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되지 않은 퇴사, 그러나 돈은 벌어야 했다

계획 없이 퇴사한 직장인의 일기

by 예슬

퇴사를 원했던 궁극적인 이유는 분명했다.


시간과 공간으로부터의 자유를 얻기 위함이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싫다거나, 대단히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다. 꼭 퇴사를 하지 않더라도, 그저 회사에서 하던 일을 재택으로만 할 수 있어도 충분히 감사한 삶일 거라 생각했다. 재택근무가 가능한 직장으로의 이직은 거듭 실패했었고, 결국 건강문제로 계획 없이 퇴사를 선택하고 나니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내가 10년 동안 회사에서 해온 일을 활용해 일거리를 구하는 것이었다. 회사 밖으로 나와 프리랜서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계속 찾아봤지만, 대부분은 마케터나 디자이너, IT개발자들이었다. 나처럼 공대를 졸업하고 제조업에서 일해온 사람들이 어떻게 독립했는지 방법을 알려주는 이야기는 좀처럼 찾기 어려웠다. 10년 가까이 일하며 쌓아온 온 지식과 경험이 있었음에도 나는 아무것도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자꾸만 홈페이지를 만들고, 로고를 제작해 월 천만 원을 벌었다는 이야기에 마음이 혹했다. 틈틈이 부업을 하고 SNS를 운영하면서 디자인툴도 어느 정도 다뤄봤기에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제일 잘 아는 분야는 따로 있는데 말이다.

재직하던 회사에서 온 컨설팅 제안

실제로 퇴사 후 회사로부터 제안을 받아 한 달간 재택으로 업무를 지원하며, 회사에 다닐 때보다 훨씬 높은 시급을 받으며 이 일로도 돈을 벌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확인하기도 했었다. 그것은 내가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가장 빠르고 현실적인 수단이었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나는 내가 해왔던 일로 무언가를 시도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래도 돈을 벌기 위해서 무엇이든 해봐야 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리스트를 적어 컨설팅과 교육을 제공하겠다는 포스팅을 올려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다소 소극적이고 성의 없는 글이었다.


나는 아직 돈 버는 일에 절실하지 않아서일까. 강사를 모집한다는 기관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문의를 남겼었는데, 미팅을 하자는 제안을 받고 나서 기쁘기보단 덜컥 겁이 났다. 분명 나는 10년 동안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해왔음에도, 내 자신이 도무지 이 일을 잘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회사에선 계속 좋은 성과를 받아 왔기에 나름 내가 하는 일에 자신이 있었지만, 나는 회사에서 주어진 일만 할 줄 아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같은 일을 회사 밖에서 하는 것뿐인데도, 나는 내게 주어질 미지의 일을 내가 잘 모를까 봐, 혹시 잘 해내지 못할까봐 두려웠다.


내가 그나마 가장 잘할 수 있는 일도 이렇게 자신 없어하면서, 오히려 내가 잘하지도 못하는 새로운 일을 시도해 보면 어떨까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후자의 일이 더 잘될 수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프리랜서의 삶을 살기로 선택했으니, 이제부턴 매번 두려움과 마주해야만 한다. 출퇴근의 고통을 피한 대신, 미지의 일을 접하고 새로운 포트폴리오를 계속 만들어가야 하는 창작의 고통을 겪어야만 한다. 회사 안에서는 익숙했던 일이, 회사 밖에서는 낯선 일이 되겠지만 그것 역시 내가 선택한 일이다. 이제는 매번 스스로를 증명해야 한다. 불확실성과 불안을 짊어진 채로 계속해나가야만 하는 시간들.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이 과정 또한 내가 원했던 삶의 일부라고 생각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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