고 황급히 핸드폰을 껐다. 아무리 여행의 설렘에 일찍 눈이 떠진다 해도 낮이 긴 여름에 새벽 6시부터 눈을 뜰 사람은 거의 없다. 아침 8시 버스를 타고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로 가야하는 나를 빼곤. 찬물로 얼굴을 씻어도 가시지 않는 피곤함이지만, 부지런히 움직였다. 버스가 나를 기다렸다.


아니 내가 크로아티아를 기다렸다. 티비프로그램을 보고, 크로아티아를 알게 된 뒤로 꼭 가자고 마음 먹었던 곳. 덕분에 루트가 좀 꼬이고 비용도 더 들었지만 그럼에도 가고싶었던 곳. 다음 목적지는 크로아티아였다.


크로아티아는 다른 여행지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모든 여행지가 그랬지만, ‘내가 정말 이 곳을 가는걸까?’ 하는 마음이 가장 크게 드는 곳이었다. 그만큼 기대가 컸다. 그 전엔 애써 기대를 눌러담기도 했다. 혹여 너무 들뜬 상태가 여행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지금껏 만나온 모든 곳이 내가 상상하고 기대했던 것 이상이었기에, 이번엔 마음껏 기대를 품어보기로 했다.






그 많던 계단을 캐리어를 끌고 내려오니 벌써 땀이 한가득 이었다. 두꺼운 문을 열고 어둡던 실내를 벗어나 밖으로 나왔다. 이미 동이 튼 부다페스트의 모습이 그런 날 반겨주었다. 어젯 밤 이 거리는 너무 조용하고 어두워서 무섭기 까지 했는데, 이른아침 이 거리는 고요하고 어딘지 따뜻하기도 하다.  한적한 길 위에 해는 부지런히 떠오르고 있었다. 해가 막 떠오르는 아침의 모습은 해가 막 지려하는 오후 느지막과 닮아 있다. 아침의 기온이 조금 더 쌀쌀하고, 급히 어딘가를 향하는 발소리만이 가장 크게 울릴만큼 조용하다는 것을 빼고는 말이다.


부지런을 떨어서인지 버스터미널에 도착해서도 탈 시간이 꽤 남은 상태였다. 남은 동전을 털어 아침과 차 안에서 먹을 것을 사고 버스를 기다렸다. 교통을 기다리는 대부분의 시간은 지루하지 않았다. 사진을 넘기며 이제 곧 떠나게 될 곳의 추억을 곱씹다보면 시간은 금새 가곤했다. 내가 이 곳에서 머물렀던 시간 처럼 말이다.


초록색 버스가 들어오는 것이 유리창을 통해 보였다. 몇 번째 출발인지 셀 수 없지만, 다시 또 다른 곳을 향한 출발이었다.



이렇게 계속 출발을 하다보면,
한국에 돌아와서도 보다 쉽게 출발 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새로운 사회로이든 새로운 역할이든 아니면 또 다른 여행이든.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내일 갈 플리트비체 티켓을 샀다. 그리고 트램에 몸을 실어 반엘라치치 광장으로 향했다. 숙소는 자그레브의 대성당 바로 앞에 자리한 곳이었다.

항상 짐을 풀고 나면 하얀시트가 깔아져 있는 침대에 누워 한 숨을 돌리곤 한다. 새로운 목적지에 잘 도착했다는 일종의 '안심의 행위' 였다. 아침부터 움직인 탓인지 포근한 침대가 나를 자꾸 이끄는 듯 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 아래 시간마다 울리는 대성당의 종소리를 들으며 깜빡 잠이 들었다.





길을 나서서 숙소 앞에 있는 빵집으로 향했다. 아까 캐리어를 끌고 오면서 진열된 빵을 보고 맛있겠다 라고 생각한 곳이었다. 가격도 저렴해서 바쁘게 이것 저것을 가리켰다. 빵이 한아름 든 종이봉투를 안고 있잖니 벌써 든든해진 느낌이었다. 어디를 가야할지 정하지도 않고 이 주변을 그저 발길 닿는데로 걸었다. 그러다 한 공원이 눈에 띄었다. 그 곳에서 사람들은 각자 자리를 잡고 앉거나 누워서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하늘은 파랗고 맑으며, 덥지 않은 딱 적당한 날씨가, 그리 소란스럽지 않을 정도로 사람들이 오가는 작은 공원의 오후였다.

돗자리를 피고 아까 사두었던 빵을 한 입 베어물었다. 노래를 들으며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면 이 곳이 어느 곳인지 흐릿해진다. 하늘은 매번 비슷하게 파랗고 구름은 비슷하게 하얘서 비슷하게 예뻤기에, 런던에서, 파리에서, 프라하에서 혹은 한국에서 올려다보았던 하늘인 것만 같았다.

 

해가 얼추 내 눈높이에서 가장 강한 빛을 내뿜어 자꾸 눈을 감기게하는 오후였다. 이맘때가 좋았다. 한국에서는 이 시간 쯤이면 벌써 하루가 갔다는 느낌 때문에 울적해지기도 했다. 여행에서는 이 때가 좋았다. 아침부터 쉼없이 움직이다가도 한 숨 돌리며 천천히 걷기 좋아서, 해도 누그러져서 해를 바라보기 어렵지 않아서, 주황색 빛과 길어진 그림자들이 어우러져서, 그래도 아직 해가 떠있어서, 곧 해가 져서. 그런 이유들로 좋았다.


사실 난 자그레브를 일종의 두브로브니크와 플리트비체를 가기위한 관문, 내 여행루트에서 크로아티아를 이어주는 다리 정도로 생각했다. 굳이 가지 않아도 되지만 가야했던 도시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곳은 정말 가야했던 도시였다. 가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냈지만, 그래서 가장 평화롭게 기억남는 곳이기도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낮보다 눈부신 밤, 부다페스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