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 없이 퇴사한 직장인의 일기
연말이 되니 행사도 많고 친구들 모임도 많은 요즘이다.
나의 친구들은 대부분이 직장인이다. (사업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나는 분명 친구 A, B, C를 만났는데 대화를 듣고 있자니 삼성과 SK와 LG가 서로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았다.
만약 나도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면, 나 역시 현대나 CSW를 대변했겠지.
친구들과 헤어지고 나니 문득 '삼성'과 'SK' 이야기가 아닌,
A는 요즘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B는 어떤 고민이 있는지,
C는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그런 인간적인 이야기들이 궁금해졌다.
얼마 전 만난 D는 퇴사를 하고 사업을 운영하고 있는 나의 선택이 부럽다고 했다.
회사 생활을 하면 자신을 위한 시간이 없다고 "내"가 없는 인생을 계속 살고 싶지 않다며 나를 보며 동기부여를 받았다고 한다. 나도 물론 지금의 내 삶이 좋지만, 회사를 10년 넘게 다녀 직급이 꽤 높은 D가 과연 하찮은 일들로 가득한 일상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업을 운영한다는 말은 거창해 보이지만 실제 나와 남편의 현실은 청소, 인쇄, 가위질 같은 일들로 이루어져 있다. 사업은 정말 하나도 멋지지 않은 일들로 가득 차있다는 걸, 해보기 전까지는 전혀 몰랐다.
엄마가 요즘 뭐 하고 있냐고 물으면, 아직은 내가 하는 일을 뚜렷하게 설명하기 어렵다.
카페의 가격표를 더 예쁘게 만드는 일,
눈에 띄는 홍보 전단을 만드는 일,
어떻게 하면 더 잘될지 계속 생각하고 고민하고 시도해 보는 일,
노력의 결과를 알 수 없지만 계속해나가야 하는 일들이다.
월급이라는 큰 보상도 없고, 내가 잘하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으니 때론 허공에서 허우적거리는 느낌마저 든다. 퇴사 후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나 스스로는 분명 알고있지만 남들에게 설명할 순 없다. 어쩌면 '삼성 다니고 있어'라는 한마디면 모든 게 쉽게 설명될 텐데, 가족들에게 걱정을 끼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걱정하는 마음의 이면에는 잘되길 바라는 기대와 응원도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지금의 나에겐 나를 대변하고 설명해 줄 수 있는 어떠한 명함도 없다. 그래도 나는 하찮은 일들로 가득 찬 이 일들을 계속 이어나가야 한다. 회사로 내 삶을 대변할 수 있던 삶에서 우뚝 서기를 선택했기에, 내가 쌓아온 경험과 일들로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를 증명해야 한다. 비록 대단하지 않은 작은 일들로 가득 찬 하루더라도, 대단한 회사에 다니던 이전의 삶보다 지금이 더 만족스러우니까. 앞으로도 나는 묵묵히,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이어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