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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연 Aug 03. 2018

요정이 살 것 같아서, 플리트비체.



플리트비체는 너무 커서 한 번에 둘러보기 어렵다. 그래서 여러 코스 중 하나를 선택해서 간다. 코스를 고르는건 어렵지 않았다. 인터넷에 검색만 해도 사람들이 괜찮은 코스를 추천해준다. 나는 가장 보고 싶은 곳이 있었고 그 곳이 포함된 코스를 선택하면 됐다. entrance 1 -> P3 -> P2 -> St3 -> St1 -> Entrance1 코스였다.





아침 일찍 부터 출발했지만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매표소는 이미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이게 줄이 맞나 싶을 정도로 긴 줄이 끝없이 이어졌다. 40분을 넘게 어쩌면 거의 1시간동안 기다린 끝에 표를 살 수 있었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사람이 너무 많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대부분 정해진 일정에 맞춰 움직이는 여행객들이 많이 모인 날, 날씨가 너무 좋아서 다행이었다.


드디어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에 입장했을때의 두근거림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마치 또 다른 세계로 향하는 길목 앞에 선 기분이었다. 이리저리 엉킨 사람들과 소란스러운 소리들 그리고 그늘진 매표소를 사이에 두고 이 곳과 저 너머가 경계져 있는 것 같았다. 그늘을 벗어나 한 발을 내딛었다. 입장표를 쥔 손에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발을 내딛을 때마다 난생처음 보는 풍경들이 펼쳐졌다. 우거진 초록과 그 사이를 흐르는 에메랄드 빛 호수, 그 위를 나무로 덧대어진 길들이 좁지만 길게 늘어져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내가 서 있었다.






디즈니 영화를 모두 좋아하지만 그 중 ‘곰돌이 푸’를 가장 좋아했다. 아직도 비밀번호 설정에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이라는 질문에 '푸'를 적곤 한다. 아버지가 주신 선물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도 크리스마스날 받았던 푸 봉제인형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푸 자체보다 이야기 속에서 묘사된 푸의 삶을 좋아했던 것 같다. 숲 속 나무 집에서 살며, 아침이면 새들이 지저귀고, 친구들과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너른 들판이 있고, 조금만 더 멀리가면 모험이 되는 우거진 숲이 있으며, 목을 축일 수 있는 시냇물이 졸졸 흐르던, 그 배경 삽화들이 주는 풍경이 좋았다. 언젠가 푸를 찾아가겠다고, 그래서 나도 함께 살겠다고 다짐도 했었다. 그리고 이 나무 다리 위에서 그 다짐이 문뜩 생각났다. 언젠가 가겠다던 그 곳에 와있는 것 같았다.

   





길이 좁거나 구부러진 곳이 많았다. 그런 곳을 많은 사람들과 지나가기 위해서는 천천히 하지만 쉬지 않고 움직이는 수 밖에 없다. 잠깐 멈춰서도 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멈추게 된다. 그래서 카메라를 드는 순간보다 내려 놓는 순간이 더 많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카메라로 담기에 역부족인 풍경들이었다. 종종 걸음을 걷게 되어도 괜찮았다. 저절로 조심스러워지고 소근거리게하는 공간이었다. 이 순간 처럼 내가 관광객이라는 역할에 충실했던 적은 없었다.




이 곳에 살고 있는 어떤 존재들의 공간을
짧게나마 엿볼 시간이 허락된 느낌이었다.




 하늘도 나무들도 물들도 너무도 파래서, 현실감각이 없기도 했다. 정말로  곳은 다른 세계였다. 난생 처음 , 어디서도   없는, 오로지  곳에서만   있는 것들을 둘러싸인 곳이었다.

 

5시간 훌쩍  시간을 걸었지만,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그리고  5시간 동안 뱉었던 말들은 '..' '정말,' '예쁘다.' 등의 단말의 감탄사들 뿐이었다.  풍경을 묘사할 들이 떠오르지 않았던 탓도 있겠지만, 이런 말들이  곳을 가장  묘사해 주는 단어이기도 했다.


모든 곳들이 말 그대로 ‘와 정말 예쁜 곳’이었다.

그리고 내가 가장 보고싶었던 모습은 마지막에 다다라서야   있었다.  시간 전만해도  다리 위를 직접 거닐었다. 그럴때마다 푸른 빛이  주위를 감싸며 따라다녔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나를 감싸던 풍경이 얼마나 크고 깊게 뿌리내리고 있었는지 새삼 느껴졌다. 그에 비해 사람들은 매우 작았다. 어쩌면  곳에 사는 작은 존재들은 여기서 바라본, 이제  입장하여 눈을 동그랗게 뜨고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사람들일지도 모르겠다.


저 곳에선 그저 한 없이 푸르게 보이던 것들 역시 제각기 다른 색깔을 내고 있었다. 길을 따라 묵묵히 걷다보니 어느새 그 속에서 빠져나와,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었다. 떨어진 만큼 많은 것을 한 눈에 담을 수 있었지만, 그만큼 이 곳과 작별할 시간도 가까워졌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 곳을 다녀 갈 수 있어서, 이 깊고 넓은 곳이 주는 푸름을 느끼고 기뻐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어서 좋았다. 매우.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플리트비체를 거니는 꿈을 꾸었던것 같기도 하다.


돌이켜보면 꿈보다도 더 꿈같았던 곳이었다. 갑자기 저 나무 밑에서 꿀을 뒤집어쓴 푸가 튀어나오더라도, 얇은 날개를 펄럭이는 요정들을 발견하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는 곳.

그런 곳이었다. 플리트비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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