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고민
나는 직장생활 9년 차인 평범한 회사원이다.
물론 어렸을 땐 평범한 회사원이 아니라 노벨상을 받는 과학자가 되고 싶다는 거창한 꿈이 있었고, 지금은 그 정도로 대단한 꿈은 아니더라도 무언가 회사원보단 나은 삶이 있지 않을까 끊임없이 고민해 왔다.
매일 똑같이 출퇴근을 반복하는 이 회사생활은 딱 10년만 할 거라고 막연히 다짐했었는데, 어느새 별다른 대책 없이 9년이란 시간이 흘러버렸다. 아무것도 안 한 것은 아니다. 회사 밖에서 살아남는 힘을 키워보려고 이것저것 부업도 시도해 보았지만, 나는 여전히 뭘 하면 좋을지에 대한 정답을 찾지도 결정을 내리지도 못한 채 회사를 다니고 있다.
얼마 전까지 나는 억지로 회사를 평생 다녀야 한다면 그건 정말 불행한 삶일 거라 생각했다. 특별한 삶에 대한 고민 없이 퇴근하고 열심히 취미 생활만 하는 사람들을 보면 주제넘게 이렇게 생각했다.
"저 취미를 발전시켜 돈을 벌 수 있는 부업으로 연결시키면 좋지 않을까?"
그러는 나도 부업을 잘했다고 말 못하면서 감히 마음속으로 훈수를 뒀었다. 일과 중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고, 고작 퇴근 후 몇 시간, 고작 일주일 중 주말 이틀만을 내가 원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그 삶을. 내가 뭐라고 안타깝게 생각했었다.
그래서 나는 어땠냐고?
결론적으로 나는 회사생활도, 취미도 참 어정쩡하게 했다. 회사생활에도 100% 진심을 쏟지 못했다. 회사에서 열심히 해서 에너지를 다 써버리면 아깝다고 생각했다. 퇴근 후엔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보단, 돈 버는 것과 연관 있는 일만 했던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 거였다고 말하고 싶어도, 속으론 아니라 부정할 수 없었다.
SNS를 한 것도, 모임을 주최한 것도, 브랜드를 운영한 것도, 순수하게 내가 좋아서 "그냥"해본 건 아니었다. 확실하게 바라는 게 있었고, 기대하는 바가 있었다. 뭐라도 이렇게 점을 찍어나가면, 뭐라도 얻는 게 있겠지, 뭐라도 삶이 달라질 게 있을 거라 믿었던 것이다.
그러다 얼마 전, 삼성 다니시는 부장님과 몇 차례 미팅을 했는데 얘기를 나눠보니 정말 취미가 많으신 분이었다. 운동도 안 해본 운동이 거의 없으시고, 본인이 좋아하는 취미는 정말 "제대로"하셨다. 그분은 골프와 사이클과 아날로그 오디오에 진심이셨고, 취미를 넘어 전문가 수준이셨다.
나는 회사생활을 오래 하신 분들을 보며 그들의 삶을 걱정하던 때가 있었다. 회사만 열심히 다니는 것보다 분명 더 나은 삶이 있을 거라 늘 생각해 왔기에, 은연중에 나는 회사원의 삶을 부정적으로 인식해 왔었다.
그런데 단순히 퇴근 후 취미생활만 열심히 해오신 그분의 얘기를 듣고 있자니, 나는 그분의 삶이 진심으로 부럽단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를 순수하게 좋아해서 진정으로 즐기실 줄 아는 그 모습이, 그 눈빛이 계속해서 생각이 났다.
그분과 나의 차이점은 자연스러움에 있었다.
그분은 자연스럽게 좋아하는 일을 하셨고, 나는 사실 계산적이고 인위적이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거라 생각했지만, 언제나 나의 최종목적지는 "이걸로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을까?"였다. 나의 관심사는 좋아하는 일을 어떻게 더 잘 즐길 수 있을까가 아니라, 오로지 돈을 더 잘 벌고 성공하는 것에 있었다.
취미 생활을 부업으로 연결시켜 돈을 벌어보려고 했던 일이 그렇다고 잘못되었다는 건 아니다. 분명 나는 그 과정에서 많은 걸 배웠고 또 성장했지만, 나는 그냥 조금은 다르게 살아보기로 결심했다.
얼마 전 차(tea)에 관심이 생겼다. 예전의 나였다면 분명 이런 식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차로 취미생활을 시작하면, 이왕 하는 김에 내가 마시는 차들을 SNS에도 한번 기록해 보고... 차에 관심 있는 사람들끼리 커뮤니티도 형성해 보고...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차와 연관된 브랜드를 만들어 나만의 상품을 판매할 수 있지 않을까?'
이왕 하는 김에, 자연스럽게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시작도 하기 전부터 나는 인위적이었고, 순수하지 못했다.
나는 요즘 내가 한때 안타깝다고 생각했었던, 평범한 회사 부장님을 따라 취미 생활을 즐겨보고 있다. 취미의 사전적 정의는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인데 그동안 난 취미 그 자체보다 잿밥에 더 관심이 있었다.
남들이 보기에도 그럴듯해야 하고, 또 미래에 도움이 될 수 있을만한 취미생활을 해야 된다고 생각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아무 계산 없이, 아무런 신경 쓸 것도 없이, 그냥 좋아서 즐기는 것이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
요즘은 너무 평범하고 안타깝다고까지 생각했던 퇴근 후 나만의 취미생활로 보내는 몇 시간이 참 행복하다. 쓸모없는 짓의 행복이란 이런 걸까. 여전히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이 있을 거라며 끊임없이 그동안 고민하지만, 놓치고 있었던 것이 있었다. 지금 회사원인 내 삶도, 그리고 수많은 다른 이들의 삶도 알고 보면 참 괜찮은 삶이라는 걸 말이다. 알고 보면 감사한 것 투성이인 하루하루를 조금 더 즐겨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